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으로 그녀는 1815년 사망했다. 하지만 죽어서 땅에 묻히기까지 187년이란 터무니없이 긴 세월이 흘렀다. 죽어서도 땅에 묻히지 못하는 이 여성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시체를 땅에 묻고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 의식이 거행되기까지 왜 이토록 긴 세월이 필요했던 것일까?
레이철 홈스가 2007년 발표하여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사르키 바트만 : 19세기 인종주의가 발명한 신화(The Hottentot Venus: The Life and Death of Saartjie Baartma)>(이석호 옮김, 문학동네 펴냄)은 너무 오래 지연된 이 시간의 비밀을 파헤친 역작이다.
홈스는 이 시간 동안 서구 제국주의가 한 아프리카 여성에게 자행한 끔찍한 폭력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 그녀의 온전한 이름을 불러주고, 그녀의 삶과 죽음, 죽음 뒤에 닥친 잔인한 훼손의 사건들, 그리고 마침내 시체가 반환되어 아프리카 땅에 묻히기까지 그녀의 후예들이 벌인 긴 투쟁의 역사를 기록한다.
▲ <사르키 바트만>(레이철 홈스 지음, 이석호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치밀한 자료 조사와 과감한 재구성을 통해 역사에서 희생당했던 한 아프리카 여성의 삶이 200년이란 시간의 두께를 뚫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가 견뎌야 했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라는 잔인한 역사의 진실과 함께.
한국 독자들에겐 낯선 이 여성의 삶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사르키 바트만은 1789년 남아프리카 코아 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10대 후반 약혼식 축제를 벌이던 날 밤, 백인 정찰대에게 납치되어 케이프타운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노예와 같은 시종 노릇을 하던 그녀는 영국 군인 던롭과 흑인 고용주 세자르의 유혹에 넘어가 유럽으로 밀항한다.
1810년 런던에서 그녀는 아프리카 희귀종 호텐토트의 비너스로 소개된다. 그녀는 람키라는 아프리카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큰 엉덩이를 가진 이 검은 비너스는 항간에 떠도는, 긴 음순을 가졌다는 소문과 함께 런던을 사로잡는다. 성적 과잉을 상징하는 이 아프리카 여성에 대한 서구 남성의 환상과 인종적 호기심이 계몽된 나라 영국을 매혹시켜 버린 것이다.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던 당시 영국 자유주의자들이 그녀를 해방시켜 아프리카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정치적 논쟁을 벌였지만, 그녀는 아프리카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강요된 상황도 있었겠지만, 아프리카로 돌아가 다시 노예의 삶을 사는 것보다는 유럽에서 이주민 노동자로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영국 남성들의 관음증적 시선과 육체적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피폐해간다.
영국에서 더 이상 돈벌이가 어려워지자 세자르는 사르키를 데리고 프랑스로 건너가 거간꾼 레오에게 팔아먹는다. 파리는 그녀의 육체에서 성적 환상과 감각의 거품을 걷어내고 과학의 칼을 들이댔다. 그녀는 1815년 파리에서 실물 모델이 되어 실험실에 선다. 옷을 벗지 않으려고 버텼지만 결국 과학주의적 시선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세밀화의 대상이 된다.
이 실험 관찰을 주동했던 퀴비에는 그녀가 죽자 그 시신을 해부학 실험실에 가져온다. 그녀의 뇌와 성기가 유리병에 담기고 박제가 된 채 20세기 후반까지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다. 2002년 오랜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와 그 뒤를 이은 음베카가 그녀의 유해 반환 운동에 앞장서고 세계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동참해 마침내 그녀의 시신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돌아와 안식에 든다.
사르키 바트만, 살아서 그녀는 호기심어린 유럽 남성의 성적 환상과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불룩 솟은 둔부와 '앞치마 살'이라 불리는 거대한 소음순, 이 두 과잉은 서구 남성이 아프리카 여성에 대해 갖는 환상이자 과학적으로 규명해내고자 하는 인종적 열등성의 신체적 증거였다.
서구적 표준에 들지 못하는 그녀는 기괴하거나 흉측한 존재, 그래서 더욱 더 강하게 성적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여성이자, "너무 커서 인간의 것이 아닌" 동물과 인간 사이의 존재로 격하되었다. 우생학과 진화론을 과학적 진리의 이름으로 신봉하던 사람들에게 그녀의 과잉은 불량한 진화의 증거로 보였다.
동물이 멈추고 인간이 시작되는 증표를 찾기 위해 그녀를 발가벗겨 실험실에 세웠다. 과학은 서구 여성에겐 없는 앞치마 살을 적출하고 큰 엉덩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그녀의 뇌를 해부하기 위해 죽어서도 그녀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시체를 훼손해서라도 성적 과잉과 지성의 결핍을 입증하고자 했다.
데카르트의 것보다 작을 것이라 추정했던 뇌는 재보니 별반 차이가 없었다. 껍데기만 남은 몸뚱이는 밀랍을 발라 박제했다. 생식기와 뇌를 적출당한 그녀는 박제가 되어 만천하에 전시되어 200년에 가까운 세월을 견뎌야 했다.
홈스의 역사적 재구성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것은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에 희생당한 한 아프리카 여성의 삶만이 아니다. 그녀를 그런 식으로 훼손시킬 수밖에 없었던 근대 서구 사회 내부의 폭력성과 잔혹성, 그들의 심리적 내면과 과학적 오만이 홈스의 글을 통해 오롯이 드러난다. 계몽 속에 숨겨진 위선과 과학을 추동했던 폭력성이 우리 앞에 낱낱이 밝혀진다.
따라서 187년이란 긴 세월 동안 땅에 묻히지 못했던 그녀를 온전히 잠들게 하려면 바로 이 위선과 폭력성도 함께 묻어야 한다. 역사의 잔인한 모순을 매장하지 못한다면 그녀에 대한 애도 역시 이루어질 수 없다. 비문 속의 그녀의 연대기는 1789~2002년으로 되었지만, 아직 그녀는 충분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