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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학교, 교육 기관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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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학교, 교육 기관이 아니었다!

[프레시안 books] 김성천의 <혁신 학교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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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전문가이지만, 누구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문제. 바로 학교 문제다.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학교는 정말로 이상한 공간이다. '교육 기관'이라 불리지만 정작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생은 학교에서 주로 잠을 자거나 친구와 논다. 많은 학생이 왕따를 당했다거나 왕따 시켰던 '비교육적' 경험을 토로하며, 상당수가 교사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공식 통계로만 1년에 150명가량의 아이들이 자살을 하며, 이런 학교 문화에서 잘 버텨 명문대에 들어갈 정도가 된 신입생은 정신적 치료를 요하는 경우가 48퍼센트에 이른다. 대개의 교사는 학생의 반수 이상이 잠자고 있는 교실에서 정해진 진도에 맞춰 공허하게 강의를 하고, 한 달에 때로 1000여 개가 넘는 공문을 처리하기도 한다. 스스로도 교직인지 행정직인지 알 수가 없다.

교장은 상급 기관의 지시 속에서, 혹여 자신에게 책임이 전가될까 두려워 야외 수업조차 허락하지 못한다. 관료 조직의 제일 말단에 학교가 있는 셈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이면 대개 공감하는 학교의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누구나 학교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라고 물으면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한다. 학교가 말단 관료 조직화되어 있으니 교육과학기술부가 어떤 '개혁'을 시행하면 그것은 곧 교사의 무수한 '일감'으로 끝난다.

교사는 교장의 절대적인 권한 하에 있으니, 양심적인 교사가 수업을 좀 바꿔보려고 해도 이 역시 무력하게 실패한다. 새로운 수업 방식을 도입하려고 해도, 그것이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곧바로 관리자의 저지를 받는다. 협력적인 수업을 해보려고 하면, 공부를 좀 잘하는 아이들은 말한다. "진도 나가요!" 이런 악순환 속, 개혁은 늘 개악으로 끝나고 만다.

'진도'는 물론 최종적으로 '대학 입시'를 위한 것이고, 대학 입시는 미래의 직업을 위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학교'는 명문대 몇 명을 보냈는가에 의해 평가되지만, 정작 명문대를 많이 보내는 학교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그래서 학원가가 번화한 곳이다. 매우 보수적인 기능주의 교육 이론에서도 학교의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사회화'를 꼽는데, 아이들은 사회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태도조차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교육 기관'에서 정작 교육은 폐기된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자조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만다. "한국 사회에서 살려면 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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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 학교란 무엇인가>(김성천 드림, 맘에드림 펴냄). ⓒ맘에드림
정말 그런가? 이 책, <혁신 학교란 무엇인가>(김성천 지음, 맘에드림 펴냄)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혁신 학교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면, 그래서 공교육이 변화한다면, 학교는 '정상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혁신 학교는 어떤 학교를 말하는가? "교육 주체들의 협력으로 학교 문화를 새롭게 창출하여 교육 과정, 수업, 평가체제에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하는 학교"(66쪽)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를 포함한 모든 교육 주체들이 서로 도와가면서 학교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학교로, 기존의 교육과 다른 교육을 만들어내는 학교라는 것이다.

저자는 교사·교육운동가·정책위원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 혁신 학교의 모습을 전달하고 있다. 제시된 혁신 학교의 모습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두 가지의 특징을 보자.

혁신 학교는 우선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입학할 때 수준보다 졸업할 때 더욱 끌어올리는 학교"(67쪽)이다. 처음부터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입학하는 특수 목적 고등학교(특목고)나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자사고)와 달리, 혁신 학교는 "다양한 학생들이 경쟁보다는 협동의 가치를 통해서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이해하면서 성장"(68쪽)할 수 있도록 하는 학교이다.

사실 특목고나 자사고의 경우, 학교 자체의 '교육적 성취'가 무엇인지는 누구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한다. 과연 이 학교에 들어와서 아이들이 성장한 것인지, 아이들이 원래 잘하기 때문에 성취도가 높게 나타나는 것인지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 학교는 뚜렷하게 학습 부진 학생의 비율을 줄이고 있다. 2년 만에 학습 부진 학생 비율을 34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낮춘 학교, 20퍼센트에서 6퍼센트로 낮춘 학교 등, 정도에서는 차이가 있으나 '공부 못하던 학생'의 비율이 뚜렷하게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혁신 학교는 "불리한 조건의 학교에 오히려 주목"(112쪽)하는 것이다.

또 하나, 혁신 학교는 "수업과 교육 과정, 학급 운영"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학교"(125쪽)다. 매우 상식적으로 보이는 이 규정은, 혁신 학교의 근본적 정체성이라고도 할 만하다. 학교는 '교육'보다는 '관료 조직'으로서의 성격이 더 크기 때문에 정작 '교육이라는 본질'에 소홀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따라서 오랜 세월 관료적 운영이 뿌리박은 상태에서, 일회적 전시 교육이나 보충 수업, 보여주기 식 프로그램 등을 폐기하고, 성과가 눈에 바로 보이지 않는 '수업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혁신 학교는 '학교 차원'에서 교육적 본질에 집중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질 높은 수업과 평가, 학급 운영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좋은 기획이다! 그런데 이 역시 한발 물러나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학교'의 모습이다. 원래 학교란, '모든' 국민들을 정치적·경제적 차원에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곳이 아닌가? '교육'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인격체로 대접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을 키워내는 곳이 아니던가? 즉, 혁신 학교는 본래적 학교의 모습을 되찾는 학교 운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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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학교 운동은 '공교육 개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간의 개혁의 수많은 흐름이 실패했던 것과 달리, 학교라는 조직 자체를 공동체로 바꾸는데 성공한다면, 교육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학교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관점으로 구성된다면, 국가와 시장 접근이 갖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53쪽)다는 것이다. 이 말은, 국가로 대표되는 관료제적 운영과, 시장으로 대표되는 서열주의적 반 평준화의 지향이 갖는 한계가 혁신 학교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겠다.

실제로 혁신 학교에서는 잔인한 경쟁이 아니라 협력적 학습을 통해서 입시에 성공한 경우나, 뒤처지는 아이들과의 배움 공동체를 통해 더 잘 학습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행복하게 수업을 듣고, 나름의 지력을 계발하여, 창의적 존재로서 사회에 첫발을 딛게 되는 것이다! 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말이다. 혁신 학교는 새로운 수업을 통해, '입시 지옥과 학교 붕괴'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고리를 하나씩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혁신 학교 만들기는 그리 녹록한 과정이 아니며, 혁신 학교의 사례가 공교육 전반의 변화와 잘 맞물릴 것인지에 대한 비전도 명확하지 않다. '성공한 혁신 학교'는 온전한 '문화'의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저자도 수차례 이야기하듯이, 혁신 학교를 위해서는 최소한 4년에 걸친 운영 계획이 있어야 하며, 교육에 대한 교장의 확고한 비전과 철학이 있어야 하며, 더 좋은 수업을 위해 자기 수업을 개방하고 함께 연구하는 교사 공동체도 있어야 한다. 물론 교육청의 지원도 지속되어야 한다. 교사 스스로 변화에 자발적이어야 하며, 민주적 소통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경직된 문화 속에서 창의적 수업을 위한 교육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너무 많지 않은가? 모두가 숙제인데, 그 하나하나도 풀기 쉽지 않은 숙제이다. 이것이 저자 스스로도 여섯 차례 이상 혁신 학교를 준비했지만 "매주 모여서 학습하고, 때로는 밤을 새워 토론하"였음에도 "단지 두 군데만 성공"(252쪽)했던 이유일 것이다. 도대체 어떤 문제로 이 네 곳은 실패한 것일까? 사실은 실패가 더 일반적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혁신 학교 설명회에 다녀온 교사는,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이 모두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고 말했다. 과연 기존의 학교와 미래의 학교를 잇는 건널목은 어떤 방식으로 놓아야 하는 것일까? 헌신적 교장이 없을 경우, 혁신 학교는 불가능한 것인가? 교육 과정에 교육 주체 가운데 하나인 아이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반영되어야 하는가? 수업의 변화를 위해서는 과목마다 어떤 지식과 대안이 필요한가? 아마 변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는 장애가 될 만한 많은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 책에 실패로 건너가는 다리들에 대한 설명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책의 문제의식이 혁신 학교 성공을 위한 안내서를 내는 것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는, 혁신 학교 성공의 이유는 바로 이런 책이 가능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즉, 실패했던 지금까지의 수많은 정책과 달리 혁신 학교는 '현장'의 자발적 노력과 맞물려 있으며, 그 하나의 매듭이 현장 전문가의 이 책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제안들은 공허하지 않으며, 읽는 이들의 겸허한 반성을 이끌어낸다.

이 책이 소중한 이유이다. 작지만 눈부신 하나하나의 혁신 학교 사례들이 급속히(!) 확장되어, 학교에 대한 문법을 완전히 바꿔놓게 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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