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9월 28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김기협 : 지난 번(8월 26일) 뵙고 한 달이 지났군요. 생각지 못했던 변화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시국은 더욱더 험난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변화의 중심에 미군정과 공산당 사이의 대립 격화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초순에 좌익계 신문 몇 개가 강제 정간되고 박헌영 씨 등 공산당 핵심 간부들에 대한 수배령이 내렸죠. 미군정을 비난하는 보도와 발언이 그 이유인 모양인데, 군정청 법령이 아닌 맥아더 사령부의 포고령을 내세운 것이 별난 일입니다. 그래서 군정청 경찰이 아니라 미군 방첩대(CIC)가 직접 체포에 나섰고, 검거된 사람들을 일반 감옥이나 유치장이 아니라 미군 감옥에 집어넣었죠.
미군정 수뇌부가 공산당을 꺼려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거니와, 이제 와서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노골적 탄압에 나선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고, 더구나 그 탄압 방법이 법치의 원리까지 위협할 정도라는 것이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미군정이 어째서 저런 태도를 취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안재홍 :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원래 포고령 1, 2, 3호는 작년(1945년) 9월 미군 진주 때 군정청이 설치가 안 된 상태에서 발포한 겁니다. 법령 체계가 세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임시 조치였죠. 그런데 형사 관계 법령도 웬만큼 갖춰진 이제 군정 비난 정도의 행위를 규제하겠다고 그 포고령을 들고 나온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포고령 제2호의 "포고 명령 지시를 범한 자, 미국인과 기타 연합국인의 인명 또는 소유물 또는 보안을 해한 자, 공중 치안 질서를 교란한 자, 정당한 행정을 방해하는 자, 또는 연합군에 대하여 고의로 적대 행위를 하는 자"를 점령군 군율 회의에서 재판하여 "사형 또는 타 형벌"에 처한다는 내용은 전쟁 상태의 조치이지, 평화 시의 법령일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억압이죠.
이 포고령이 지난 7월 29일 정판사 사건 공판 소동 사건에 적용되어 최고 징역 5년의 판결을 무더기로 때릴 때 식자들이 개탄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군정 당국이 뜻밖의 사태에 당황해서 돌발적으로 내린 조치려니 생각하고 다시 일어나지 않을 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돌발 사태도 아닌 상황에서 냉정하게 준비한 조치에 이 포고령을 활용했으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군에 대해 적대감을 갖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도 이 일을 보고는 '군정'의 성격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정을 펼 형편이 못 되어 부득이 군정을 시행하더라도 민정의 원리를 확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군정의 올바른 자세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안정된 법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이런 조치를 보고 사람들이 미군의 '의도'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기협 : 그렇죠. 뭔가 '의도'가 있지 않고는 취할 수 없는 조치지요. 사람들이 미군의 의도에 대해 상상력을 발동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과연 어떤 의도일까요? 좌익 배척은 미군정 초기부터 계속되어 온 일이거니와, 지난 5월 초 시작된 정판사 사건은 공산당에 초점을 맞춘 탄압이었죠. 그래도 범죄로서 위폐 사건을 수사하는 것일 뿐이라고 둘러대 왔는데, 이제 아예 탄압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공산당 탄압의 의지가 이번 사태의 핵심 요소란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안재홍 : 금년 들어 이북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세워진 이후 토지 개혁을 비롯해 제반 사회 개혁의 순조로운 진행 소식을 들으면서 미군정 당국자들이 대단히 긴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긴장감에는 좋은 효과도 있지요. 진주 이래 한국민주당(한민당) 쪽에만 귀를 기울이던 그들이 좌우 합작 지원에 성의를 보이는 것은 소련군과의 '선의의 경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쟁은 우리 건국 사업을 위해 좋은 조건이지요.
그런데 이북의 변화를 소련의 지령과 지원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보는 미군 당국자들의 경향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측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자치 확대와 개혁 실시는 기본적으로 인민의 의사에 따르는 것이거든요. 소련군이 인민의 요구에 편승하면서 자기네에게 우호적인 체제가 만들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은 정치 공작이라 하더라도 매우 수준 높은 공작입니다. 그런 기술은 미군도 좀 배웠으면 좋겠는데….
이북의 공산 세력이 자리가 잡히니까 이남의 공산당이 그 지령과 지원을 받는 것으로 미군은 봅니다. 좌익 전반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거두는 대신 소련-이북과 연결된 공산당으로 표적을 좁혀 탄압을 집중하는 것이죠.
좌익이라고만 하면 확실한 이유도 없이 무조건 싫어하던 지금까지의 태도에 비해 중도적 좌익과 골수 공산주의자를 구분해서 보게 된 것은 그 자체로 좋은 변화입니다. 그러나 탄압에도 금도가 있고 원칙이 있어야죠. 난 데 없이 맥아더 포고령을 들고 나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수배령과 신문 정간 등 조치를 취하니까 중도적 좌익도 부당한 탄압에 맞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탄압의 효과보다 반발의 부작용이 더 크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김기협 :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에서 엊그제 '총파업'을 선언했습니다. 23일 부산 철도공장에서 시작된 파업이 전국적 사태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평이 공산당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공산당에 예속된 조직은 아닌데, 설립 후 근 1년 만에 최대 규모의 투쟁에 나서는 데는 부당한 공산당 탄압에 대한 반발도 작용하는 것일까요?
안재홍 : 전평의 대규모 투쟁은 공산당과 관계없이 필연적인 일입니다. 노동자들의 처지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일제 시대의 가혹한 노동자 착취는 전쟁 중의 군국주의 체제로나 가능했던 것입니다. 해방이 되고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생각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미군정은 관리인을 파견해서 일제 시대의 경영방법을 그대로 지키려 해왔죠. 한편 이북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키워주는 개혁 소식은 들려오지, 노동자들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군정청 노동국에는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간부들이 있어서 전평을 도와 노동조합 운동을 발전시켜 주려는 노력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 7월부터 전평을 배척하고 대한노총을 감싸는 방향으로 돌아서면서 현장 문제들이 전혀 해소되지 못하고 쌓여만 왔습니다. 이번 파업의 뇌관이 된 철도국만 하더라도 전평과 대한노총이 합동으로 투쟁에 나서지 않았습니까? 파업을 막기 위한 군정청의 노력이 전혀 없었어요.
파업이 터질 때까지는 노동자들의 요구 내용에 정치적인 것이 없고 모두 순수한 노동 조건 문제뿐이었어요. 그런데 파업이 시작되면서 "이북과 같은 개혁의 시행"이니 "박헌영 체포령 철회"니 정치적 구호들이 끼어들기 시작했지요. 전평이 노동 운동의 발전을 위해 할 일이 많은데, 공산당의 영향을 받는 중앙 간부들이 자꾸 정치색을 가미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미군정이 노동 운동을 탄압할 빌미를 주는 것이죠. 김 선생이 언젠가 얘기한 '적대적 공생 관계'로 볼 수 있는 것일까요?
김기협 : 그렇습니다. 군정청과 노동 운동의 대립이 첨예할수록 노동 운동에서는 극좌파의 헤게모니가 강화되고, 군정청에서는 개혁적 정책이 봉쇄되죠. 이런 상황에서 며칠 전 이승만 씨가 대한노총 위원장에 취임해서 파업 대응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걱정스럽습니다. 그를 추종하는 극우 폭력 세력의 역할이 총파업을 배경으로 부각되는 것이 아닐지.
총파업으로 어수선한 와중에도 좌우 합작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7월 하순 시작되려던 합작위원회 활동이 공산당 쪽의 '5원칙' 때문에 중단되었다가 좌익 3당 합당으로 인해 계속 막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공산당과 인민당의 내분 사태 후 8월 하순에 여운형 씨가 좌우 합작 속개 의지를 밝히면서 공산당을 배제한 합작 가능성이 떠오르게 되었죠.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 지났는데, 지금 진행 상황과 전망이 어떤지요.
안재홍 : 8월 20일경 여운형 씨의 합작 속개 의지 통보는 확실히 합작 사업에 돌파구가 되었습니다. 합작에 반대해 온 박헌영 씨 측을 배제하더라도 합작에 응하겠다는 것인데, 박헌영 씨 측에 대한 '최후통첩'의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배제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성의 있는 태도를 촉구한 것이죠.
이 통첩을 박헌영 씨 측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당 합당이란 과제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공산당 내 대회파의 반발에 이어 인민당의 '프락치 작전'까지 들통 나 버렸으니 계속 억지만 쓰기가 어렵게 되었죠. 그래서 바로 진전을 기다리며 주시하고 있었는데 지난 6~7일의 좌익 신문 정간과 공산당 간부 수배령이 터진 겁니다.
합작 회담이 바로 열리기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나는 중순 동안 바람도 쐬고 지방 민심도 살필 겸 강릉 쪽에 다녀왔습니다. 며칠 전 돌아와 보니 중순 동안 민전 의장단 회의가 몇 차례 열렸다더군요. 19일의 마지막 회의에서 합작 회담 재개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당분간 보류한다는 뜻을 여운형 씨가 알려왔고요.
회담 재개 의견이 많았지만 여운형 씨는 '전원 합의'가 아니면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더군요. 답답하기는 하지만 수긍이 가는 입장입니다. 공산당이 빠지면 '대 합작'이 못되고 '소 합작'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공산당 대회파의 움직임도 가라앉지 않고 있으니 공산당의 합작 참여를 좀 더 기다려봐야죠. 그러나 오래 기다리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 소 합작이라도 서둘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김기협 : 하지 사령관이 6월 30일의 합작 지지 특별 성명에 이어 9월 17일 다시 지지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확고한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군정 측에서는 '입법 기관' 설치를 합작의 중요한 목표로 요구하고 있고, 박헌영 일파에서 합작을 반대하는 뚜렷한 이유를 여기 두고 있습니다.
이북에 임시인민위원회가 있는 반면 이남에는 조선인의 전국 규모 공식 기구가 없습니다. 민주의원의 한계성은 미군정 측도 인정하니까 입법 기관 얘기를 하는 거죠. 민주의원보다 발전된 단계의 조선인 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은 건국 일정도 잡혀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필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안재홍 : 공산당은 각 지방의 인민위원회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조선인 조직을 주장합니다. 일리 있는 의견이라고 나도 생각합니다. 공자님도 '비(非)'보다 '사이비(似而非)'가 더 위험한 것이라고 경계하셨죠. 민의를 왜곡되게 수렴하는 기관이라면 없느니보다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해야죠. 미군이 조선 와서 벌인 제일 큰 사업이 인민위원회 파괴였습니다. 그 입장을 100퍼센트 뒤집을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습니까? 나는 언젠가 역사가로서 미군의 이 잘못을 비판할 겁니다. 그러나 지금 정치인으로서 나는 해방군으로서 힘을 가진 미군이 한 일을 좋든 싫든 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군의 힘도 미군의 잘못도 모두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실제로 어떤 입법 기관이 만들어지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손에도 어느 정도 달려 있습니다. 합작을 못하고 우익의 손에만 맡겨놓으면 민주의원과 똑같은 꼴을 되풀이할 것입니다. 합작을 통해 민의를 더 잘 반영시키면 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이고, 소 합작 아닌 대 합작이 이뤄진다면 현실 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겁니다. 내 일방적인 주장에만 집착해서 최선의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민족과 인민을 위하는 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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