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평했을까?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기쁨이 안타까움으로 바뀌는 것은 금방이었다. 저자의 입장에서 볼 때, 서평이 책의 논지를 제대로 담고 있지 못했다. 오히려 서평이 독자들에게 책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저자가 생각하는 책의 내용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반박의 글을 올린다.
과연 세대는 계급이 될 수 있나?
강양구 기자가 서평에서 비판한 논지는 두 가지다. 그 중 첫째 비판은 세대가 과연 동일한 경제·사회적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는 집단이냐는 비판이다. 즉, '세대는 계급이다'라는 책의 기본 논지에 대한 비판이다.
과연 20~40대가 공통의 경험, 공통의 취향 그리고 공통의 이해관계를 매개로 한 덩어리로 뭉칠 수 있을까?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그렇게 20~40대를 한 덩어리로 간주하고 심지어 '세대가 곧 계급'이라고 말하는 유창오의 주장은 상당히 '오버'다. 20대와 40대, 30대와 40대의 이해관계가 같은가? 아니, 40대를 꿰뚫는 공통의 이해관계라는 게 있기는 한 건가?
▲ <진보 세대가 지배한다>(유창오 지음, 폴리테이아 펴냄). ⓒ폴리테이아 |
사실 이 비판은 본질적 비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이에 대한 논거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자료를 모아, 책의 제2부 '세대 구도에는 계급이 숨어있다'와 제3부 '2040의 눈으로 본 한국 사회'에 나름대로 충분하다고 느낄 만큼 그 자료와 논거들을 잘 정리해 담아 놓았다.
그런데 서울 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지 1주일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는 강 기자의 비판에 대해 반박하는 게 너무 새삼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왜냐면 선거 이후 진보 언론, 보수 언론 가릴 것 없이 모든 언론이 2040 세대가 왜 박원순에 몰표를 보냈는지를 분석하면서 그들의 사회 경제적 처지에 포인트를 맞췄는데 그 논지가 대부분 이 책의 논지에서 빌려온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향신문은 '2040 왜'라는 기획 보도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2040 왜]① 세대가 계급이다
양극화 덫에 걸린 2040, 단일 계급으로 묶였다
20~40대의 공분과 암담한 미래가 이들을 하나의 계급으로 만들었다. 20·30대는 윗세대에게 밀려 정규직 일자리를 찾을 기회조차 줄어들었다. 40대는 자산이 많고 적고에 따라 한나라당과 야당을 찍는 계급투표 전선이 쳐지고 있다. 20~40대의 계급 투표 성향이 표출되고, 과거의 '지역주의'를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경향신문> 2011년 10월 29일자)
사실상 <진보 세대가 지배한다>에서 논리와 자료, 심지어 표현까지 빌려간 이 기사를 비롯한 지난 1주일간의 수많은 기사들로 강 기자의 첫 번째 비판에 대한 반박을 갈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 미국 월가를 비롯한 세계 각국 청년들 시위에서 나타나듯이 2040 세대가 경제적 이해관계가 같은 집단, 즉 일종의 계급으로 묶이는 현상은 세계 보편 현상이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 이는 20세기 후반 이후 신자유주의가 노동 시장 전체가 아니라 신규 진입자에게 희생을 전담시키는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도 첨언한다. 이로 인해 세대에 따라 일종의 계급 전선이 형성되는 것 역시 지금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2040 세대의 중심은 40대인가? 30대인가?
강양구 기자의 두 번째 비판은 "유창오는 계속해서 20~40대를 '진보 세대'라고 호명하면서도 정작 그 주체는 486 세대로 제한하는 듯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전적으로 오해일 뿐이다. 그런 주장은 책의 어디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내 생각과도 전혀 다르다.
오히려 최근의 2040 현상에서 그 중심은 40대가 아니라 30대다. 지난해 지방 선거 이후 모든 선거 출구 조사, 모든 여론 조사에서 가장 강력한 반(反) 이명박 전선의 중심 부대요, 가장 강력한 계급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집단이 30대다. 이는 그들이 '삼포 세대'라고 표현될 만큼 경제적으로도 가장 힘든 위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에 아직 세대 의식을 형성 중인 20대와 느리지만 조금씩 보수화되는 40대에 비해 통일된 세대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30대의 힘은 지금까지 호남이 해왔던 민주 진보 진영에서의 중심적 역할을 대신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호남이 그랬던 것처럼 전국의 30대가 마치 하나의 조직으로 묶여있는 것처럼 놀라울 정도의 통일된 정치 의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민주 진보 진영의 대주주가 호남에서 점차 30대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평가도 한다.
그런 점에서 30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이제 30대는 자신의 정치적 대변자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민주 진보 진영은 의도적으로라도 30대의 정치적 대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1987년 체제를 끝장낼 '2040 세대 동맹', 그 거대한 서막
그런데 강양구 기자의 서평은 이 책의 핵심 주장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반박의 글을 빌어 책의 핵심 주장을 독자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한다. 어찌 보면 그야말로 중이 제 머리를 깎는 이상한 모양새이기는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금 내가 모양새를 따질 처지가 아닌걸.
<진보 세대가 지배한다>의 핵심 주장은 "2012년 정초선거를 통한 '2012년 체제'의 개막"이다. 그리고 나는 이번 서울 시장 보궐 선거가 그 거대한 서막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정초선거(定礎選擧)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사회의 정치 지형을 확정짓는 선거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그 동안 두 번의 정초선거가 있었다. 여촌야도(與村野都, 농촌은 여당, 도시는 야당)의 보수 양당제를 확립한 1958년 선거와 영남 대 호남의 지역 구도를 확립한 1987년 선거가 그것이다.
정초선거에서 나타난 정치 지형은 이후 일정 기간 반복해서 나타난다. 따라서 책에서 나는 1958년 이후의 여촌야도 정치 구도를 '1958년 체제'라 명명했고, 1987년 이후의 영남 대 호남 정치 구도를 '1987년 체제'라 명명했다. 1958년 체제는 30년간 지속되었고, 1987년 체제는 지금까지 25년간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세대 구도의 등장으로 1987년 체제의 지역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이번 서울 시장 보궐 선거는 그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그런데 이런 세대 구도는 지난해 지방 선거에서 대구·경북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예를 들어 부산·경남 지역을 보자. 무소속의 김두관 후보가 5퍼센트포인트 차이로 승리(김두관 53.5퍼센트, 이달곤 46.5퍼센트)했던 경남도지사 선거는 확연한 세대 균열 구도를 보여준다. 20대~40대에서 김두관 후보가 크게 이겼고, 60세 이상에서는 이달곤 후보가 크게 이겼으며 50대에서는 이달곤 후보가 약간 이겼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영남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안 될 정도다.
ⓒ유창오 |
부산 시장 선거도 주목해야 한다. 비록 졌지만 민주당의 김정길 후보가 45퍼센트나 득표(한나라당 허남식 후보 55퍼센트 득표)했다. 이는 지금까지 민주당 후보 최대 득표치인 37퍼센트(1995년 지방 선거 노무현 후보)를 넘는 성과였다. 부산에서도 20~40대는 민주당 후보를 훨씬 더 지지했다. 더구나 20~30대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크게 이겼다. 그러나 60세 이상에서는 한나라당 후보가 8대2의 압승을 거두었다.
ⓒ유창오 |
이처럼 지금 세대 구도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구·경북에서조차 2040 세대는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여론 조사가 이미 여러 차례 발표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세대 구도는 단순히 정서적·문화적 세대 구도가 아니다. 이번 서울 시장 보궐 선거 이후 보수 언론조차 동의한 것처럼 지금의 세대 구도는 사실상의 변형된 계급 구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실천적 결론은 명확하다. 그것은 내년 양대 선거를 정초선거로 만들어 1987년 이후 25년간 지속되고 있는 지역 구도의 '1987년 체제'를 끝장내고 세대 구도(사실상의 계급 구도) 정치 체제인 '2012년 체제'를 열어내는 것이다. 그를 통해 해방 이후 보수가 다수였던 시대를 끝내고 민주 진보가 다수가 되는 시대를 열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진보 세대가 지배한다>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핵심 주장이다.
이제 민주당이 답해야 한다
이번 서울 시장 선거가 보여줬듯이 유권자들은 준비되어 있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2에 달하는 2040 세대는 2012년 양대 선거를 정초선거로 만들어 민주 진보가 다수파가 되는 2012년 체제를 출범시킬 에너지를 충분히 준비해놓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모아낼 정당이다.
지금 2040 세대는 지지할 정당이 없다.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민주당 역시 근본적으로 1987년 체제 하의 지역 정당이어서 2012년 체제의 새 다수파를 대표하는 정당으로는 자격 미달이라는 것이 지금 2040 세대의 판단이다. 갑자기 밀어닥친 안철수 현상은 그 결과다. 새로운 체제를 요구하는 2040 세대의 에너지는 가득 차 있는데, 기존 정당은 옛 체제에 머물러 있으니 정당 밖에서 '영웅'을 찾아낸 것이다.
일부 언론과 정치학자들은 이번 서울 시장 선거와 안철수 현상을 두고 '시민단체 네트워크'니 '제3정당'이니 하며 정당의 밖에서 답을 찾는다. 웃기는 소리다. 박원순 시장은 결코 무소속으로 당선된 것이 아니다. 민주 진보 단일 후보로 당선되었다. 안철수 교수가 대선주자로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은 제3정당 후보로서가 아니다. 민주 진보 진영 후보로서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이 2040 세대에게 부족한 정당으로 비춰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2012년 체제의 새 다수파를 대표할 정당이 민주당과 무관하게 만들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민주당은 1958년 여촌야도 체제에서 도시의 야당이었고, 1987년 지역 구도 체제에서 호남 진보파 정당이었다. 1958년 체제와 1987년 체제의 한 축을 담당해온 민주당 없이 2012년 체제는 불가능하다.
답은 정해져 있다. 민주당의 변화다. 민주당이 민주 진보 대통합에 나서야 한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진보 정당, 문재인·이해찬 등 친노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과 통합, 박원순 시장을 위시한 시민 사회, 이 네 세력이 통합되어야 한다. 그렇게 재구성된 당이 유권자의 3분의 2인 2040 세대를 제대로 대변하고 이들을 투표장에 이끌어 낸다면 2012년 체제, 진보가 다수가 되는 체제는 출범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부족한 책을 서평으로도 다뤄주고, 이렇게 반박의 글도 실어준 '프레시안 books'와 강양구 기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내게는 책의 내용을 예비 독자들에게 알릴 소중한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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