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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에 빠진 스웨덴, 그 남자가 나섰다!

[2011 가을, 김명남의 선택] 헤닝 만켈의 <한여름의 살인>

이름 : 쿠르트 발란데르
나이 : 1948년 출생
사는 곳 : 스웨덴 남부 스코네 주의 위스타드
직업 : 위스타드 경찰서의 형사
가족 : 린다라는 딸이 있고, 아내 모나와는 이혼했음. 어머니는 그가 11살에, 화가였던 아버지는 그가 46세에 사망했음. 형제로는 스톡홀름에 사는 누이 크리스티나가 있음.
취미 : 음악 감상. 주로 오페라를 들음.
건강 : 48세에 당뇨 진단을 받았음. 몸이 무거웠을 때는 92킬로그램까지 나갔음. 용의자 사살 후 우울증에 시달려 1년 병가를 내고 쉬었던 적이 있음.
성격 : 무뚝뚝하고, 직선적이고, 침울함. 생각이 많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 수사관다운 직관과 끈기가 있음. 사회성이 부족하고, 때로 독불장군처럼 고집을 부리거나 다혈질적으로 분노함. 정치 사회적 시각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특정 주의를 따르지 않음.

내가 소개하고 싶은 것은 이 남자다. 나는 기회만 있으면 이 남자를 남들에게 소개한다. 이 남자가 1990년대에 얼마나 센세이셔널한 사건들을 수사했는지 소개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남자'가 아니라 '소설들'이다. 쿠르트 발란데르는 스웨덴 소설가 헤닝 만켈이 창조한 경찰 소설 시리즈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 <한여름의 살인>(전2권,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 좋은책만들기 펴냄). ⓒ좋은책만들기
발란데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총 열 권이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1년에 한 권씩 출간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9년에 마지막 편이 선보였다. 그 중 <하얀 암사자>, <미소 지은 남자>, <다섯 번째 여자>, <한여름의 살인>, <방화벽>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권혁준 옮김, 좋은책만들기 펴냄). 원작의 출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인데, 이 중에서도 하나만 골라 달라고 한다면 나는 <한여름의 살인>을 권한다. (<미소 지은 남자>도 좋은데, 아쉽게도 전자책으로만 구할 수 있다.)

발란데르 시리즈는 45개 언어로 번역되어 총 3000만 부 넘게 팔렸고, 스웨덴에서는 두 차례 TV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쿠르트 발란데르를 '스웨덴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고 소개할 순 없을 것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창조한 '삐삐 롱스타킹'이 버티고 있으니까. 하지만 두 번째로 유명한 인물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

이 남자는 원래도 유명했으나, 최근 들어 더 유명해진 계기가 있었다. 영국 BBC에서 이 소설을 드라마로 제작한 것이다. 배우 케네스 브래너가 발란데르로 분한 드라마는 2008년과 2010년에 방영되었고, 지금 한창 세 번째 분량이 제작되고 있다. 덕분에 이 남자는 스웨덴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유명인이 되었고, 추리 소설 독자들뿐만 아니라 TV 시청자 사이에서도 유명인이 되었다. 나는 이 남자를 처음 만난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누가 멍석만 깔아주면 '옳다구나' 하면서 이 남자를 남들에게 소개했으나, 이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늘 침울한 과체중의 중년 형사에게 무슨 매력이 있어서 그럴까? 글쎄, 바로 그 점이 매력이라고 답할 수밖에. 이 남자에게는 타고난 직관도, 천재적 지식도, 유별난 행동력도 없다. 수사관으로서 유능하기야 하지만, 그것은 스무 살에 경찰에 투신한 이래 오랫동안 성실하게 직업적 기술을 연마한 결과일 뿐이다.

이 남자는 일 중독자다. 그런데 그 경직된 껍질 속의 연약한 알맹이가 독자로 하여금 이 남자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는 경찰을 관둬야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끔찍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을 늘 만나는 것도 힘들고, 수사에 몰두해 자기 인생을 방기하는 것도 지긋지긋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을 관두면 뭘 하겠는가? 사설 경비 업체에 취직하는 것밖에 달리 대안이 있겠는가? 익숙하지 않은 컴퓨터 범죄를 파헤치며 자신이 구닥다리라고 걱정하는 모습, 술에 취해 멀리 라트비아의 여자 친구에게 전화했다가 다음날 당장 후회하는 모습, 상사와 자신을 이간질하려는 동료에게 역정을 내는 모습. 오죽하면 작가조차 발란데르를 가리켜 스스로 창조한 인물이건만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는데,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발란데르의 성격 묘사가 생생하다는 뜻이다.

현대인이라면, 더욱이 일 중독자라면 누구나 감정 이입할 만한 이 남자의 칙칙한 매력이 소설에서 큰 몫을 차지하긴 하나, 그것만은 아니다. 발란데르 시리즈는 첫째로 오락이 될 만한 추리 소설이고, 둘째로 내가 사는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사회 소설이다. 연쇄 살인, 암살, 폭발 등 갖가지 강력범죄를 해결하는 수사 과정이 치밀하게 묘사된다는 점에서 확실히 추리 소설이다. (물론 수수께끼 풀이에 집중한 고전적 탐정 소설은 아니다. 범행의 전말이 독자에게 미리 공개되는 구성도 자주 취하고, 특히 결말에서 다소 난데없는 액션이 펼쳐질 때도 있다.)

그 사건들이 1990년대 스웨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대표적으로 형상화한 것들이라는 점에서는 사회성이 짙다. 이주 노동자 문제, 여성 학대, 장기 매매, 특권을 지키고자 범죄에까지 손을 뻗는 타락한 자본. '복지 국가 중의 복지 국가'인 스웨덴이 실은 어떤 문제들과 싸우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1년의 절반을 마푸토에 살면서 모잠비크 최초의 상업 극단을 운영하는 만켈답게 국제적인 문제도 끌어들인다. 요컨대 세계와 상호 작용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가 겪는 문제들, 가령 점증하는 폭력으로 인해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고단함을 범죄 소설의 형식에 담아내는 것, 이것이 작가의 목표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들이 밋밋한 묘사나 주의 주장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로서의 재미를 간직한다는 것, 이것이 이 시리즈가 읽히는 이유이다.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로서의 경찰 소설이란 물론 만켈의 창조물이 아니다. 만켈에게는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라는 대선배가 있었다. 1960~70년대에 열 권의 소설을 공동 집필했던 기자 출신의 부부 작가는 추리 소설 역사상 거의 최초로 그런 시도를 했던 장본인들이었다. 그들이 창조한 '마르틴 베크' 경감은 수많은 '후배' 형사에게 영향을 미쳤다.

영향력은 스웨덴 바깥으로도 미쳐, 최근 몇 십 년 동안 북유럽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찰 소설과 범죄 소설이 씌어졌다. 최근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밀레니엄 삼부작'의 작가 스티그 라르손은 별쭝난 존재가 아니라 이 전통의 끄트머리 가지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 전통을 읽어보려는 독자들에게 권하는 글에서 쿠르트 발란데르가 빠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북유럽 추리 소설이 많지 않으니, 위와 같은 종류의 작가들에게 관심이 있더라도 양껏 읽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소수의 번역본들만으로도 그 전통의 활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하고, 그 중 발란데르가 발군임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발란데르와 더불어 널리 소개하고 싶은 인물로 노르웨이의 콘라드 세예르 경감과 아이슬란드의 에를렌두르 경관이 있다.

카린 포숨의 콘라드 세예르 시리즈는 <돌아보지 마>,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가 번역되어 있고(김승욱 옮김, 들녘 펴냄),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두르 시리즈는 <저주 받은 피>, <무덤의 침묵>, <목소리>가 번역되어 있다(전주현·이미정·이기원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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