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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증오하는 사람들, '뉴타운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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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울을 증오하는 사람들, '뉴타운 난민'!

[도시 주인 선언·31] 정의로운 도시 재개발

가재울 뉴타운 4구역 조합원이었던 강성윤(56) 씨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관리 처분 시점에서야 자신이 빚쟁이가 된 걸 깨달았다. 도로 옆에 있어 인근보다 시세가 높은 단독 주택 소유주였던 그는 뉴타운 사업으로 집을 내놓고 36평 아파트를 받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관리 처분 시점이 되자 보상액이 3억8000만 원선인 반면, 조합원 분양가는 5억 원에 육박했다.

당장 1억원이 넘는 빚을 지게 된 것이다. (…) 그래도 4억5000만 원짜리 건물을 갖고 있으면 적어도 '중산층' 소리는 듣고 살았는데, 뉴타운 입주는커녕 빈민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 저항해봐야 '철거민'만 될 뿐이다. (<헤럴드경제>, 2011년 5월 23일)

왕십리 뉴타운 주민 박석명(51) 씨는 왕십리에서 방 5칸짜리 집에 4식구가 살았다. 보증금 500만 원에 25만 원짜리 월세 방이었다. (…) 아내와 함께 30년 넘게 '미싱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박 씨는 1990년부터 왕십리에 터를 잡았다. 자신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던 '뉴타운 광풍'을 피해 지난해 초부터 이사를 갈 집을 알아봤다.

하지만, 전세 값은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뒤였다. 성동구 안에서는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형편에 맞는 전세 집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지난해 11월 광진구 자양동으로 이사 갔다. 보증금은 10배가 오른 5000만 원, 월세는 30만 원이었다. 5칸이던 방은 2칸으로 줄었다. (<한겨레>, 2009년 9월30일)

가재울 뉴타운 3구역의 상가 세입자 500여 세대는 지난 2일 조합 측으로부터 보상금 통지서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딸의 옷가게를 도와주는 45년 토박이의 75살 채춘석 할머니는 옷가게 세입자 보상금으로 1480만 원을 받았으나 이사 비용밖에 되지 않는다며, 뉴타운 주변의 곱절이나 되는 가게 세를 감당하지 못해 온 식구가 굶어죽을 형편이라고 울먹였다. (<노컷뉴스>, 2008년 5월 12일)

▲ 참사를 당한 서울 용산 4구역 재개발 현장. ⓒ프레시안

뉴타운,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안식처를 잃고 도시를 떠도는 사람들, 일명 '뉴타운 난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과거,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아 사업 구역이나 주변 지역에 재정착할 수 없는 세입자들만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저소득 주택 소유자 또한 도시를 떠도는 난민으로 내몰리고 있다.

오를 대로 올라 버린 전세 가격, 월세 가격 그리고 급격히 높아져 버린 자기 부담금은 세입자, 소유자를 가리지 않고 있다. 건축물에 대한 전면 철거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전면 철거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사업 지구 내 주민들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으며, '갈 곳이 없다'는 공포는 세입자, 소유자를 가리지 않고 있다.

뉴타운, 재개발 사업에는 주민이 없다. 개발의 욕망에 사로잡혀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일부 조합원 및 시행사와 건설사, 주택 가격이 다시 오를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부자 조합원, 충분한 여유 자금으로 도시를 사냥하는 외지 조합원과 투자자 그리고 아무런 힘도 없이 이러한 상황을 말없이 방관하며 바라보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무리들에 쫓겨 난 세입자나 소유주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머리와 어깨에 띠를 두르고, 손에는 빨갛고 노란 구호가 적인 팻말을 치켜들고, 하나 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선다.

21세기 우리 사회 도시 재개발 사업의 단면이다. 아프고 고단하고 힘든 삶의 모습인 것이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가 얘기하는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일까? 주민이 주인 되는 정의로운 도시 재개발은 어려운 것일까?

2010년 하버드 대학교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바 있다. 샌델은 우리나라에 방한하여 이러한 현상이 "한국 사회에서도 경제적 성취를 넘어 '정의'나 '공동선'과 같은 삶의 본질적인 문제와 논의에 대한 갈증이나 배고픔"이 있으며, 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정의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원하는 갈증이 있는 것 같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의(衣)식(食)주(住)는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집(주택)은 사람을 자연적인 피해와 사회적 침해로부터 보호해 주고, 인간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 주며, 휴식과 문화생활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삶에 있어 그 어느 것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할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 재개발 사업은 우리 삶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 집(주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정의롭게' 사업의 체계와 절차가 다루어 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도시 재개발 사업에서 정의로운 사업의 체계나 절차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 근대 정의론의 대가 존 롤스. ⓒ프레시안
근대 정의론의 대가인 존 롤스(1921~2002년)는 그의 저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1971년)에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제시한다. '정의'가 원초적 입장에서 무엇을 분배하느냐의 문제를 다룬다고 하였을 때, 어떠한 '기본적 가치(primary goods)'들이 분배 대상으로 논의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분배의 과정에서 최소 수혜자의 입장을 우위에 위치시키는 '차등의 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결과적으로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사회의 기본 구조를 구성하는 절차는 공정성의 기준이 그 절차 안에 포함되어 있어 절차대로만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공정하다는 '순수 절차적 정의관'을 근간으로 한다.

롤스는 이와 같이 바르고 공정한 절차가 포함되어 있는 사회 기본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보다 더 큰 사회의 기본적인 자유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 모든 사람들은 개방된 사회 기본 구조의 절차에 공정하고도 균등한 기회의 조건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의 기본 구조가 더 큰 이익을 위해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평등하게 작동할 수는 있으나, 이러한 불평등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때만, 특히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정당하다는 '차등의 원칙' 등 세 가지 정의의 원칙들을 제시한다.

롤스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정의의 원칙들이 포함된 바르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사회의 기본 구조가 세워질 때 비로소 사회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롤스의 정의의 원칙들 즉, 바르고 공정한 절차를 도시 재개발 사업의 절차 속에 내재되도록 한다면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도시 재개발 사업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첫째, 공공성 혹은 공익성의 원칙이다. 도시 재개발 사업이 일부 조합원이나 시행사, 건설사, 부자 소유자, 투자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는 사업이 아님은 분명하다. 도시 재개발 사업은 법령에도 나와 있듯이 도시 및 주거 환경의 정비나 주거 생활의 안정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도시 재개발에 따른 도시 공간의 변화는 사업 구역뿐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에 영향을 주어 새로운 도시 공간 구조를 창조한다.

또 도시 재개발 사업이 공공성 혹은 공익성의 원칙을 통해 최근 들어 국토해양부에서 법령 개정을 통해 추진한 공공 지원의 확대나 공공 관리자 제도가 갖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법령에 의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의 지원은 가장 낙후되고 불량한 주거 환경 개선 사업 지구가 우선 지원 사업 대상 지구로 고려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둘째, 사회 통합의 원칙이다. 도시는 생성, 성장, 쇠퇴,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은 도시 자체가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가 관계를 이루면서 맺어지는 사회 공동체의 변화 과정인 것이다. 도시 재개발 사업은 이와 같은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서로에 대한 호혜와 배려 속에 진행되어야 한다. 도시 재개발 사업에 있어서 사업 구역 내의 지역 커뮤니티는 물론 역사와 문화의 보존이 우선시되고, 주민 및 지역 영향 평가 제도 등이 마련되어야 할 까닭이다.

셋째, 구조적 공정성의 원칙이다. 소유권은 개인의 기본적 자유권의 하나로 침해되어서는 아니 되며, 이를 근간으로 한 경제적 이익 또한 개인의 소유이자 보호되어야 함은 마땅하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의 자유가 더 큰 자유 즉, 사업 구역 내에서 거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존권이나 주거 생활 및 삶의 터전에 대한 거주권 등은 물론 전체 사회의 도시 재개발 사업에 따르는 공익적 자유를 심각히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공공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헌법 제37조 제2항),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 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헌법 제122조) 이유이기도 하다.

넷째, 절차적 공정성의 원칙이다. 공공성 혹은 공익성의 원칙이나 사회 통합의 원칙, 그리고 구조적 공정성의 원칙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도시 재개발 사업과 관련된 제반 절차에 있어 사업 구역 내의 모든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도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도시 및 주거 환경 정비법'을 포함한 도시 재개발 사업과 관련된 모든 법령에서 조합원은 토지 등 소유자만이 될 수 있으며, 각종 주민 설명회 등 공개된 의견의 수렴 절차 또한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은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이러한 폐쇄적인 사업의 절차가 또 다른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도시 재개발 사업의 절차는 사업 구역 내의 모든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하며, 사업 추진과정에서의 정보 공개 또한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 도시 재개발 사업에 있어 세입자를 포함한 모든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 조합원 제도 등을 통해 개방된 사회적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다섯째, 실질적 형평성의 원칙이다. 도시 재개발 사업이 특정 개인이 아닌 모든 주민, 나아가 도시 전체에 그 영향이 미치게 됨을 고려하였을 때, 사업의 결과에 따르는 유무형의 제반 파급 효과는 특정한 집단 즉, 일부 조합원, 시행사, 건설사, 투자자 등이 아니라 소유자나 세입자를 포함한 사업 구역 내의 모든 주민들에게 공평하게 배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업의 결과에 따라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지 않도록 사업 구역 내 최소 수혜자(도시 저소득 취약 계층)의 이익(보상비, 주거의 안정성 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도시 재개발 사업의 결과인 종후자산을 배분함에 있어 보다 다양한 배분 방식을 통해 선택권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향후 도시 재개발 사업에 대한 더 발전된 논의를 전개함에 앞서 제시한 도시 재개발 사업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들이 포함된 사업 절차가 확립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르고 공정한 절차가 포함된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도시 재개발 사업만이 도시를 떠도는 뉴타운 난민들을 최소화하고, 주민이 주인 되는 도시 재개발 사업을 실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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