인도차이나의 젖줄인 메콩 강에 다목적 댐이 들어서고, 노을이 지던 수변 구역은 콘크리트로 정비되어 휘황찬란한 고급 리조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길 따라 움직이는 슬로우 보트에서 책을 잃던 사람은 이제 대형 유람선에서 공연을 보며 뷔페를 즐긴다. 그 옆으로 연신 컨테이너선이 숨 가쁘게 유영한다. 동남아시아의 심장이던 메콩은 이제 다이내믹한 경제 성장의 전설이 된다.
이런 건 어떨까.
중동 지역에는 석유를 대체해 핵발전소가 건설되고, 사통팔달의 도로가 뚫린다. 핵 발전으로 충전한 전기 자동차가 온실 기체 배출 걱정 전혀 없이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하고, 순례자들은 오며가며 등대 역할을 하는 초고층 빌딩에 감사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던 어린왕자는 이제 구시대의 프로파간다가 된다. 인공위성에서 바라 본 아라비아의 밤은 이미 라스베이거스가 샘을 낼 정도로 눈부시기 때문이다. 행복하신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구와 인간과의 윈-윈 게임이신가?
메콩 강에 컨테이너선이 뜬다
녹색 성장이 수출되고 있다. 과한 상상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결국 또 다른 방식의 경제 지상주의라는 걸 감안하면 결코 헛된 망상은 아닐 터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군대 파견까지 약속하며 핵발전소를 수출했고, 지난 7월에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 모델을 전파하는 것이 목적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의 지소를 아부다비에 설치한 후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 계획을 수립"해 납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열린 한-메콩 외교 장관 회의에서는 "녹색 성장 및 수자원 개발 협력"을 논의하고 결의했다. 결국 4대강과 핵 발전으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부 녹색 성장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 품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제10차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은 이런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회의가 끝난 후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니 비즈니스 포럼을 만들었다느니 외형적인 평가를 토대로 성공한 회의였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외각에선 사막화를 막을 만한 실질적인 장치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채 사막화를 막자는 화려한 수사만 남발됐다며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첨예한 국제적 이해관계를 조정할 능력이 부족했거니와, 애당초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있다고 정부의 관심은 온통 녹색 성장 홍보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UNCCD 회의장에 큼지막하게 4대강 홍보 부스를 설치하고 총회 참석자들을 맞이했다. 회의장에는 정부의 녹색 성장을 홍보하는 리플릿과 기념품이 넘쳐났다. 정부의 꼼수에 화가 나서 사막화 방지 시민단체 네트워크와 4대강 사업 저지 낙동강 지키기 경남 본부는 이 소식에 강하게 반발하며 UNCCD 사무총장에게 공개 서한까지 전달한 일까지 있었다.
국제 회의는 이명박 정부 녹색 성장 홍보 부스
ⓒ프레시안(손문상) |
이쯤 되면 내년 3월에 계획되어 있는 핵안보정상회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선하다. 핵 발전을 녹색 성장으로 치부하는 정부는 또 날름 대형 홍보 부스를 설치하고 안전하고 평화적인 핵 발전 기술 운운하며 핵발전소 수출을 위한 장사치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할 게다. 아직도 방사선이 쏟아져 나오는 후쿠시마의 아픔은 아랑곳없이 핵 발전이 지구를 구원할 구세주인양 광신도 역할을 자처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 고개를 주억거리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이미 녹색 성장의 진면목을 쫌 아시는 분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녹색 성장 수출을 위한 또 하나의 거대 프로젝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열리는 제18차 기후 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UNFCCC COP18)가 바로 그것이다.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기후 변화 문제는 전 지구촌 이슈를 통틀어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뜨거운 감자다. 올해만 해도 타이 홍수나 소말리아의 가뭄 등으로 치유하기 어려운 생채기를 입었다. 이로 인해 기후 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로 꼽히고 있다. 장관급 회의임에도 불구하고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회의에는 105개국 정상이 직접 참석했을 정도니 부연 설명이 필요 없겠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가 끼어들었다. 당사국 총회는 대륙별 순환 개최가 원칙인데 내년 순번이 아시아에게 할당됐다. 우리나라와 카타르가 유치 신청을 하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COP18 유치위원회'까지 구성하기까지 했다. 온실 기체 의무 감축 국가도 아니고 지구 온난화 대응 이슈를 주도할 수 없는 한국 정부로선 개최 의도야 뻔하다. 또 다시 '녹색 성장'이다.
기후 변화 총회 유치 이유에 '기후 변화 해결'이 없다
COP18 유치위원회가 발간한 리플릿에는 "녹색 성장을 기후 변화 대응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착"시키고, "'저탄소 녹색 성장'이 지구촌의 대표적 정책 유산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유치 의도가 등장한다. 게다가 국제 회의 유치 때마다 어김없이 따라붙는 "국격 제고와 경쟁력 강화", "3500억 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라는 기대 효과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시급한 당면 과제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내용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기후 변화 해결을 위해 모이는 자리의 의장국을 자청한 국가가 기후 변화 해결에 도통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런 기후 변화 회의에서 나올 결과가 두렵기까지 하다.
그런데 더 황망한 건 국제 회의 유치가 정부의 꼼수라는 데에 동의하면서도 내년 11월에 열리는 제18차 기후 변화 총회는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참으로 애매한 분들이 계시다는 거다. 이분들이 녹색 성장에 찬성하는 건지 반대하는 건지 '애정남'에게 정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정부의 COP18 유치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당사국 총회 의장국들은 기후 협상을 위해 온실 기체 추가 감축과 같은 정치적 선물을 내놓는 게 관례이기 때문에 이 회의를 계기로 정부가 기후 변화 대책을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정책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 그렇게 속아놓고도?
기후 변화 총회 유치에 찬성하는 건 녹색 성장 수출에 찬성하는 것
정부는 COP18 유치를 선언하면서 "온실 기체 감축 의무가 없는 협약 당사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자발적인 감축 목표를 수립 이행 중"이기 때문에 유치 자격이 있다고 자화자찬을 한 바 있다. 뒤집어 말하면 이전 회의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됐고 그 최대치를 공약했다는 입장이어서 더 이상 추가 감축은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앞선 문건에서 "우리나라 역량에 맞는 감축 의무 수준이 결정되도록 의장국으로서 유연한 대응을 할 수 있다"는 문구까지 등장한다. 첨예한 대립각을 보이고 있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중재자 역할은커녕 오로지 국제적 아픔을 이른바 '국익'에 활용하겠다는 저열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온실 기체 추가 감축을 약속할 수 없다면 현 정부가 국제 사회에 선물로 줄 수 있는 건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재정 기술 지원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메콩 강 유역 개발 참여를 선언한 동아시아기후변화파트너십, 핵 발전 수출과 엮어 진출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사례에서도 나타났듯이 이명박 정부 녹색 성장 수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뜬금없이 녹색 공적 원조(ODA) 비중을 2030년까지 14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끌어올리겠다고 천명한 것이나 한-메콩 외교 장관 회의를 연례화하겠다는 것은 이 연장선상에서 흑심을 명확히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메콩 강 유역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이유가 4대강 사업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나.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면서도 기후 변화 총회 유치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단체들은 총회와 4대강 사업 녹색 성장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무지한 건지 애써 무시하고 싶은 건지 알 길이 없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은 기후 변화 적응 사업이라고 주장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녹색 성장 홍보에 4대강 사업이 그린 뉴딜이랍시고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걸 정말 모르고 하는 말인가?
시기적으로도 너무 민감하다. 제18차 기후 변화 총회 일정은 2012년 11월 26일에서 12월 7일까지로 확정되어 있는데 12월 19일에 열리는 대선과 10여 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3월의 핵안보정상회의 역시 4월 총선 바로 전에 열린다.) G20을 단군 이래 최대 행사로 치장해가며 정략적으로 활용했던 걸 감안하면 결과야 어떻든 정부·여당이 선거에 이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만 명이 온다던 G20을 홍보하는 데 100억 원이 넘는 돈을 썼으니 3~4만 명 이상이 운집하는 18차 기후 변화 총회에는 300~400억 원쯤은 쓰려나. 현행 대선 법정 선거 비용이 500억 원이 채 안 된다는 걸 감안하면 한쪽으로 지나치게 유리한 일정이다.
결국 제18차 기후 변화 총회는 녹색 성장 홍보를 통해 이명박 식의 치적 쌓기 놀음의 무대가 될 것이 분명하고, 거기에 동의하건 하지 않건 기후 변화 총회가 한국에서 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녹색 성장이 수출되고 세계화되는 데에 일조하는 일이 될 터이다. 기후 변화 총회와 같은 국제회의 유치에 찬성하고 싶으신가? 메콩 강에 컨테이너선 뜨는 거 보기 싫으면 세상을 넓게 보자. 그리고 제발 좀 다르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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