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진학 축하 겸 선생님과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였다.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웃어 넘겼다. 학자금 대출을 하면 그만이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큰돈이 오고 가선 안 된다는 것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생님의 말씀은 진심이었다. 함부로 뱉을 수 없는 그 말, 그 마음만이라도 고마워서 결국 눈물이 났다.
"선생님은……. 마, 마마말, 마마말을 더듬습니다. 그그그, 그래서 자, 자, 잘 못합니다. (…) 그그, 그그그, 그그……래도 진심으로 말합니다. 내가 하하, 하는 말은 모두 지지지진심입니다."
<말더듬이 선생님>(시게마쓰 기요시 지음, 이수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의 주인공 무라우치는 말을 잘 못하는 임시 국어 교사다. 듣기 불편할 정도로 말을 더듬어서 가는 곳마다 비웃음을 당하지만 중요한 말만 진심을 담아서 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평범함에서 벗어난 아이들, 괴롭히거나 괴롭힘 당해 마음이 아프고 위축된 아이들은 무라우치 선생님을 통해 이해받고 치유된다.
"있잖니. 시노자와, 말을 잘 못한다는 건. 괴로운 거다. 자신의 생각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건 외톨이가 되었다는 뜻이지. 말을. 더듬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이. 전해지지 않고. 이해받지 못해서. 아무하고도 사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도 역시 외톨이야. 하지만 말이야, 외톨이가 둘 있으면 그건 이미 외톨이가 아니라고,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한단다. 선생님은 외톨이 아이들 곁에 있는, 또 한 사람의 외톨이가 되고 싶어. 그래서 나는 선생을 하는 거야."
시게마쓰 기요시는 어렸을 때 무척 수줍음을 타고 말을 더듬었다. 전학도 자주 다녀 많은 날을 외롭게 지냈다. 그는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안녕, 기요시코>(오유리 옮김, 양철북 펴냄) 외에 <소년, 세상을 만나다>(오유리 옮김, 양철북 펴냄), <소년, 열두 살>(이수미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 <재회>(김미영 옮김, 시공사 펴냄) 등으로 청소년의 아픔과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가가 되었다. 그의 책은 수많은 외톨이에게 따스한 위로를 전한다. <말더듬이 선생님>은 나를 고등학교 시절로 데려갔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선생님이 좋아하는 활기차고 밝은 학생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불완전하기 때문도 아니고 미완성이기 때문도 아니다. 나는 나니까. 하지만 선생님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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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더듬이 선생님>(시게마쓰 기요시 지음, 이수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
다음 해, 젊은 남자 선생님이 담임이 되었다. 소문엔 굉장히 무섭고 욕도 잘한다고 했다. 실상 선생님은 다정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했다. 말더듬이는 아니었지만 무뚝뚝하고 유치했다. 아침 조회나 수업 시간마다 썰렁한 유머를 구사해서 멍하니 있던 나까지 닭살이 돋을 정도였다. 아이들이 무라우치 선생님을 보며 느꼈던 것처럼 의아했다. 이를 드러내고 웃는 선생님과 내가 닮았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안 그래도 낮은 자존감으로 우울한 나는 선생님과 내가 바보인가 싶어 너무 창피했다.
하루는 책을 보는데 선생님이 다가와 앞으로도 이렇게 책을 보라고 했다. 그 무렵 책 말고도 시사회에 푹 빠졌는데 차비만 생기면 언제고 밤마다 서울 온 극장을 돌아다녔다. 선생님은 영화 보는 게 좋으냐면서 오후 세 시 반이면 집에 보내줬다. 책 보고 영화 보면서 글도 한 번 써보라고 했을 뿐이다. 고3이 되기 전에는 직업학교에 전자출판과가 있다며 지원해 보지 않겠냐고 했다. 이게 전부다. 내가 선생님과 대화랍시고 한두 마디 말을 나눈 건. 그때마다 나는 왜 그리도 어색해하며 말을 못했을까. 뭐가 그리 창피하다고 슬금슬금 피했을까.
"게다가 무라우치 선생과 이야기할 때의 '울컥' 하는 감정은 다른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의 '울컥'과는 치솟는 부위가 좀 다르다. 짜증나는 것도 똑같고, 화나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가슴 저 밑바닥이……. 어쨌든 조금이지만 다르다."
학창 시절 내 마지막 기억은 밥 먹듯 지각해서 교무실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이다. 선생님은 잠시 나를 내버려두더니 내 앞에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말했다. "나중에 돈 벌면 밥 한 번 사라." 다신 선생님을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예감대로 나는 7년간 선생님을 보지 않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를 접수하러 모교에 갈 때도, 교직을 배우며 선생님을 떠올려도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선생님에게 보인 모습들, 선생님이 내게 해준 것들을 생각하면 울컥하는 감정이 솟아올라 또다시 부끄러웠다.
"제 생각으로는……. 선생님을 만난 녀석들은 다들 나중에 학교 선생님이 되지 않을까, 해요."
학교를 끔찍이도 싫어한 내가 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만난다. 지금도 말을 잘 못하고 더듬대기 일쑤이지만 선생인 척, 선생다운 척 몇 마디 건넨다. 온몸으로 외로움을 뿜어내는 왕따 집합소에서 아이들을 이해한다고 여기면서도 별로 해주는 게 없고, 기운을 북돋아 주지 못해 낙심도 하지만, 나는 믿는다. 다양한 학생이 있듯 다양한 선생님이 있어도 된다고. 비웃어도 되는 바보 따위는 없다고. 약한 너와 내가 함께 있으면 누구보다 강하다고. 모른 체 말고 조용히 손 내밀어 주리라. 설령 진짜 선생이 되진 못해도 이 연민은 계속될 것 같다.
"저, 선생님 제자죠?"
"그럼."
"저, 학교 선생님은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선생님 제자니까……."
이제 나는 매년 선생님을 찾아간다. 점심을 먹고 나면 으레 근처 대학교 잔디밭에 앉아 한가롭게 운동장을 내려다본다.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두런두런 주고받는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무슨 일이든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선생님은 요즘 학생들과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나는 애들이 선생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고 고마운 존재인지 나중에 다 알게 될 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덧붙였다. 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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