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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스러운 밤, 이 그림들을 보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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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스러운 밤, 이 그림들을 보노라면…

[프레시안 books] 이연식의 <아트 파탈>

2007년 9월 3일, 한 언론이 중요 신체 부위를 가린 여성의 전라 사진 2장을 1면에 게재했다.

입소문을 탄 신문은 퇴근길,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사진의 주인공은 청와대 정책실장과 열애를 했다는 미모의 36세 큐레이터. 한 인터넷 언론은 사진이 합성이라고 밝혔고, 사진 속 당사자는 나체 사진을 찍은 적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올해 1월 이 나체 사진 파문은 8000만 원 배상 합의로 종결됐다.

19세기 파리 예술계도 여성의 전라 앞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격화된 여성, '바다 거품 속에서 태어난 비너스'나 '조각 작품이 갑자기 진짜 여성으로 변한 갈라테이아'는 용인됐지만, 마네의 '올랭피아'와 '풀밭 위의 점심' 속 그녀들은 문제가 됐다. 하지만 20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살이 물컹하게 잡힐 것 같이 묘사된 비너스도, 올랭피아도 모두 예술로 칭송한다.

시간을 뛰어넘는 이 소란의 원인이 무엇일까. <누드의 미술사>를 쓴 케네스 클라크의 말을 빌리면, 벗어버린(naked) 알몸과 자신만만한 육체, 즉 재구성된 육체의 이미지(nude) 때문이다.

▲ 마네의 <올랭피아>. ⓒnaver.com

이런 논란을 이연식은 책 <아트 파탈>(휴먼아트 펴냄)로 묶었다. 그러고는 현실과 상상, 경계와 경외의 묘한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그는 "왜 사람들은 야한 이야기가 나오면 웃는 것일까?"라고 물으며, "야한 이야기는 웃음을 끌어내고 그 웃음은 성애(性愛)를 끌어낸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남녀는 어느새 한 이불을 덮고 누워있게 된다며.

경계령 1호 :금기를 금하라

▲ <아트 파탈>(이연식 지음, 휴먼아트 펴냄). ⓒ휴먼아트

성기의 표현에 있어 남녀의 차이는 분명하다. '다비드'는 성기를 위풍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여성의 성기는 마치 이 세상에 없는 것인 양 취급되었다(29쪽). 몸을 틀어 안 보이게 하거나, 잎사귀 등으로 가렸다. 그뿐만 아니라 음부의 털을 없애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이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당황했다. 이연식은 "이런 그림이 그려졌다는 것보다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대중에게 공개된 사실이 오히려 더 혁신적(43쪽)"이라고 평했다. 여성의 성기가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는 '세상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영역에 있었기 때문에 논란이 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개인이 은밀하게 즐기기 위한 그림은 거침이 없었다. 그래서 공적인 영역으로 나온 후에도 '세상의 근원'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림의 소재인 여성의 음부, '버자이너(vagina)'가 제목처럼 세상의 근원이라는 데 놀라고, '보지'는 안 돼도 '버자이너'는 가능한 세태에 놀란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보지의 독백>으로 공연됐다면 얼마나 놀랐겠는가.

놀랄 일은 소설에도 있다. 김훈은 단편 소설 <화장(火葬)>에서 뇌종양에 걸린 아내의 보지를 "살이 빠져서 치골이 가파르게 드러났고 대음순은 까맣게 타들어가듯 말라붙어 있었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회사 여직원의 '버자이너'에 대해서는 "당신 아기의 분홍빛 입속은 깊고 어둡고 젖어 있었는데, 당신의 산도는 당신의 아기의 입속 같은 것인지요"라고 독백하며 잠재된 성애를 끌어냈다. (김훈의 <강산무진>(문학동네 펴냄))

경계령 2호 : 우리를 열락으로 인도하시니

"그런데, 저는 천사가 아기 어머니의 가슴에 빛을 비추고 귀에 대고 속삭일 때, 그때 아기들이 온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이 착한 아기로 자라기 시작한다는 거죠. 나쁜 아기들은 타락한 천사가 그곳 사이에 비집고 들어갔을 때 생기는 거지요." (존 필미어 <신의 아그네스>(대명사 펴냄))

아그네스, 그녀는 수태고지(受胎告知)를 경험했다. 그리고 성 테레사 역시 수태고지의 순간, 열락을 느끼고 기도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심을 믿습니다."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조각 '성 테레사의 열락'은 '하…' 숨소리 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 만큼 황홀경에 빠져 있다. 테레사 수녀는 "격렬한 고통을 신음했지만, 그 고통은 또한 너무도 달콤했기에 나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78쪽)라고 수기에 남겼다. 또 구스타프 클림트는 '다나에'란 작품에서 제우스에게 겁탈당한 그녀를 화려한 비단과 황금빛 은총으로 감싸 농밀한 에로티즘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후 상황은 아래와 같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남자는 젊은 여자의 젖가슴 위에 손을 얹어놓고 있었다. 여자의 배는 땀과 정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을 했던 것이다. 깊은 정적만이 깃들어 있었다. (…) 성직자들의 태연하기만 한 모습과 창백함에 군인들은 감동했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크리스토프 바타유 지음,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경계령 3호 : 적나라(赤裸裸)하다

이연식의 <아트 파탈>은 두껍지 않은 그림책이다. 그러나 다른 미술 평론집에서 접하기 어려운 춘화를 동양의 성문화와 버무려 놨다. 이에 춘화는 우리를 더 가벼운 쾌락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중국 춘화를 교본으로 '춘심(春心)'에 흥하다, 문득 신윤복의 '이부탐춘' 속 흘레붙은 개를 보고 피식 웃다보면, 어느새 일본 우키요에에 등장하는 '콩알사내'가 돼 관음에 도취하는 식이다.

상상만으로도 참, 성(性)스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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