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매미가 올 때도 무슨 예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매미 소리가 왕창 내 목 주위로 들러붙어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송골송골 나올 무렵이었다. 올 더위를 어떻게 지낼까, 걱정도 슬금슬금 들기 시작했다.
▲ 벌초하러 간 고향에서 만난 매미. 매미는 나무줄기를 타고 부지런히 오르내리면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울었다. 둥근 줄기를 한 바퀴 돌기도 했다. ⓒ이굴기 |
올 때 그렇게 왔다고 갈 때도 이렇게 일시에 확 가버리는 것일까. 내가 근무하는 통인동 사무실은 인왕산 아래지만 제법 거리가 있다. 사무실에서 듣는 매미 소리는 가로수나 정원수까지 진출한 매미들이 내는 소리였다. 말하자면 그 매미들은 자동차의 소음과 한바탕 울음으로 겨루어보겠다는 특공대였다. 해마다 시내의 매미 소리가 더 커지는 건 이런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 특공 매미들이 도심에서 철수했다 하더라도 인왕산 숲속에는 아직 매미가 남아있지 않을까. 혹 그 매미 소리에도 길이가 있다면 그 길이가 짧아서 내 귀에까지 닿지 못하는 건 아닐까. 과연 인왕산에도 매미가 모두 사라졌을까. 확인이 필요했다.
추석을 나흘 앞둔 9월 8일. 오랜만에 인왕산에 올랐다. 매미 소리를 찾아서 인왕산에 올랐지만 그건 사무실에서의 생각일 뿐이었다. 내 생각은 1분도 한 가지 생각을 계속 할 수가 없다. 나는 금방 매미를 잊고 인왕산으로 드는 골목에서부터 식물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어느 집의 담벼락에 애기똥풀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집의 뒤안에는 닭의장풀이 경계를 이루며 피어났다. 충주 보련산에서 처음 이름을 익힌 풀이다. 산이나 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풀이었지만 서울에서 본다는 게 좀 신기했다.
▲ 닭의장풀. ⓒ이굴기 |
인왕산은 깊은 산중은 아니라 해도 먼 산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개옻나무, 누리장나무 등이 바로 그들이다. 누리장나무의 잎을 뜯어 부비면 냄새가 난다. 어떤 이는 고약한 냄새라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지만 내게는 어릴 적 먹었던 원기소 냄새와 비슷했다. 억수로 고소했다.
▲ 개옻나무. ⓒ이굴기 |
▲ 누리장나무. ⓒ이굴기 |
참싸리도 흔했다. 참싸리꽃에는 벌들이 붕붕거리고 달려들어 꿀을 따고 있었다. 꽃은 많이 달려 있었지만 하나하나의 꽃에는 깊이가 없었나 보다. 아니라면 달려들어야 할 꽃이 너무 많이 달려 있어서 그랬나 보다. 벌은 한 꽃에 머무는 법이 없었다. 여기서 찔끔 저기서 찔끔 맛만 보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는데 애를 먹었다.
▲ 참싸리. ⓒ이굴기 |
산허리 도로인 북악스카이웨이를 건너 계단을 올라 서울성곽을 끼고 오르기 시작했다. 길섶으로 달맞이꽃이 피었다. 강아지풀도 하늘거렸다. 성곽의 바위틈으로 바위채송화가 시들어 가고 있었다. 매미 소리가 짱짱했던 여름날에는 싱싱했던 바위채송화. 꽃잎 몇 장을 쓸쓸히 달고 가을로 건너가는 준비를 하고 있는 듯 했다.
▲ 바위채송화. ⓒ이굴기 |
인왕산에도 깔딱고개가 있다. 그 고개는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108개를 세고 허리를 한번 펴면 중간쯤에 도달한다. 그때였다. 잎이 다 떨어진 아카시나무와 소나무 사이에서 매미 소리가 울려나오는 게 아닌가.
매미 소리는 땅으로 펄펄펄 떨어진다. 눈으로 포착을 못해서 그렇지 꽃잎이 난분분 흩날리듯 매미 소리는 아래로 떨어진다. 식물학자에 따르면 꽃잎은 양분 덩어리라고 한다. 식물이 정성스럽게 차려내는 밥상인 셈이다. 문득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올 6월. 울릉도에 갔을 때였다. 성인봉에 올랐다가 나리분지로 가는 길이었다. 그곳은 골짜기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었다. 울창한 삼림이 볼 만했다.
그렇게 천연기념물의 마지막 구간을 막 통과했을 때였다. 제법 넓은 길에 각종 꽃잎들이 떨어진 풍경이 펼쳐졌다. 마르고, 탈색되고, 쪼그라들어 이제는 흙으로 천천히 녹아드는 꽃잎, 꽃잎, 꽃잎들. 그 꽃잎들만으로 꽃의 고향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저 좌우의 숲에서 자생하는 섬쑥부쟁이, 섬바디, 섬노루귀, 주름제비난, 눈개승마, 산마늘, 섬백리향 등이 떨군 꽃잎일 것이라고 짐작만 했었다.
▲ 떨어진 꽃잎이 녹아들고 있는 울릉도 숲길. ⓒ이굴기 |
오늘 듣는 매미 소리는 외로운 소리였다. 합창도 아니었다. 원래 매미 소리는 한 소리가 물꼬를 터면 여기저기서 소리들이 더해져서 여름을 펄펄 달구었다. 그러나 오늘의 매미 소리는 돌림노래인 것 같았다. 여기서 한번 맴맴 하면 저기서 매앰맴 매앰맴 하고 받아주기는 했다. 하지만 이내 앞소리는 풀썩 주저앉았고 말았다.
어쩌면 올해의 나에겐 마지막 매미일지도 모르는 올해의 매미는 소나무 가지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솔방울 밑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분간이 잘되지 않았다. 고개를 빼고 발돋움을 하고 매미를 바라보면서 이제 올해의 매미는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인왕산 정상까지 가는 길은 막혀 있었다. 서울성곽 보수 공사가 벌어진다고 했다. 보초병들이 막고 있었다.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비가 오면 매미는 울지 않는다. 빗소리에 아무리 울어보았자 빗소리가 저의 울음을 잡아먹는다는 것을 매미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미는 또한 안다. 비가 그치는 기색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린다, 그래서 그 기미를 잘 포착해서는 그간의 참았던 울음을 시원스레 토해낸다.
매년 여름마다 그 왕성했던 매미 울음의 양을 생각한다면 매미의 개체수도 대단할 것이다. 서울시 인구만큼이야 안 되겠지만, 서울에 사는 나무만큼이야 안 되겠지만, 개체수를 세 본다면 만만찮은 숫자일 것이다.
죽음에 순서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서울 시민들은 그래도 차례차례 서울을 떠난다. 그러나 매미는 한꺼번에 왔다가 한꺼번에 떠난다. 인왕산에서 한바탕 논 매미들. 그들의 영혼이 떠난 시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상식적이라면 인왕산에 내리는 빗물에 저항하지 못하고 물살에 떠밀려 인왕산 둘레의 종로구 하수구에는 매미의 시체들로 뒤덮어야 하지 않을까.
작년 이맘 땐 그게 궁금해서 인왕산으로 매미의 시체들을 찾으러 갔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매미의 흔적은 없었고 매미 소리의 여운만이 숲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인왕산 중턱에 있는 석굴암 마당에서 고작 매미 사체 1구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인왕산의 주인인 인왕이 매미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숲속에서 잘 처리했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 중이다.
올해도 매미는 실컷 울었다. 유난히 많이 온 빗소리에 다소 눌리긴 했지만 울 만큼 울었다. 오늘 내 귓속으로 들어온 소리는 마지막 대표로 남은 매미가 올 여름을 보내면서 작별 인사 같기도 했다. 그 소리는 그냥 소리로 그쳤다, 더해지는 소리가 없었으니 멀리 가지도 못했다. 그냥 인왕산 숲 안으로 사그라지고 말았다.
▲ 인왕산 소나무의 솔방울 아래에서 울고 있는 매미. ⓒ이굴기 |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눈이 펄펄 내릴 것이다. 눈을 맞으며 인왕산을 오를 때 눈처럼 내린 매미 소리를 생각해야겠다, 마음먹으면서 인왕산을 내려왔다. 매미 소리가 사라진 자리를 쓰르라미 소리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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