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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의 핏자국, 닦아줄 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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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의 핏자국, 닦아줄 이는 누구인가?

[프레시안 books]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 기행>

서승.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의 불행하고 참혹한 현대사를 증언하는 인물이다. <옥중 19년>은 그만큼 강한 충격을 주는 책이다. 다 읽고 나서 얼이 빠진 듯 멍해졌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런 가혹한 폭력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맞선 강단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재일 조선인이란 존재는 무엇인지 고민했다.

정말 소설보다 더 뛰어난 우리말로 쓰인 자서전이 있다면, 나는 리영희의 <역정>과 함께 <옥중 19년>을 꼽고 싶다. 그토록 강렬했던 서승을 다시 기억한 것은 그의 아우 서경식의 책을 보면서다. 두 형이 우리 현대사의 희생양이 되어 감옥살이할 때, 그들의 아우가 받았던 정신적 내상이 얼마나 컸고, 이를 이겨내고 위해 얼마나 고단하게 싸워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쉬웠던 것은, 정작 서승의 책을 볼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에 나온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 기행>(창비 펴냄)은 그의 글을 보고 싶었던 사람의 갈증을 달래준다. 미리 말해두지만 기행이라 하여 편안한 책은 절대 아니다. 동아시아 현대사 이면에 있는 국가 폭력의 실상을 들춰내고 있어서다. 그래서 이 책의 가치가 더 돋을새김된다. 한반도에 갇혀 있던 정치적 상상력을 오키나와와 타이완까지 확대해 주어서다. 여기저기서 동아시아 공동체 운운하는데, 내가 보기에 오늘 우리에게 동아시아론이 가치 있으려면 서승의 시각에 동의할 때라 싶다. 그는 말한다.

"오키나와와 조선, 그리고 타이완은 일본이 서구를 모방해 자본주의화를 꾀하고 부국강병을 외치면서 아시아 침략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제물로 바쳐졌다. 일본 지배하에서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당하고 동화 정책과 황민화 운동으로, 나아가 침략 전쟁으로 강제 동원되어 민족의 삶과 문화가 말살되는 위기를 겪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뒤에는 냉전 체제에서 미국의 지배를 받아 반공 최전선의 군사 기지로서 엄청난 희생을 강요당해왔다."

▲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 기행>(서승 지음, 창비 펴냄). ⓒ창비

동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그물코는 여럿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그 논의들이 서승이 말한 역사적 공통성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면, 자못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동아시아론을 말하는 이유는 불행한 근대사를 겪게 된 근원을 공유하고 있고, 이를 청산하려면 연대해야 하며, 그 힘을 바탕으로 지역의 평화와 공존을 이루기 위해서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 맞설 경제 공동체를 목적으로 하는 동아시아론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냉전 체제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굴절된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국가 폭력이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암흑기를 거쳐야 했던 것이다. 이것 역시 동아시아라는 틀을 가능하게 하는 공통인자다.

"1945년 일본 패전에 따른 군국주의 해체, 식민지 지배 체제 청산이라는 과제는 냉전의 시작으로 중절(中絶)되어, 동아시아 각 지역의 지배 질서는 미국의 지휘 아래 재편성되었다.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하수인으로 종사하면서 구 식민지 지배의 협력자(친일파)와 관계를 재생하여, 미국의 거대한 폭력을 배경으로 옛 대동아 공영권이던 많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했으며, 그로 인해 동아시아 민중들은 참된 해방을 맞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친일파가 되살아났고, 동아사아 각지에서 분출한 민중 해방의 에너지를 억압하기 위해 국가 폭력이 동원되어 '제주 4·3 항쟁'부터 '타이완 백색 테러' '광주 민중 항쟁'에 이르는 민중 학살로 이어져 온 것이다."

서승의 글을 읽다보면 무릎을 치게 된다. 입때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아니 아예 관심 없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현대사가 너무나 유사하고 그 원인 또한 같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어서다. 자신이 국가 폭력의 희생자이기에, 그리고 그것이 어찌 가능한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에 "일제 지배에 의해 형성된 '동아시아'의 역사적·정치적 일체성에 눈을" 뜨게 되었을 성싶다. 서승이 타이완, 오키나와, 제주, 광주, 연변 등을 왜 여행했는지 이제 짐작할 터이다.

개인적으로 기회가 있어 오키나와에 가서 그곳의 역사와 현안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오키나와는 정말 보석 같았다. 이런 곳에서 참혹한 역사가 반복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현역 초등학교 교사가 인솔한 현장 답사를 하면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서승이 이 책에서 말한 평화 기념 공원에도 들렸는데 한국인 위령탑을 보면서 일본의 식민 지배가 얼마나 가혹했는지 확인한 적이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현재는 미군 주둔 문제로 시민의 저항이 지속되고 있어 여러모로 우리와 유사하다. 서승의 오키나와 기행은 역사보다는 사람에 맞추어져 있다. "성(聖)과 속(俗)과 유(遊)의 조화, 인간과 자연의 공존, 관용과 환대"의 정신을 만나는 기쁨이 있다.

서승이 타이완과 인연을 맺게 된 데는 린슈양(林書揚)의 역할이 컸다. 34년 동안 옥중 생활을 한 린슈앙이 일본에 왔을 적에 만나게 되었는데, 1995년 린슈양의 초대로 타이완을 방문했다고 한다. 중국 근대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타이완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며 서승의 글을 읽게 된다. 격동의 역사를 서승은 다음처럼 요령껏 압축해준다.

"중국 현대사에서 타이완 민중만큼 역사에 농락당한 사람들은 없다. 일찍이 청나라에 의해 일본에게 할양되고, 일본에 대한 격렬한 저항 끝에 진압되고, 황민화 정책에 의해 민족의 얼까지 버릴 것을 강요받고, 패전의 위기에 몰리자 일본군의 소품이 되어 대륙 동포와 아시아 민중과의 대결을 강요받았다. 해방 후는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국민당 정부의 폭정 아래서 '2·28 사건'이나 '50년대 사건'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렀으며, 그때부터 40년간 계엄령과 공포 정치 아래서 절망과 좌절의 나날을 보내왔다."

2·28 사건은 국민당에 대한 불만이 극대화하면서 터져 나온 저항이었다, 일본 패망 이후 타이완을 접수하기 위해 온 국민당의 군은 하필이면 규율과 장비가 가장 열악한 지방군이었다고 한다. 거기에다 고압적이고 부패가 심해 시민들의 원성을 샀는데, 담배를 암거래하던 노파를 전매국 단속반이 때린 것에 격분한 군중들에게 발포를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국민당은 수세에 몰리자 협상하는 척하다 몰래 원군을 요청했는 바, 두 개 사단의 진압군이 도착하여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다. 우리의 4·3과 광주 민중 항쟁이 겹치는 사건이라 보면 될 듯하다.

50년대 백색 테러는 장제스 독재 체제의 버팀목이었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장제스는 체제 공고화를 위해 민주 인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1949년부터 1959년까지를 백색 테러 시기라 하는데, 당연히 "피해는 파악할 수 없으나 4000명이 총살되고 1만 명 이상이 투옥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유신 시대를 떠올릴 법하다.

이 대목을 읽다가 씁쓸해지는 데가 있다. 타이완과 우리가 정치범을 대한 태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힌 부분이다. 특별히 사상 전향에서 타이완이 우리보다 우회적인 방식을 택했는데, 그 원인이 중국은 일제의 반식민지였고 우리는 완전한 식민지였다는 점과, 국공합작의 경험이 있는 중국과 대결 구도가 극단으로 치달은 우리 역사의 차이에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책에서 가장 주목했던 곳은 1부('여행의 시작, 아득한 길')이다. 짧지만 강렬한 자서전이다. 서경식을 통해 이미 알려진 대목도 있으나, 그의 삶을 총체적으로 그려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바라건대, <옥중 19년>과 합쳐 온전한 자서전을 펴내는 날이 왔으면 한다.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대목, 일본 경찰들이 우리말을 모른다고 조롱하자 굴욕감을 느끼며 우리말 배우기를 결심하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의 삶을 평가하며 "온갖 위험과 유혹 속에 꼬불꼬불하고 아슬아슬한 길을 갈지자로 비틀거리면서 넘어졌다가 일어서면서 걸어왔다. 그러다가도 항상 길을 벗어나면 다시 되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라는 구절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먼저 솔직해서다.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신념으로 살았노라고 말하지 않는 정직성은 누구한테서나 발견되는 미덕이 아니다. 또 하나는 위로이다. 늘 좌절하고 타협하며 사는 사람에게 그의 말은 큰 힘이 된다. 누구나 정의의 길을 비틀거리며 가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길을 계속 가는 것이다. 그러니, 벗어났다고 호통 칠 일이 아니라, 여전히 가고 있느냐고 물어볼 일이다. 기왕이면 그 길이 동아시아의 평화에 이르는 것이라면 더욱 좋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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