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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前生)과 전신(前身)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오늘 아침 나는 밥을 먹었다. 밥의 전신은 쌀이다. 쌀은 벼에서 나온다. 사과가 사과나무에 달리는 것처럼 쌀도 쌀나무에 달리는 줄로 아는 아이들도 있다. 도시에서 나고 도시에서만 자란 경우라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점심에는 짜장면을 먹었다. 짜장면발의 전신은 밀가루이다. 밀도 밀나무에 달리는 게 아니다. 밀은 밀이라고 하는 식물의 열매이다. 밀가루는 이 열매인 밀을 빻은 것이다. 밀은 보리하고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밀은 가루로 가공하고 다시 물로 반죽을 해서 끓이거나 구워서 먹어도 맛있다. 하지만 그냥 이삭째 불에 구워 먹어도 너무 맛있다. 물론 불에 탄 까끄라기로 인해 입 주위가 시꺼멓게 되는 것은 각오해야 하겠지만.
짜장면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주로 아이들을 상대로 떡볶이와 어묵을 주로 파는 가게 앞에 화분 무더기가 있었다. 어묵의 주성분은 밀가루이고 떡볶이의 그것은 쌀이다. 전에는 볼 때는 맨드라미, 접시꽃, 봉숭아, 나팔꽃 등등이 어울려 있었다. 오늘 유심히 보았더니 벼가 심겨 있는 게 아닌가. 이곳에서 뜻밖에도 벼를 보다니! 눈이 좀 휘둥그레졌다.
"농사는 예술이다"라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 그는 '쌈지농부'의 천호균 대표이다. "광화문광장이나 서울광장에서도 벼농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 그는 유기농으로 일가를 이룬 '사단법인 흙살림'의 이태근 대표이다. 궁리에서 이 두 분의 대담집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한다. 나는 지금 벼를 키우는 그런 창조적인 일은 못한다. 그저 손바닥만한 책을 출판하는 작업을 해서 겨우 밥벌이를 한다. 분식점 앞 화분을 그간 숱하게 지나쳤다. 그러니 오늘 처음 벼를 본 것은 분명 아니었다. 이렇게 이 시점에 옥인동의 아스팔트 옆에서 자란 벼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래도 그런 분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을 만든다는 최근 사정의 덕분이었을까.
▲ 옥인동의 벼 화분. ⓒ이굴기 |
2
올해는 벼에 대해 나도 색다르게 공부하는 기회를 가졌다. 9월 셋쨋 주에 파라택소노미스트 두 번째 산행으로 백양사를 품고 있는 백암산에 갔었다. 흰 바위가 많아서 백암산으로 불리는 산에는 호남의 가을꽃 냄새가 물씬했다. 이 산은 봄에도 온 적이 있다. 봄꽃과 가을꽃은 아주 달랐다. 백암산 정상인 사자봉을 거쳐 내려오니 시간이 좀 남았다. 일행은 장성호 주변에 있는 들판으로 가서 호숫가, 논두렁, 밭 등의 생태계를 조사하기로 하였다.
장성호는 아주 넓은 호수였다. 호수로 흘러드는 물가 주위에는 쓰레기도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 쓰레기들을 모두 피하면서 이런저런 야생화들이 피어 있었다. 지저분함과 악취는 자신의 소관 사항이 아니라는 듯 꽃들은 태연히 최선을 다해 피어나 있는 것이었다. 그냥 건성으로 매끄러운 수면이나 보고 두둥실 흰 구름만 보아왔는데 직접 수변의 땅을 밟으니 무척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였다. 미국실새삼, 며느리배꼽, 매자기, 나도겨풀, 뚜껑덩굴, 강아지풀, 자귀풀, 차풀, 쑥, 비수리, 큰고랭이 등이었다.
특히 여뀌, 개여뀌, 흰여뀌 등 여러 종류들의 여뀌들이 많이 있었다. 여뀌에 관해서 나는 특별한 추억이 있다. 언젠가 여뀌에 관한 그 이야기는 따로 한번 쓸 작정이다. 그리고 억새가 먼 하늘을 꿈꾸며 바람에 긴 몸을 맡기고 있었다. 수변을 다 보고 가을 들판으로 올라섰다. 농촌에서 자란 나에게는 그냥 익숙한 풍경이었다. 논에는 벼가 무거워진 고개를 숙이고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다 자란 벼는 아랫도리를 훤히 드러낸 채 말라가고 있었다. 지난 여름 흙속의 양분과 물을 힘껏 위로 올려 보낸 줄기는 바짝 야위었다. 옛날이라면 그 벼 줄기들은 소의 먹이인 여물로, 초가지붕을 덮는 재료로, 여러 용도로 쓰이는 새끼줄로 사용되었다. 이제 주인이 시퍼런 낫을 가지고 와서 벼 베기를 할 것이니 벼는 제 발목을 내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는 것은 벼뿐만이 아니었다. 논둑과 논둑 주위에 있는 풀들을 관찰하기 위함이었다. 가장 먼저 이름을 익힌 건 각시그령이었다. 그냥 잡초라고만 알아왔던 곳에서 이런 예쁜 이름을 만나다니! 붉은빛이 감도는 꽃은 귀엽고도 예뻐서 손을 갖다 대려니 몸이 먼저 간지러워졌다. 그리고 논둑외풀. 그 키 작은 풀들을 만나려니 자연스럽게 땅에 엎드려야 했다. 물 없는 논과 바짝 마른 논바닥, 단단히 여문 나락들. 농약 냄새는 안 나고 추억의 냄새가 물씬 났다.
▲ 각시그령. 붉은색의 꽃이 벼이삭처럼 촘촘히 달려 있다. ⓒ이굴기 |
그리고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들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맙소사. 그냥 덤벙덤벙 다니기만 했던 논두렁 주위에 그렇게 다양한 식물들이 사는 줄을 몰랐다. 하늘방동가지, 바늘여뀌, 밭둑외풀, 그리고 박하. 박하는 나도 아는 풀이었다. 작은 잎을 하나 따니 벌써 박하사탕을 깨물 때처럼 박하향이 코를 찔러왔다.
▲ 박하. ⓒ이굴기 |
어릴 적 무수히 논두렁을 밟고 다녔다. 논두렁에는 콩을 드문드문 심기도 했다. 그리고 풀은 베어다가 꼴을 만들어 소를 먹였다. 그 풀 속을 뛰어다니던 방아깨비와 메뚜기는 잡아서 내가 구워먹었다. 그렇게 옛날 생각에 잠겨 논두렁을 질러가자 묵은 밭이 하나 나왔다.
고랑이 다 허물어진 빈 밭에는 각종 풀들이 수북이 자라나고 있었다. 이곳도 그냥 잡초가 많네, 라고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미국가막사리, 중대가리풀, 차풀, 자귀풀 등 생태계를 이루는 식물이 자기 자리를 어엿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 중대가리풀. ⓒ이굴기 |
백암산을 톺아나가면서 꽃산행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산 아래에서 이렇게 논두렁을 훑어보는 공부가 무척 신선했다. 굽이굽이 논둑을 걸어갈 땐 온몸에서 꿀렁꿀렁 풀물이 솟아나는 듯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걷는 이 기분!
멀리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보이고 논두렁을 벗어났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마을을 향해 꾸불렁꾸불렁 기어가는 논두렁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 논두렁 끝까지 가서, 마을 너머로 가서, 또 그 너머너머로 계속 간다면 어디로 연결될까. 내 고향으로, 내 어린 시절로도 갈 수 있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돌아서는 내 특별한 심정에 눈이 번쩍 뜨이는 광경이 들어왔다. 이제는 이름을 알 수 없게 된 어느 벌레 한 마리. 가을강아지풀을 휘감아서 누에처럼 제 몸을 칭칭 감아 고치를 만들고 있었다. 아마도 그 녀석은 지금 새로운 우화(羽化)를 꿈꾸고 있으리라.
▲ 길게 굽이 돌아가는 논두렁. 이 논두렁 끝에 마을이 달려 있다. ⓒ이굴기 |
▲ 가을강아지풀을 휘감으며 고치를 만드는 어느 벌레. ⓒ이굴기 |
3
전생과 전신은 달라도 한참 다르긴 하다. 하지만 또 한긋 생각하면 이렇기도 하겠다. 전생은 전신을 포함하는 말이 아닐까. 백암산에서 돌아와 쌀밥 몇 공기를 비우자 며칠이 흘렀다. 9월 마지막 날에 어머니를 모시고 잠깐 고향엘 들렀다. 내 고향 마을의 들판 역시 익어가는 벼들로 출렁이고 있었다.
나는 마을 앞 도로에 서서 벼를 바라보았다. 가로수인 느티나무가 논에 그림자를 아름답게 드리우고 있었다. 논두렁에 가까이 가자 그림자는 더욱 똑바로 서는 것 같았고 키도 커졌다. 그렇다면 나도? 느티나무 가까이로 무람없이 다가가자 논은 때에 전 내 그림자도 흔쾌히 받아주었다. 휘늘어진 나무의 품에 안긴 작은 그림자는 흡사 느티나무의 새끼처럼 보이는 것도 같았다.
▲ 고향 들판에서 벼가 익어가는 논에 드리워진 느티나무와 나의 그림자. 이 사진은 8월 말 벌초하러 갔다가 찍은 것으로 아직 벼가 제대로 익지 않았다. ⓒ이굴기 |
논 가운데에 선 느티나무의 그림자와 나의 그림자를 오래 바라보았다. 바라볼수록 그림자 둘은 아주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저 그림자에 앞뒤가 있을 순 없겠다. 하지만 저 작은 그림자의 전신은 분명 나였다. 논 가운데에 꽂힌 작은 그림자는 나의 다음 생을 가리키는 표지판일까. 두 그림자를 무량하게 바라보는데 퇴계(退溪)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前身應是明月(전신응시명월)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幾生修到梅花(기생수도매화)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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