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 아래 한계리 마을에서 민박을 했다. 파라택소노미스트 교육 과정의 가을 학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부자리 펴놓은 뒤 별 구경하러 마당에 나왔더니 별은 보이지 않고 초승달이 하늘을 몽땅 장악하고 있었다. 시퍼런 달은 설악산을 지나 점봉산을 지나 강원도의 밤 한가운데를 건너가는 중이었다.
마당 한 곳에 해바라기가 서 있었다. 나하고 얼추 비슷한 키였다. 해바라기와 초승달을 불러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가까운 것이나 저 먼 것이나 이처럼 한꺼번에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사실. 세상에 신비가 있다면 이 또한 신비로운 현상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해바라기가 말뚝 보초를 서는 가운데 자리에 누웠다. 바람이 사납게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꿈을 꾸었다. 개가 자꾸 나를 따라다녔다. 꿈의 바깥에서 나는 개를 몹시 무서워한다. 개에 관한 공포가 있다. 그런데 꿈에서는 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철철 흘렸다.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는데 잠이 깼다. 개는 누구였을까. 나는 누구였던가.
▲ 해바라기 그리고 초승달. ⓒ이굴기 |
새벽 4시 40분. 식당에서 도시락 두 개를 싸고 한계령 휴게소 뒤로 난 계단으로 터벅터벅 올라갔다. 오늘은 서북능선을 타고 중청-대청봉에 올랐다가 오색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하루 종일을 꼬박 산중에서 지내야 했다. 하늘은 시꺼멓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누군가 태풍 탈라스가 일본 열도를 강타했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아뿔싸, 했다. 서울은 비켜났지만 일본을 거쳐 동해로 빠지는 태풍이 설악산을 그냥 둘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어제까지만 해도 마지막 늦더위에 몹시 시달렸던 터라 비옷도 윈드재킷도 챙기지 않았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 설악산은 큰 산인데, 금방 겨울 날씨로 떨어질 것인데, 비라도 쫄딱 맞으면 저체온증이 올 텐데.
무서운 단어들이 튀어나오고 심각한 상황이 그려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노자의 한 구절도 떠올랐다.
天地不仁(자연은 인자한 법이 없다)
쫄아든 가슴을 앞세우고 산행을 시작했다. 하늘도 하늘이었지만 당장 발밑에서 해야 할 일이 더 급했다. 길가에 수북한 실새풀, 개망초, 구절초 들과 희미한 어둠 속에서 얼굴을 맞추었다.
차츰 날이 밝아왔다. 바위틈마다 바위떡풀이 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두 달 전 설악산을 찾았을 때 만난 연잎꿩의다리와 생육 조건이 비슷해 보였다. 바위틈에 찰떡처럼 붙어 찰지게 자라고 있었다.
▲ 바위떡풀. ⓒ이굴기 |
산행 두 시간째. 이제 날이 훤히 밝았다. 물 없는 개울이 나오고 인적 없는 다리가 있었다. 그 주위에 옹기종기 앉아서 첫 번째 도시락을 폈다. 나는 병아리처럼 자주 하늘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동해 쪽 하늘 한구석에는 밝은 햇살이 비추는가 하면 설악산의 서북능선 쪽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바로 위 하늘에서는 검은 구름이 맹렬한 속도로 북으로 가고 있었다. 다시 보니 하늘에서는 비가 곧 흩뿌릴 태세였다.
드디어 서북능선에 올랐다. 왼쪽으로 가면 귀때기청봉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끝청, 중청, 대청으로 연결된다. 금강초롱꽃이 여기저기 피었다. 한국 특산 식물이고 멸종 위기 종이다. 가는 줄기에 보라색과 흰색이 어울린 탐스런 꽃이 여러 개 달려 있다. 등 같기도 하고 종 같기도 한 금강초롱꽃의 꽃. 그 꽃의 주위는 다른 곳보다도 더 환하고 깊은 공감각의 자리였다. 빛도 나고 소리도 울리는 것 같았다.
▲ 금강초롱꽃. ⓒ이굴기 |
끝청에 올랐다. 비는 걱정만을 내 마음에 뿌리고 정작 내리지는 않았다. 조금은 마음이 느긋해졌다. 잠시 쉰 뒤 완만한 능선을 가다가 아주 귀한 나무를 만났다. 북방계 식물인 이노리나무. 남방한계선이 바로 이곳 설악산이다. 다시 말해 설악산 아래에서는 자랄 수 없는 나무이다. 그러니 이노리나무에게 여기가 가장 따뜻한 곳이다. 작은 열매가 아롱다롱 달려 있었다.
▲ 이노리나무. ⓒ이굴기 |
투구꽃이 이리도 아름다운 꽃일 줄은 몰랐다. 투구꽃은 올 봄 처음 꽃산행을 시작한 천마산에서 만난 꽃이다. 이름 자체에 꽃이 있긴 하지만 봄에 볼 때 아기 손바닥 같은 잎뿐이었다. 그때 초보자의 눈에는 그냥 퍼질러 앉은 쑥처럼 보였던 식물이었다. 그런 평범한 풀이 이리도 쭉 빼어난 대궁 끝에다가 이처럼 황홀한 꽃을 피우다니! 봄과 가을에 따라 너무도 다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제 겨우 일곱 달 키운 안목으로 관찰해 보니 쑥하고는 전혀 다른 식물이었다.
▲ 투구꽃. ⓒ이굴기 |
드디어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지하 식당에서 두 번째 도시락을 해치우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그리고 매점에 가서 비옷을 샀다. 일금 3000원. 비닐 옷은 얇았지만 마음을 대피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대청봉 주위는 안개와 바람의 천지였다. 제대로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였다. 얼른 오색 방향으로 내려섰다. 두 달 전 오늘은 땡볕이었다. 그때 나를 반기던 만주송이풀, 기생꽃 등은 그새 벌써 지고 없었다. 아마 내년을 꿈꾸며 그 씨들은 흙 속에 잠복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한 모퉁이를 돌았더니 바로 길섶에 고들빼기 세 종류가 나란히 서 있었다. 이고들빼기. 지리고들빼기, 까치고들빼기. 그리고 바로 옆에는 물봉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꽃이 피어난 것도 있고 지는 꽃도 있고 열매를 맺는 것도 있었다. 길쭉하게 여문 열매를 꼭 눌렀다가 놓으니 툭 터졌다. 노린재 한 마리가 물봉선을 희롱하고 있었다. 참배암차즈기는 어쩌면 그리도 뱀이 입을 쩍 벌린 모습을 닮았는지. 그리고 암술은 바로 낼름거리는 혓바닥!
▲ 물봉선과 노린재. ⓒ이굴기 |
▲ 참배암차즈기. ⓒ이굴기 |
등산을 시작할 때처럼 사방이 제법 어둑어둑해졌다. 어둔 하늘에는 햇살도 먹구름도 분간이 되질 않았다. 급경사가 모두 끝나고 평탄한 길이 나왔다. 좌우의 울타리도 없어졌다. 이제 곧 급경사도 평탄함도 울타리도 모두 구분하지 않을 시간이 올 것이다.
어디선가 천천히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설악폭포를 지나 급한 비탈길을 굴러 내려온 물들이 모처럼 숨을 고르는 곳이었다. 설악산의 오색계곡이 배출한 각종 돌들이 각자 편히 쉬고 있었다.
그 어디 중간쯤이었다. 묘하게 생긴 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나무는 큰 바위 옆에 걸터앉아 있었다. 전생의 모습을 다 버리고 남을 것만 남은 나무. 그 종류는 알 수가 없었으되 그 모습은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매끄럽게 돌아가는 허리선이 얼른 반가사유상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이 둘 있다. 해와 달을 상징하는 장식의 연꽃잎 보관을 쓴 금동일월식삼산관사유상(金銅日月飾三山冠思惟像). 그리고 세 개의 단순한 연꽃잎보관의 금동연화관사유상(金銅蓮華冠思惟像).
올 여름 장마 때 떠내려 온 것일까. 광배(光背)도 육계(肉髻)도, 나발(螺髮)도, 수인(手印)도 없었다. 대좌(臺座)도 없이 저 거친 돌팍에 앉아 있었다. 보관도 잃어버린 그 난리통에도 꼿꼿함은 그대로였다. 보잘것없는 나무 막대기는 하루를 터덜터덜 걸어온 나에게 그 어떤 말할 수 없는 충일감을 주었다.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것을 '는개'라 한다. 오늘 설악의 속살을 휘감은 것은 는개라 하는 것이 맞겠다. 비다운 비는 없었지만 공중은 축축했다. 몸이 젖은 건 땀과 함께 설악산의 정기가 훈습되어 내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즐거워야 할 꽃산행이 걱정스런 등산이었다가 종내에는 거룩한 산행으로 마무리되었다. 공손히 합장하고 작별하였다. 설악반가사유상이라고 명명하고 돌아서는 발길을 따라 간밤의 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 설악반가사유상. ⓒ이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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