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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매운탕 한 그릇

[꽃산행 꽃글·22] 백암산 사자봉에 오르다

세상의 매운탕 한 그릇

백암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사자봉으로 오르는 길이었다. 백암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백양꽃은 못 볼 줄 알았다. 계절이 벌써 저무는 가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다해 피어난 꽃을 만날 수 있는 건 행운이었다. 산 초입에서였다. 멸종 위기 종인 백양꽃은 더 이상 자태를 드러내지 않았다.

▲ 백양꽃. ⓒ이굴기

▲ 꽃무릇. 석산이라고도 한다. ⓒ이굴기

우리 일행은 가인교에서 백양사를 왼쪽으로 비켜 산으로 올랐다. 오른편 백양사로 가는 편평한 길에는 꽃무릇(석산)이 탐스럽게 줄지어 피어 있었다. 이상하다. 백암산은 흰 바위가 많아서 백암(白巖)이다. 그런데 왜 이리 붉은 꽃들이 지천에 피었을까, 라고 생각하는 건 나의 짧은 소견일 뿐이다.

이 붉은 꽃들과 흰 바위들이 어떻게 서로 어울리고 내통하는지를 나는 전혀 짐작할 수조차 없다. 다만 이제 곧 들이닥칠 단풍의 전조를 의식해서 내 눈이 유독 저 색깔들만 포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백암산은 내장산의 한 자락이니 그 단풍이 오죽 하랴.

올 봄에 한번 와 보았던 길이라 조금은 익숙하다. 하지만 그건 길의 아래, 그러니까 시멘트와 등산객의 발길로 반질반질해진 길바닥만 그렇다는 것이다. 먹구름이 몇 점 흩어진 길의 지붕도 사정은 비슷했다. 하지만 길의 좌우는 전혀 딴판으로서 새로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봄에 피어난 것들은 모두들 가을꽃들에 자리를 내어 주고 다음을 기약하고 있었다. 키 큰 나무들은 꽃을 지우고 열매를 갈무리하고 있었다. 호주머니 하나 없는 나무들은 이제 한 겨울 동안 제 씨앗을 어디에 감출까.

그때 나를 반기던 꽃들은 큰개불알풀, 나도물통이, 왜제비꽃, 털제비꽃 자주괴불주머니, 말냉이, 산수유, 광대나물, 금창초, 석창포, 개구리발톱, 민대극, 넓은잎천남성, 꿩의바람꽃, 얼레지, 보춘화, 고깔제비꽃, 참개별꽃, 흰얼레지, 양지꽃, 애기괭이눈, 산자고 등이었다. 오늘 내 좌우를 호위하는 것들은 이질풀, 메밀, 궁궁이, 양화, 자주괭이밥, 쑥부쟁이, 고마리, 고슴도치풀, 눈괴불주머니, 거북꼬리, 향유, 참꿩의다리, 꽃며느리밥풀, 일월비비추, 봄의말채 등이었다.

▲ 참꿩의다리. ⓒ이굴기

백암산은 가장 높은 봉우리인 상왕봉을 필두로 사자봉, 백학봉, 도집봉, 가인봉 등이 우뚝 솟아 있다. 일반 등산이라면 상왕봉이 목표일 것이나 꽃산행에서는 조금 다른 코스를 잡았다. 우리는 사자봉을 지나 몽계폭로 해서 남창계곡으로 빠지기로 했다.

청류동 골짜기를 한참 걸어올라 한 이정표에 도달했다. 일행은 둘로 나뉘었다. 옆으로 계속 나가서 굴거리나무 집단 서식지를 보고 남창계곡으로 빠지는 팀. 바로 치고 올라가 사자봉 정상에 들렀다가 남창계곡으로 빠지는 팀.

나는 사자봉을 넘는 쪽을 택했다. 봄에 굴거리나무 서식지는 이미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사자봉에 서서 사자봉 그 아래를 한번 더듬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궂은 날씨는 간간이 비를 뿌렸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산중에서 모자 쓰고 비 맞을 때. 나는 그대로 집 한 채가 되고 모자는 처마가 된다. 그리고 풍경(風磬)이 있음직한 곳에 나의 귀는 달린다. 토닥토닥토닥 혹은 타박타박타박. 귀로 바로 육박하여 들어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급한 경사를 오르는데 층꽃풀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포도송이처럼 꽉 여문 꽃들이 그야말로 층층이 달려 있다. 아래 부분이 목질로 되어 있어 층꽃나무라고도 하는 식물이다.

▲ 층꽃풀/층꽃나무. ⓒ이굴기

산은 아무리 얕은 산이라도 그 정상을 쉽게 내 주지 않는 법이다. 이제 더 이상 올라 갈 곳이 없나 싶은데 또 한 봉우리가 저 곳에 있다. 봉우리와 봉우리를 비교해 보면 내 지금 있는 곳이 더 높아 보이는데 화살표는 냉정하게 앞을 가리킨다. 여기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또 더 가라는 것이다.

몇 고비를 넘어 백암산 사자봉에 도착했다. 사자봉에는 그 흔한 표지판도 편평한 바위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만이 자욱했다. 주위가 어두울 정도였다. 내 좁은 시야로는 앞이 가늠되지가 않았다. 첩첩한 허공이 잿빛으로 가득 찼다. 전망이 온통 안개뿐이었다. 저 안개 너머로 가는 길.

……안개 너머. 어제, 나는 저 안개 너머에 있었다. 사자봉 너머 저 어딘가에 암자는 자리 잡고 있었다. 안개가 농축될 대로 농축된 곳이었다. 그 암자에는 젊은 스님이 있었다. 나는 그 암자에서 홀로 수행하는 그 젊은 스님을 만나고 있었다.

스님은 밥을 손수 지어먹고 텃밭을 일구고 죽은 나무를 거두어 땔감을 만든다고 했다.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는 도량이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운문암에서 스님 서너 분이 운동차 다녀갔을 뿐. 찾아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매일 아침과 점심 두 차례 찾아오는 두 마리의 다람쥐를 제외하고.

오후불식. 스님은 하루 두 끼니만 먹는다고 했다. 차 한 잔이 저녁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출발을 할 때 무엇을 들고 갈까 고민을 했었다. 아내에게 부탁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무슨 품목을 골라야 할지 선뜻 떠오르는 게 없었다. 결국 백양사입구역까지 빈손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 슈퍼에서 골랐다. 5킬로그램짜리 '단풍미인' 두 가마니. 스님께 적어도 긴요한 양식은 될 것 같았다.

2시부터 5시까지 암자에서 머물렀다. 녹차를 따라주는 스님 뒤로 백학봉의 아름다운 풍광이 걸렸다. 나는 배에 기별도 안 갔지만 지금 스님은 나 때문에 이른 저녁을 너무 포식하는 것은 아닌가. 더 있고 싶었지만 하루를 건너가는 해가 나에게 신호하였다. 너도 이젠 그만 건너가거라.

"경치가 너무 좋습니다." "단풍 들 때 한 번 더 오세요." 작은 법당과 좋은 풍경과 스님의 평온한 심사를 많이도 어지럽혔다. 작별 인사를 했다. 쌀을 들고 올라갈 땐 몸이 무거웠다. 내려올 땐 마음이 좀 무거워졌다. 파랗게 이끼 낀 돌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잠깐 되돌아보니 사자봉이 암자의 지붕을 문지르고 있었다.

▲ 암자로 가는 이끼 낀 돌계단. ⓒ이굴기

……그 사자봉에 나는 오늘 도착한 것이다. 사자봉에 오르니 억새가 바위틈에 비좁게 서 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바람의 세기를 몸으로 번역하면서 억새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큰기름새도 함께 흔들렸다. 자욱한 안개 너머를 스님이 계신 곳을 눈으로 짚어보았다. 맑은 날이었다면 백학봉을 보면서 위치를 어림했을 터인데 전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억새는 갈대하고 비슷하다. 식물 공부가 더 필요한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갈대'를 떠올리면서 사자봉을 떠났다. 지금쯤이면 스님은 오늘의 마지막 공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시각이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 그는 몰랐다. (신경림 '갈대')

▲ 사자봉 정상의 억새와 큰기름새. ⓒ이굴기

백암산을 내려오면서 귀한 식물을 만났다. 수정란풀이었다. 온통 투명한 흰색이었다. 이 풀은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낙엽이 쌓인 곳이나 습한 곳에서 외부에서 영양을 공급받아야 하는 부생식물(腐生植物)이다. 거무튀튀하게 썩어가는 것들을 정화시켜 저 흰색을 길어 올리는 풀. 가장 백암에 어울리는 식물을 꼽는다면 수정란풀이 아닐까.
▲ 수정란풀. ⓒ이굴기

드디어 산을 다 내려왔다. 국립공원 초소가 보이고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보이고 또 다른 계곡에서 등산객들이 줄줄이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들 요란한 복장이었다. 어디 수행처가 따로 있겠는가. 다만 마음의 자리일 뿐. 옷 색깔만 다르지 백암산이 배출하는 수행처사(修行處士)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나도 그 틈에 요란함을 더하며 껴들었다.

여느 등산로 입구처럼 좌우로 상점들이 많았다. 올 봄에 왔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등산을 마친 등산객들이 홀가분하게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파전 혹은 묵을 앞에 두고 막걸리 혹은 소주를 높이 들고 건배를 하는 팀도 여럿이었다. 그런 왁자지껄한 소리를 헤치고 우리는 나무와 야생화 공부를 더 했다. 감태나무, 예덕나무, 독활, 도꼬마리 등을 공책에 적었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보다는 그래도 나무가 더 많았다.

우리 일행은 장성호로 이동했다. 그리고 호수 주변과 둑 안의 생태계를 더 조사했다. 특히 논두렁에서 발견한 식물들이 소소한 재미를 듬뿍 안겨주었다. 모르는 건 높은 산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을 가까이에도 충분히 많았다. 망외의 소득이었다.

모든 관찰을 마치고 호반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매운탕 전문집이었다. 얇은 비닐이 깔리고 그 위로 각종 반찬이 차려졌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가스버너 위에서 냄비가 끓기 시작했다. 그 전에 반찬을 안주로 해서 하루의 고단함을 털었다. 맥주를 꿀꺽 삼키자 목안에 묻은 먼지도 씻겨나갔다.

몇 순배가 더 돌고 드디어 하얀 김이 나는 냄비뚜껑을 열었다. 묵은지를 비롯한 각종 야채와 벌건 양념 사이로 메기가 토막 난 채로 누워 있었다. 장성호 주변에서 뛰놀던 메기였을 것이다. 술을 한 잔 더 비우고 동안 건너편의 한 분이 앞접시에 야채와 국물을 가득 채워서 건네주었다. 내 덩치를 가늠했는지 메기도 큰 토막을 넣어주었다.

어제 보았던 해가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고 세상에는 모든 저녁이 왔다. 보기만 해도 얼큰한 국물을 떠 입에 넣는데 스님 생각이 났다. 그 스님한테 아침과 점심의 두 끼를 얻어먹는 다람쥐 두 녀석도 생각이 났다. 매운탕 맛? 숟가락은 모르지만 내 혀는 알아차리는 그 맛? 그걸 굳이 여기서 거론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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