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예수보다 미국을 사랑한 교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예수보다 미국을 사랑한 교회

[해방일기] 1946년 10월 24일

1946년 10월 24일

오기영(1909~?)의 글을 몇 차례 소개한 일이 있다. 강만길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창비 펴냄)에 오기영에 관한 한 절이 있다(464~469쪽). 그중에 오기영의 평론집 <민족의 비원>(1947년) 서문에서 인용한 이런 대목이 있다.

내 아버지는 우익에 속하는 인물이요 내 아우는 좌익에 속해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내 아버지이기 때문에 존경하며 내 아우이기 때문에 지극히 사랑한다. (…) 그러나 비통한 심정이거니와 나는 아버지의 가는 길이 모두 조국의 독립과 번영을 위하여 반드시 유일무이한 똑바른 길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이 두 가지 길은 모두 조국의 독립에 통해 있기보다는 미국과 소련에 통해 있음을 간취할 때 (…) 너는 우도 아니요 좌도 아니요 대체 무엇이냐? 하는 질문도 많이 받았고 혹은 중간파라, 심하게는 기회주의자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하나의 자유주의자로 자처해 본다.

결국 1949년 월북에 이르고 말지만 오기영의 글은 중간파의 입장을 한결같이 보여준다. 65년 전 상황을 그가 보여주는 글 한 편을 본다. <신천지> 제1권 제10호(1946년 11월)에 실렸던 글을 <진짜 무궁화>(성균관대학교 출판부 펴냄) 170~175쪽에서 옮겨놓는 것이다.

"구원(救援)의 도(道)"

한 젊은이가 있어 구원의 길을 물으매 "네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를 구하라." 한 이가 있다. 이 말이 전해 오기 2000년에 이 거룩한 뜻을 신봉하는 자 억(億)으로써 헤일 만하고 조선에도 이 가르침을 받아들인 지 50년에 이미 신도는 50만을 넘는다고 한다.

그리하여 방방곡곡에 예배당이 있고 주일마다 선남선녀들이 구름같이 모여서 "주의 뜻대로 하오리다" 하는 기도를 올리며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종소리를 따라서 예배당에 가보는 자 거기 같은 하느님의 아들이요 딸이라 하는 교인들이로되 "나사로와 부자"의 구별이 철폐되지 아니한 것을 기이하다 하는 이가 별로 없는 것은 과연 기이한 일이다. (나사로와 부자(富者) : 신약성서 루가복음 16장 19~31절에 나오는 비유. 나사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웠다. 그런데 부자와 나사로 모두 죽게 되자, 나사로는 천사의 인도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는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끌려갔다.)

하기는 이 "나사로와 부자"의 구별이 어느 예배당에나 아직 한 번도 철폐된 적이 없었는지라, 보통이라 할 것이지 기이하다 하는 자 차라리 기이한 정신을 가진 사람일는지도 모르기는 하다. 그러나 네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를 구하라는 이 예수의 주장이야말로 빈곤을 나누고 고락을 함께 하며 인류는 평등과 박애에 살라고 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주의 뜻대로 하오리다" 하는 신도들이 그 생활에 있어서 예로부터 지금까지 가난과 부자라는 엄연한 불평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웬일인가. 예수는 다시, 가난한 라사로는 천당에 오르고 부자는 지옥에 빠지는 무서운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이 경고에 가난한 자 위로를 받았으나 부자는 하등의 불안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나사로의 동무들은 죽어 천당에 가서 생전의 부자를 가엾게 생각할 날을 믿고 생전의 빈궁에 자위를 얻었으나 부자는 우선 생전에 예배당을 잘 다니고 다른 좋은 일을 한 값으로 또한 천당을 가면 될 것이니 구태여 하도 많은 주(主)의 교훈 가운데 그 대목 하나만을 꼭 지키지 않은들 어떠랴 싶은 모양이다.

세상 사람이 드디어 이 진리의 교훈이 실천되지 아니하는 데 낙심하여 다른 진리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천당이 있고 없고, 거기 가서 잘되고 못 되고는 죽은 다음의 일이요 우선 살아생전에 견딜 수 없는 빈궁에서 어떻게든지 벗어나 보려는 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 발견한 진리를 창도하고 그 실천에 노력하려는 사람들은 응당 많은 사람의 공명이 있었지마는 또 반면에 반대하는 이도 많아졌다.

이리하여 폭력으로써 혁명을 성공한 나라에 소련이 있다. 허나, 정치나 외교란 과연 기이한 것이어서 좀처럼 친할 수 없던 예수교의 나라 미국과 예수의 교훈이 실천이 되지 않는 것을 폭력에 호소한 소련과 친해지는 수가 생겼다.

파쇼의 일독이(日獨伊)가 천하를 집어삼키려는 통에 두 나라는 서로 굳게 손을 잡고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인 것을 깨달은 때문이었다. 이 두 나라가 각기 자국의 휴척 앞에서는 선뜩 종래의 감정을 씻은 듯이 버리고 최대의 우의를 가지고 맹우로서 인류의 평화를 옹호하고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를 위하여 협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겼고 신성한 목적은 달성하였다. 천국에 있는 예수나 지하에 있는 칼 마르크스도 친애의 미소를 교환하였을 것이다.

이제 와서 유물론 유심론은 한 개의 철학적 사상이면 족해야 옳을 것이다. 예수와 칼 마르크스는 인류의 평등을 이상으로 하는 점에서 아무런 갈등도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예수도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나가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했으니까 지상천국을 위해서도 부자의 욕심은 배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예수교 신도는 대개 공산주의라면 질색을 한다. 무슨 큰 원수나 만난 듯이 무시무시해 하고 사랑할 생각을 아니한다.

그래서 또 "원수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교훈을 위반한다. 공산주의가 별것이 아니라 그 부를 분배하라는 것인데 그다지도 싫어하는 것은 예수부터도 딱하게 여길 것이며 도대체 예수를 정말로 믿는 것이 아닌 것 아니냐 의심스러운 일이다.

하기는 공산주의자도 예수교 신도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도 우스운 일이, 예수교 신도라면 예수만 길이 믿으라 하면 그만일 것이다. 잘못 믿으니 부자와 나사로가 있지 잘만 믿으면야 빈부의 차별, 인류의 불평등은 해소될 것 아닌가.

하물며 오늘날 우리에게 민주주의 원칙 아래 신교의 자유가 있다. 얼마든지 믿어도 좋다. 다만 잘만 믿으라고, 그러면 죽어 천당이 있다 없다 하는 토론회는 성립할 가능성이 있으나 토지 개혁, 중요 산업 국유화 등을 반대하려고 동포 간에 미워하거나 중상하며 싸울 일은 털끝만치도 없을 것이요 또 없어야 마땅하다.

좌우 합작이 있은 지 여러 달에 드디어 7원칙의 발표를 보았다. 지금 그럴 듯한 원칙이라도 세목에 있어서 불만스러운 여지가 있기 쉽다고 예단할 수 있고 또 현재 불만된 점이라도 장차 그 세목 시행 여하로는 이 불만을 보유할 수도 있을 것이매 따라서 이 7원칙은 좌익의 5원칙이나 우익의 8원칙보다는 피차 허심탄회하면 합작할 수 있는 기초적 조건으로서 지지할 수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 손을 드는 편이 있다. 찬성의 거수가 아니라 반대의 거수다.

지금까지 땅은 다 국유가 가(可)라고 제법 토지 국유론을 말하던 이들인데 그 몰수와 분여의 방법이 틀렸다고 반대하는 것이다. 이 당이 바로 지주당(地主黨)이라 그 심속이 무엇이라는 것은 이제는 얼마큼 알아지기는 하였다. 그러나 묻고 싶은 것은 염치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하기는 대대손손이 토지를 독점한 채로 소작인을 호령해 가면서 살아온 재미를 일조에 내버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애국이란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이거니와 이들도 말인즉 애국을 하자는 것인데 이제 알고 보니 인민이 다 같이 행복될 수 있는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처럼 자기만이 부자로 살며 가난한 자를 호령할 수 있는 그런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뱃속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말하는 "나라"는 자기네만 잘 사는 "나라"요 자기네 집단보다 몇 백 배 몇 천 배 더 많은 소작인이 사는 나라는 안중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합당한가? 때가 민주주의 시대라 하는데 민주주의는 다수인의 복리를 위하여 다수결에 복종하는 신사도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불과 10만 명 내외의 지주를 위하여 이천만 이상이 그대로 불행하자는 민주주의란 어느 천당이나 지옥에나 있을 리가 만무다.

물론 이런 염치없는 지주당과 예수교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예수교 신도들이 주님의 교훈을 잘 지키지 않은 증거로 아직 빈부의 차별과 인류의 불평등이 그대로 존속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합법적으로 온건하게 다수인의 의사에 의하여 다수인의 행복을 위해서 새 나라의 기초조건으로 토지개혁, 중요산업 국유화 등을 주창하게 되어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예수를 믿는 이는 다시 한 번 잘 믿어볼 생각을 해주기를 실로 진실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주당까지도 감화를 시키고 3000만이 모두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워볼 것이지, 공연히 좌익을 덮어놓고 미워만 하려들고 상대를 아니하려드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런 사람들은 대문 앞에 앉아 있는 불쌍한 나사로를 불쌍히 여길 줄 모르던 부자와 다를 것이 없으니 그들은 죽어 천당에 가기는커녕 살아 지상 천국을 건설하는 데도 방해스러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금 대문 앞은커녕 대문 안에 나사로가 팔할 이상이고 제법 부자 축에 들 사람은 일할도 될락말락한 것을 생각하는 동시에 이 팔할 이상의 나사로와 더불어 지상천국을 건설할 역사적 임무를 걸머지고 있다.

다시 한 번 모두 다 골방 안에 들어가서 조용히 기도를 하십시다. 3000만이 골고루 은혜를 받도록.

"이런 염치없는 지주당과 예수교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것이 물론이라고 했다. 정말 아무 관련도 없다고 오기영이 생각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예수교도 문제를 한민당의 좌우 합작 7원칙 반대와 나란히 놓고 이야기하는 데 아무 뜻도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종교와 관계된 문제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면서 꺼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특정 종교를 종교 외적 문제와 관련시키는 논평은 예민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기영은 해방 공간에서 기독교 집단의 역할에 문제의식을 느끼면서도 직설적 표현을 자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군정의 조선인 접촉에서 기독교도들이 유리한 입장이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기독교도들은 종교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 정체성만 가진 일반 조선인과 민족 문제에 대한 태도에서 다른 경향을 보일 개연성이 있었다. 따라서 기독교도 집단의 움직임에서는 미군정기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들어와서도 특별한 의미를 찾을 여지가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조사한 연구물 가운데 기독교회의 정치적 역할을 다룬 것이 많지 않은 것은 역시 종교 집단의 예민한 반응 가능성 때문에 억제된 결과일 수도 있다. 각별히 유의해서 살필 점이다.

김상태의 서울대 박사 학위 논문 "근현대 평안도 출신 사회 지도자 연구"에서 실마리를 잡아본다.

요컨대 미군정청의 한국인 관료층은 통설과 같이 한민당계 인사들이 아니었다. 총독부 관료 출신을 제외한 다수의 외부 충원 인사들은 연희전문 인맥, 공주 영명학교 인맥, 윤치호 계, 평안도 흥사단 계 등 기독교 계의 미국 유학 출신 지식인층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을 이룬 세력은 평안도 흥사단 계 인사들이었다. 미군정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미국의 정서와 이념을 체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였으므로 영어에 능통하였고 박사-석사 학위 소유자로서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적 생활습관과 가치관에 익숙해 있었다. 그들은 또 일제 시기에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 신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제 말기 신사 참배 및 한국 기독교회 일본화 국면에서 서울-경기 지역에 비해 '정통성'을 갖추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은 소군정 치하의 북한에서 월남해옴으로써 철저한 반공 성향의 인사들이라는 점을 입증하였다. 이로써 평안도 출신의 기독교 계 엘리트들은 미군정청의 충실한 보조 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118~119쪽)

인용한 신문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바로 가기 :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