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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은 사형장 망나니, 구원의 조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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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은 사형장 망나니, 구원의 조건은?

[2011 가을, 조원희의 선택] 이무영의 <새남터>

공포가 지배하던 시대

'공포'는 사람들이 평소 회피하고 싶어 하는 감정이다. 그 감정을 느끼고 소모하는 에너지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때로 공포 그 자체를 즐긴다. 외면하고 싶고 회피하고 싶은 감정을 스스로 느끼기 위해 공포 소설을 읽거나 공포 영화를 본다. 공포가 주는 카타르시스, 공포가 사라진 후에 느낄 수 있는 해소감, 혹은 공포의 정반대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감정을 하이라이트할 수 있는 기회 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 그 자체를 즐기는 마니아 취향의 사람이 분명히 다수는 아닐 것이다.

조선 시대는 바로 이 공포에 의해 통치되던 시대다. 유교라는 명확한 행동 규약과 신분 지침이 존재하는 가운데 그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는 모든 행위는 공포에 의해 억압됐다. 가까운 관가에서는 언제나 태형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서울 시내에만 여섯 군데의 사형장이 있었을 정도였다. 사형의 방법도 여러 가지여서 사약을 내리거나 참형을 하는 정도를 넘어서 능지처참이나 부관참시 등 현대에 와서는 상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용어들이 실제로 사람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곤 했다.

현대의 사람들이 공포 영화를 보듯, 조선 사람들은 참형을 목격했다. 죄인의 목을 베는 참형은 가장 널리 이용된 사형의 방법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신체로부터 떼어내는 작업으로 형을 집행한다는 것은 실로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참형이 이뤄지는 사형장엔 언제나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구경꾼들은 대부분 당시 계급으로 평민들, 혹은 천민들이었다. 지배자들로부터의 공포에 의해 조종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금지된 계율이 무엇인가를 학습하고 부가적으로는 공포를 즐겼다.

▲ <새남터>(이무영 지음, 휴먼앤북스 펴냄). ⓒ휴먼앤북스
그런 조선 시대 사형장의 주인공은 사형수가 아니라 언제나 망나니였다. 이무영의 <새남터>(휴먼앤북스 펴냄)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공포를 받아들이고자 모여든 군중, 잔혹한 처형과 어울리지 않는 찬란한 날씨 그리고 이 현장의 주인공인 동시에 이 소설의 주인공인 망나니 도금치.

사형장 새남터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모여 있는 군중에게 공포를 선물하고 사라질 이들은 모두 천주교인이다. 주인공 도금치는 그들을 '순교'의 길로 이끈다.

독자들은 여기서 공포가 지배하던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도금치 역시 바로 그 희생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금치에게는 천주교인이었던 과거가 있다. 망나니들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죄인이고 사형수였다. 죄 값을 목숨으로 치르는 대신 다른 이들의 목숨을 빼앗는 직업을 가지는 것으로 사함을 받은 저주받은 이들.

사랑과 우정을 통해

<새남터>는 여러 가지 편견을 통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목적지와 같다.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에 관한 이야기라는 편견, 그리고 전업 소설가가 아닌 영화감독 이무영이 썼다는 편견을 거쳐야만 한다.

<새남터>에서의 기독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으로 대표되는 한국 특유의 포교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 존재한다. 이 소설에서 기독교는 공포와 억압, 폭력과 위장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를 반대쪽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반사광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이무영은 인간 영혼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제시하는 동시에 사랑과 우정이라는 장르 영화에 언제나 존재하는 감정을 통해서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이무영은 희한한 사람이다. 팝 칼럼니스트와 방송인에서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영화감독이 됐다는 직업적 유전은 둘째로 놓고 그의 작품 세계가 희한하다. 이무영은 지금까지 모두 열한 편의 영화 각본을 썼고 그 중 다섯 편을 감독했다. 그중에는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 같이 대중의 취향 이 중심에 존재하는 영화도 있었지만 '돈이 필요한 나머지 자신의 아버지를 납치하며 벌어지는 살인극'인 <휴머니스트>나 그 제목만으로도 내용의 기괴함이 충분히 느껴지는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 소녀> 같은 '희한한' 영화들이 많았다.

이무영이 혼자, 혹은 공동 작업으로 각본을 쓴 열한 편의 영화 중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영화는 음악 영화 <저스트 키딩> 단 한 편밖에 없다. 아홉 편의 영화에서 살인 장면이 나오고 그중에는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으로는 한국 영화사상 손꼽힐 만한 <복수는 나의 것>도 있다. 이런 필모그래피는 그가 인간이 공포에 맞서는 심리를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의 방증이다.

<새남터>는 다분히 엔터테이닝한 작품이다. 영화감독 특유의 자유로운 계산의 플롯 전개는 이미 많은 이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예산의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펼쳐낸 상상력'으로 풀어낸 스토리라인은 이 책이 지닌 엄숙하고 무거운 주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효하다. 망나니 도금치에게 주어진 새로운 미션 그리고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복기와 퍼즐 풀이, 이런 영화의 플롯으로부터 가져온 것들은 책을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윤활유의 역할을 한다.

구원을 받는다

부끄러운 역사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서양에 홀로코스트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종교와 관련된 대학살이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전쟁 혹은 대학살의 기억이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여러 가지 대답을 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분명히 '공포를 극복하는 것'일 것이다.

<새남터>는 공포를 극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도금치는 신의 존재를 믿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양반집 자제에서 사람의 목을 베며 생활하는 망나니가 되어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친구인 재필은 신분의 상승 혹은 생존을 위해 배신과 음모를 꾸미고 그 결과가 빚어낸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인물이다.

공포의 시대를 살아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이들은 구원받아야만 할 존재들이다. 주인공들이 선택한 구원의 방법은 종교였지만, 과연 종교일까? '구원의 상징'인 인물이 최후에 등장하지만 이들이 얻어낸 구원은 분명히 사랑과 우정을 통해서 얻어낸 것이다. 영화 <영웅본색>이 그랬던 것처럼, 혹은 햄릿이 결국 도달하지 못했던 바로 그 지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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