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기협의 반응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한다.
1-1. 나는 그 전에 서중석의 <6월 항쟁>(돌베개 펴냄)에 대한 김기협의 서평에 도전했다. (☞관련 기사 : 김기협, "1987년 6월 전두환은 왜 군을 출동시키지 못했나?"; 박동천, "미국은 과연 두렵기만 한 '마귀'인가?") 내가 제기한 도전의 핵심은 1987년 6월, 전두환의 행태를 설명하는 요인으로서 미국의 입장은 여러 개의 변수 중 하나로 봐야 하고, 만약 누구든지 거기서 나아가 미국이 "결정적"이거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려면 자체적인 증거를 내놔야 한다는 데 있었다.
이에 대한 김기협의 반응은 해방 후 한미관계가 "신 식민지 체제"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내가 보기에 이는 내가 제기한 도전에 대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백보를 양보해서 신 식민지 체제라는 김기협의 성격 규정이 옳다고 치더라도, 여전히 1987년 6월에 전두환이 군을 출동시키지 못한 (또는 않은) 이유로 미국 이외의 여러 변수가 작용했다는 해석의 타당성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A라는 지배자와 B라는 충복 사이에 상명하복의 전형에 해당하는 권력 관계가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B의 행태를 설명할 때 A에서 나온 지령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용산 참사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김석기 전 경찰청장에게 내려진 명령이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있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김석기에게 선택의 폭이 있었다고 본다는 뜻이다. 하물며 1987년 6월 전두환과 미국 "정부"(여기 왜 따옴표를 붙이는지는 아래에 설명한다) 사이에 2009년 1월 김석기와 이명박 사이에 있었던 만큼의 상명하복 관계가 있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 <6월 항쟁>(서중석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
그러므로 해방 후 한미관계가 김기협의 말대로 "신 식민지 체제"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1987년 6월에 전두환의 선택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김기협이 내게 보인 반응은 내가 제기한 도전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고 또 내 태도에 대한 막연한 차원의 (다분히 허수아비 비판에 가까운) 반대 의사는 될 수 있지만, 내가 표출한 반문에 대한 답은 되지 못하고 있다.
1-2. 어쩌면 김기협은 "신 식민지 체제"라는 시각의 표명만으로 내가 제기한 도전에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고 볼지 모른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내 입장을 부연한다.
가령, '홍길동'이 어떤 범죄 혐의를 쓰고 있어서, 그가 문제되는 그 범행을 저질렀는지 여부를 조사한다고 해보자. 이때 홍길동의 평소 행각에 근거해서 그의 "성격"을 나름대로 구성해낸 다음, 그 성격을 토대로 범행 여부를 확정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경우에 홍길동의 "성격"이 어떤지에 관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증언을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 범행을 확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미관계를 "신 식민지 체제"로 규정하기만 하면, 나머지 모든 일들이 그 규정에 따라서 연역적으로 설명된다고 보는 태도는 평소 소행으로부터 일반화된 "성격 규정"에 따라 특정인의 행태를 모두 설명하려는 태도와 닮은꼴이 아닌가? 이는 경험 과학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를 위배하는 독단론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2. 내가 열거한 미국의 네 가지 특성에 대해 김기협은 나름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의 반론은 여전히 내 취지를 무너뜨리기보다는 오히려 보강하는 것으로 보인다.
2-1. 미국이 한국보다 다원적인 사회이고, 개방적 자유주의자들이 한국보다 높은 비율로 분포한다는 내 주장에 대해, 그는 정부 간 관계를 말했다고 응수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란 대통령, 백악관 참모진, 국무부, 의회, 사법부, 군부, 그리고 여론의 동향 중에서 무엇을 가리키는가?
내가 미국의 특성을 열거한 까닭은 우리가 한국의 "정부"를 말할 때 흔히 전제하는 획일적인 프레임을 그대로 가지고 미국의 "정부"를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착오가 발생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사실은 한국의 "정부"를 말할 때에도, 획일적인 프레임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방향으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중석이 <6월 항쟁>에서 제시하고 있는 시각은 그런 흐름을 훌륭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2-2. 외교 상대국으로서 미국이 한국에게 중요한 만큼 한국이 미국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내 주장에 대해, 김기협은 "냉전 시대에 이 사람 화성에 가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이미 위에 다시 해명했듯이, 냉전 시대에 설사 미국이 한국에 대해 어떤 "각본"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사실만으로 1987년 6월에 각본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는 전혀 될 수 없다.
나아가 내가 아는 한, 미국이 1945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국내 정세 나아가 한반도 정세 전반에 대해 어떤 장기적인 "각본"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은 현상 유지 이상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물론 여기서 현상(status quo)이란 시의적으로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상 유지의 정책"이란 곧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그때그때 반응한다"는 뜻을 가지는 것이다.
2-3. 나의 이러한 입장은 "미국을 좀 쿨하게 보자"는 정도로는 요약이 되지 않는다. 나는 미국에 대해, 미국 정부의 정책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 발호하는 여러 가지 (내가 보기에) 탐욕과 불의를 가능한 한 날카롭게 비판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내부에 숱한 문제들을 안고 있으며, 오늘날 지구촌의 초강대국인 만큼 전 세계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칠 힘을 가진 나라다. 그런 만큼, 비록 미국 내부의 일이라 할지라도 그 바깥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상관이 없을 수가 없다. 미국을 좀 더 세밀하게 이해하고 또 치밀하게 비판할 필요에 대해서는 어느 무엇에도 뒤질 생각이 없다.
하지만, "신 식민지 체제"라는 (김기협의 주관 안에서 형성된) 규정만 가지고 1987년 6월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하겠다는 자세는 미국을 세밀하게 이해하는 데도, 치밀하게 비판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더 된다고 믿는다.
3. 오해를 피하기 위해 좀 더 적는다. 나는 지금 "미시사"의 관점에 치중해 "거시사"의 관점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서양사에 관해 "르네상스", "종교 개혁", "시민 혁명", "근대", "전체주의" 등등, 거시적 관점에서 나오는 용어들을 나도 자주 사용한다. 현대사와 관련해서는 "세계 체제", "종속", "신 식민지", "문화적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 "기술 관료제의 지배" 따위, 거시적인 용어들을 강의에서 다루며, 그러한 용어 안에 도사리고 있는 감성적 태도까지도 어느 정도는 공유한다. 뿐만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이 미시적인 세부적 논쟁의 여지 때문에 아예 불가능하다고 보는 태도는 애당초 역사 서술의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는 어리석음이라고 믿는다.
단, 거시적인 관점에 따른 나름의 역사 서술이 성립한다고 한다면, 다른 관점에서 다르게 서술하는 역사 역시 언제나 성립할 수밖에 없다. 유명한 예로, 자본주의의 발전에 관한 마르크스의 거시적 유물론이 하나의 담론으로서 성립한다고 하면, 그 곁에는 베버 류의 거시적 문화적 해설도 병행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시장 경제가 반드시 근대 특유의 현상이 아니라는 신자유주의자들의 해설까지도 병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거시적인 차원에서 어떤 관점을 채택하든지간에, 그것만 가지고 특정 사건의 진상을 설명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무리한 사업이다. 이미 여러 번 말했듯이, 1987년 6월에 전두환이 왜 군부를 동원하지 못했는가(또는 안했는가)는 기본적으로 미시적 차원의 논제에 해당하는 것이다. 어떤 혐의를 쓴 개인의 행태에 대해 그가 실제로 그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따지는 것이 기본적으로 미시적 차원의 논제인 것과 정확히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범죄 행태에 관해서 사회경제적, 구조적, 정치적, 심리적, 여타 등등의 관점에서 거시적인 해명이 필요할 수 있다. 특히 사회 정책을 통한 사회 개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거시적인 해명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미관계의 조정을 민주주의의 완성보다 "더 절박한 과제"라고 간주하는 김기협이 나의 (그리고 서중석의) 미시적 관점을 비판하는 것까지는 일단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게는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이 대미관계의 조정과 별개의 항목일 수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볼수록, 민주주의의 완성은 대미관계의 조정과 중첩적으로 지극히 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항목은 결국 "한국"이 무엇인가, "한국"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으로서, 논리적으로 대미관계를 바람직하게 조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할 선결 문제가 그 안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만약 내가 취하는 미시적 관점에 대한 김기협의 비판이 대미관계의 조정이라고 하는 사회 정책적 과제의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미시적 사실 규명을 정책적 관심의 풍향계에다가 맡겨버렸다는 자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 생각에는 1987년 6월에 미국이 수행한 역할을 (여러 가지 미시적 사실에 근거해서) "제한적"으로 본다고 해서, 대미관계의 조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와야 할 필요는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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