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와중에 이곳 한국에서는 서울 시장 선거가 한창이다. 후보로 나선 이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행복한 서울, 희망 서울을 내세우며 미래를 약속하지만 그 약속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 시장이라는 자리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중앙 정부와 재벌의 압력을 버티며 신자유주의라는 세파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리고 단순한 선거 연합을 넘어서 실제로 서울을 바꿀 수 있을까, 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15일에는 '서울을 점령하라'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지만 서울 시장 후보들은 상대방에 대한 비난 또는 해명과 선거 유세에 바빴다. 선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대안이 없다는 절망과 공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석준의 <신자유주의의 탄생>(책세상 펴냄)은 참으로 반갑다. 이 책은 과거를 배경으로 미래를 논하고 있고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탈출할 나름의 해법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신자유주의가 승리하게 된 이유를, 아니 좌파가 패배하게 된 이유를 꼼꼼하게 따지기 때문이다.
▲ <신자유주의의 탄생>(장석준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
이 책을 이해하려면 생활 세계-국민 국가-지구 질서라는 세 층위를 이해해야 한다. 생활 세계는 "민중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현장"으로 "좌파 정치가 조직하고 대변하고자 하는 대중"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200년 전 노동조합, 협동조합, 공제회, 문화 서클, 여가 활동 클럽이 바로 이 생활 세계를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좌파 정치의 출발점은 생활 세계였다." 그리고 전 지구적인 현상으로 등장한 자본주의가 실현되는 장도 생활 세계였다.
장석준의 설명에 따르면, "국민 국가가 생활 세계와 지구 질서 사이에서 이 두 층위를 매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이다. 그리고 좌파 정당은 선거를 통해 집권하고 국민 국가의 권력을 행사해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했다. 허나 그에 필요한 경제 구조를 갖추지 못했던 사회주의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고, 대량 생산-대량 소비에 기반을 둔 '국민-대중 경제(national-popular economy)'와 더불어 좌파 정치가 힘을 얻었다.
장석준은 이런 기반과 더불어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좌파 정치가 시작되었고 이런 의도를 잘 담은 세력이 '구조 개혁 좌파'였다고 얘기한다. 즉, "현실 제도 정치에 거점을 마련하되 이 진지를 끊임없이 사회 곳곳의 또 다른 진지들, 즉 대중 운동과 연결"하려는 노선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구조 개혁 노선은 칠레 아옌데 정부의 '인민 연합 강령', 1974년 영국 노동당 정부의 대안 경제 전략(AES), 1980년대 프랑스 미테랑 정부의 '공동 정부 강령', 1970년대 스웨덴의 연대 임금 제도와 임노동자기금 등으로 구현되었다. 현실에서 드러난 형태는 다양했지만 그 이념을 분명하게 드러낸 이론가인 앙드레 고르(André Gorz)는 구조 개혁 노선이 "개혁을 요구하는 주체들 스스로 수행하고 통제하는 개혁"이고 "항상 새로운 민주적 권력의 중심들을 만들어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단지 선거에서의 지지도나 노동조합 조직률이 아니라 "권력 관계의 변경"이었다. 이를 위해 고르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제안했다.
-공장 수준 : 노동자들이 노동 조직과 조건에 대한 결정권을 장악한다.
-기업 수준 : 노동자들이 이윤율, 투자의 규모 및 방향, 기술 수준과 개발에 대한 대항력을 확보한다.
-산업 및 부문 수준 : 미래의 위기를 내장한 과잉 생산에 맞서 투쟁한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생산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약점에 맞서 투쟁한다. 이 투쟁은 산업의 방향을 재설정하거나 전환하는 프로그램과 연결된다.
-도시 수준 : 지역 사회의 생활 일체(문화적·사회적·경제적)에 대한, 공공교통, 부동산과 주거, 시 행정, 여가의 조직 등에 대한 독점 자본의 권력 거점에 맞서 투쟁한다.
-광역 수준 : 지역의 생존과 균형, 가시적 혹은 비가시적 실업의 흡수, 위기를 겪거나 사멸하는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일자리 창출 등에 필요한 새로운 산업을 위해 투쟁한다. 이러한 투쟁에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농민도 참여시켜야 하며, 이것은 대안적인 지역 발전 프로그램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들이 함께 작성해야 하며, 독점 자본과 중앙 집권적 정부 모두로부터 독립된 지역 차원의 정책 결정 구심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국가 계획 수준, 즉 사회 전체 수준 : 국가와 독점 자본주의가 설정한 방향을 변경하는 대안적 계획을 짜야 한다. 이 대안적 계획은 사회적 필요에 우선권을 둔다. 그리고 인적 자원(교육, 연구, 보건, 공공시설, 도시 계획)과 국가의 물적 자원을 개발함으로써, 사적 축적과 '소비(자) 사회'라는 목적에 도전한다.
그런데 국민 국가와 국민-대중 경제에 기반을 둔 구조 개혁 노선은 지구 질서 층위의 강력한 방해를 받았다. 국민-대중 경제가 완전 고용 상태를 유지하며 노동조합의 힘을 강화시켰지만, 세계적인 장기 호황은 자본의 힘도 엄청나게 키웠기 때문이다. "인건비 상승을 압박하는 노동자의 힘에 거대 자본이 가격 결정력이라는 더 큰 힘으로 맞섰고, 전통적인 경기 조절 정책에 몰두하던 국가가 통화 공급을 계속 늘려서 이 상호 상승 작용에 날개를 달아"주자 이들 국가들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 지구적인 은행가들의 네트워크는 국민 국가를 넘어서 바라보고 행동했다. 장석준의 표현을 빌리면 "국민 국가에 기반을 둔 정치인들의 국제주의는 은행가들의 국제주의를 결코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화폐 자본이 노동조합과 좌파 정당을 굴복시키며 지구 질서와 국민 국가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허나 이런 패배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석준이 지적하는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 구조 개혁 좌파가 생활 세계의 중요성에 주목하지 못했고 그 속의 권력 관계를 제대로 변화시키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칠레의 아옌데 정부는 "민중 권력 운동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고, 영국이나 프랑스의 좌파 정부도 임금 교섭이나 인상 외에는 노동조합의 단결력을 자극하지 못했다.
구조 개혁 좌파는 '사회'주의를 '국가'주의와 혼동했고 생활 정치에서 나오는 대중의 정치력을 강화시키지 못했다. 생활 세계 수준의 정치를 정치의 또 다른 층위와 연결시키지 못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진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 결과 "지난 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노동계급 공동체들은 점차 사라지고 대신 '미국식' 대중사회가 들어섰다."
둘째, 구조 개혁 좌파는 일국 사회주의를 넘어 다국적 또는 다자적 사회주의를 꿈꾸지 못했다. 단순히 국민 국가 수준의 대안을 폐기하자는 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꿈을 꿨어야 했는데 좌파는 그러지 못했다. "구조 개혁 대안을 선택한다면, 국민 국가의 아래 수준(생활 세계)과 그 위 수준(지구 질서)을 넘나드는 새로운 정치 형태가 필요했다. 가령, 국민 국가의 정치를 지배하는 선거 사이클과는 전혀 다른 지평의 이행 시기를 견디고 돌파해야 했다." 허나 일국의 권력을 장악한 좌파들은 그것에 머물려 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서울 시장 선거로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새로운 서울 시장의 '구조 개혁' 전략은 무엇일까? 그들은 서울을 해체할 수 있을까? 1980년대 초반 켄 리빙스턴의 런던광역시의회의 구조 개혁 실험은 중앙 정부의 방해로 실패했지만 대안 정치의 씨앗을 심었다.
우리의 서울 시장 후보는 어떤 미래를 보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지금의 시장 후보든, 진보 정당이든 선거판 외에 다른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책을 읽었다. 그렇지만 아직 개운하지 않은 점도 있다. 장석준은 생활 세계에서 벌어지는 정치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 정치 투쟁의 구체적인 상을 드러내지 못한다. 허나 책의 앞부분에서 저자 스스로 이런 한계를 인정하니 앞으로 더 지켜볼 일이다. 다만 정치적인 진지라는 도구적인 관점을 넘어 말 그대로 기존의 권력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도와 경험을 저자가 보여줬으면 한다.
예를 들어, 런던광역시의회의 사례를 꼼꼼히 살핀 서영표의 <런던 코뮌>(이매진 펴냄)은 대안 전략이 성공하려면 "현존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비시장적 관계를 규명"하고 "다양한 형태의 비시장적 관계를 창출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고립적인 실천을 넘어 서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규범적 준거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람들의 필요를 해석하고 이를 충족하는 기본적인 방법에 대한 고민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얘기이다.
또 하나, 조지 오웰은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에서 "사회주의는 반대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자는 반대한다"는 말이 논리적으로는 부족하지만 현실적으로 상당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고 얘기한다. 오웰은 많은 사회주의자들의 "숨은 동기는 병적으로 심한 질서 의식"이라고 지적하며 그들이 "기본적으로 이 세상을 장기판 비슷한 무엇으로 축소하는" 현상을 지적한다.
제임스 스콧이 <국가처럼 보기>(전상인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에서 지적했던 바와 동일한 지점이다. 사회주의가 '사회'주의가 되려면 그 사회가 가진 고유한 속성과 다양성에 주목해야 한다. 몇몇 엘리트가 마련한 대안으로 세상이 바뀌는 건 어려울 뿐 아니라 긍정적이지도 않다. 생활 세계의 고유한 지식과 경험(스콧이 '메티스'라 부르는!)이 좌파 정치와 접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사회주의자 윌리엄 모리스는 <유토피아에서 온 편지>(한국에서는 <에코토피아 뉴스>(박홍규 옮김, 필맥 펴냄)로 번역되었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친구, 노동을 값싸게 하기 위한 그들의 모든 계략은 오로지 노동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세계 시장의 식욕은 먹으면 먹을수록 더 커졌습니다. 문명, 즉 조직화된 비참의 고리 안에 들어 있던 나라들은 시장의 기형으로 가득 찼고, 그 경계 밖에 있는 나라들을 개방시키기 위한 폭력과 사기가 가차 없이 사용됐습니다."
모리스는 자본주의와 산업주의가 다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기계 노동이 손노동을 대체하면 안 된다고 보았다. 사석에서 저자가 윌리엄 모리스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 그의 관심이 잘 살아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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