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은 우리에게 어떻게 올까. 봄을 맞이하는 각심은 서로에게 한 가지씩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일간 신문들은 으레 농부가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하는 사진을 1면에 싣는 것으로 바야흐로 천하에 봄이 충만하였음을 알린다. 그리고 땅심을 돋우는 데 경운기보다는 쟁기가 최고라 믿는 사진 속의 농부 옆에서 노란 산수유가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기운을 보태기도 했다.
근데 근래 몇 년간 그 전통이 깨져버렸다. 청명을 지나도록 은근히 기대를 하면서 소의 등장을 기다렸는데 올해도 비켜가고 말았다. 어느 신문에서도 소를 볼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날씨도 유난히 갈팡질팡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사진들이 신문을 장식했다. 그것은 싱그러운 들판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강의 둔덕, 언덕, 습지, 숲, 둔치, 사구, 모래톱, 텃밭, 여울, 농지였다. 그곳에서는 누런 소가 아니라 노란 굴삭기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그것들은 황야의 무법자처럼 마구 돌아댕기고 있었다. 영 봄맛이 나질 않았었다.
2
지난 토요일 구미의 금오산으로 향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금오산 저수지를 지나 금오산성을 지나 대혜폭포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갑자기 물이 나타나 아래로 떨어진다." 내가 유일하게 외우는, '폭포'라는 제목의 하이쿠 한 수가 그대로 꽂히는 풍경이었다. 비가 오는 날씨. 빗물이 더해지니 폭포도 평소보다 더 신이 나는 것 같았다. 사정없이 아래로 꼬꾸라졌다. 그리고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가니 탁 트인 전망대가 나왔다. 할딱고개라 했다. 깔딱고개가 아니었다. 고개에 서니 구미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큰 물줄기가 보였다.
"저게 낙동강인가요?" "예, 맞습니다." "한창 공사 중이겠네요." "그럼요. 억수로 마이 파고 뒤집어놓았다 아입니까." 흰 구름 이는 아래로 황토색 띠가 길게 보이고 큰 물길이 흘러가는 게 보였다. 강물 주위로 녹색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핸드폰을 열어 보니 오후 3시를 지나고 있었고 닫으면서 보니 오늘은 10월 22일이었다. 최근 출근할 때마다 서울 광화문 광장 귀퉁이 정부종합청사에서 펄럭이던 플래카드가 생각났다. "10월 22일, 4대강새물결맞이……"
3
가을은 어떻게 갈까. 본다고 봄이라면 간다고 가을일까. 가을을 보내는 각심 또한 모두에게 한 가지씩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방송국들은 절정을 이루는 단풍 소식을 다투어 전하면서 천하가 붉게 물들고 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큰맘 먹고 높은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은 붉은 색깔 속에 몸을 마구마구 집어던지느라 바쁘다.
금오산 할딱고개를 더 올라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리저리 꽃을 찍느라 바빴을 터인데 그저 오르기만 하였다. 단풍이 활짝 핀 마당에 꽃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상인 현월봉 가까이에서 시들어가는 꽃향유를 발견한 게 전부였다. 사진기는 배낭 바깥으로 두어 번 나왔다가 내내 심심한 채로 지냈다.
내려오는 길. 미처 발견하지 못한 꽃이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찾지 못했다. 내 탓이 아니라 이젠 때를 알고 돌아간 식물들의 슬기였다. 붉고 가파른 돌계단이 길게 이어졌다. 붉은 당단풍나무 잎들이 떨어져 돌계단을 물들이고 있었다. 촉촉한 가을비가 내려 붉은 빛을 더욱 붉게 색칠하고 있었다.
지금 서울에서는 서울 시장을 뽑는 선거 운동 열기로 한창이다. 그 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눈에는 떨어진 잎들이 모두 표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이 낙엽들은 나무가 행사하는 고귀한 한 표이기도 하겠다. 나무들은 그 한 표를 통해 이 산을, 저들의 세상을 바꾸는 중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 곧 스산한 가을을 갈아치우고 정신 번쩍 나는 겨울을 맞이하는 것이렷다.
우리 사는 세상도 그렇게 바꿀 수 있기를!
연재를 쉬며 식물 이름 100가지만 중얼거리자. 그렇게 소박한 뜻을 가지고 봄날에 옹알이 하는 심정으로 꽃산행을 떠났었다. 겨울이 도래한다는 기미가 공중에서 왔으니 이제 곧 첫눈 소식도 올 것이다. 천마산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장 최근에는 명성산, 금오산으로 갔더니 꽃들은 몸을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그 꽃길에서 꽃이 자취를 감추니 이젠 나도 벙어리가 되어야겠다. 가끔 108배를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아는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서 절을 했다. 요즘엔 절이 끝날 때까지 각각 다른 이름을 댈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기분이 좋다. 적어도 100개는 넘은 것이다. 이 서툰 자를 이렇게까지 이끈 동북아식물연구소의 현진오 소장한테 고마움을 전한다. 내년 봄날, 당돌한 꽃씨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돌올한 꽃들이 뛰어나올 때까지 내 입은 꽃이름을 간직하려 계속 우물거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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