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0일에 발생한 용산 참사로 희생된 고(故) 이상림(당시 72세) 열사의 유품에는, 망루에 오르면서 품에 지니고 있었던 용산구청의 공문이 있었다.
"세입자 보상 계획에 대한 협의가 없다고 해서 관리 처분 계획 인가 등을 중단할 수 없는 사항임을 회신하오니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용산구청장"
▲ 용산 참사 희생자 故 이상림 님의 망루 유품 중, 용산구청의 질의 회신 공문. ⓒ이원호 |
한강갈비에서 레아호프까지 용산4구역 한 자리에서만 30년 가까이 생계를 꾸리고 살아온 서울시 용산구의 주민으로서의 마지막 절박한 요구마저 거절당한, 그 구청 공문을 품고, 그렇게 사랑스런 막내아들과 함께 하늘 끝 망루에 올랐다.
그런데 원통하게도 거절당했던 그 요구는, 2010년 11월초에 서울고등법원에 의해, 절차상 중대한 위반이 있었다며 "용산4구역 관리 처분 계획 무효"라는 판결로 내려졌다. 주검이 되고 땅속에 묻힌 후에야 말이다.
개발 잔혹사가 붙여 준 이름 '철거민'
비록 세입자이지만 수십 년 지역에 살아오고, 지역의 상권을 발전시켜 온 '주민'이, 개발 현수막이 나부끼는 순간 '철거민'이 되고, 구청은 '철거민'을 더 이상 지역의 주민으로 대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정당한 권리를 말하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아니라, 그저 귀찮고 시끄럽게 하는 '떼잡이'의 '생떼거리'로 취급된다. 그리고 그들의 생존을 건 저항은 '도심 테러'로 매도된다.
용산은 바로 이러한 이 시대의 개발 현실을 참혹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개발로 인해 새롭게 탈바꿈할 명품 도시에 걸맞지 않은 이들을 짝퉁 취급하며 쓸어버리는, 쓸려나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되는지를 용산을 통해 잔인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잔혹한 개발사는 1970~80년대 판자촌 철거에서부터 1990년대의 달동네 아파트 건설과 신도시 건설, 그리고 2000년대 뉴타운 건설로 이어지며, 오랫동안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철거민이 되어 쫓겨나거나, 저항하거나, 죽임당해야 했다.
누가 저들을 망루에 오르게 했나?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 전국 곳곳에서 해머 소리가 들리도록 하지 않으면 이 난국을 돌파하는 동력을 얻기 어렵다",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한다."
무협지 대사와도 같은 위 내용은, 용산 참사가 일어나기 불과 한 달 전(2008년 12월 15일), 이명박 대통령과 당시 여당 대표(박희태)가 나눈 이야기이다. 그렇게 전 국토를 공사장으로 만들어 전광석화와 같이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도심의 가난한 주민들은 철거민이 되어 배제되고, 쫓겨나야 했던 것이다. 쫓겨나지 않고 버티면 불법자가 되고,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물론 개발로 인해 세입자인 주민들이 철거민이 되어 주거와 생존의 권리를 박탈당한 것은, 이명박 시대에서만 있었던 일은 분명 아니다. 역대 정권마다 경제 성장을 내세우며 각종 개발 사업들과 부동산 거품 유지 정책들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흔히 달동네로 불리는 도심지 저소득층 주거 밀집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철거가 끝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주로 이해 당사자의 수가 적은 소규모 도심 개발과 택지 개발 방식의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어 왔었던 것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맡던 지난 2002년부터 '뉴타운 사업'을 시작으로 다시금 대대적인 도심 광역 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것이다.
도심에서 진행되는 광역 개발은 수많은 이해 당사자, 특히 도시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으로 살아가야 하고, 그곳에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수많은 도시 서민에게 닥칠 직접적인 문제로 직면하게 된 것이다. 특히 그 규모와 속도에서 이례적인 뉴타운 개발 사업은, 도시의 다수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을, 전세 난민 혹은 불안정한 잠재적 철거민에 놓이게 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발 구역 간의 보다 빠른 개발 경쟁을 불붙여, 세입자들을 보다 빨리 쫓아내고자 용역 깡패를 이용한 폭력의 양상이 더욱 극심해 졌다.
무너질 수 없는 삶, 강제 퇴거 금지법 제정하자!
이러한 문제가 폭발하여 용산 참사로 이어지자, 정부와 서울시, 여야 정치권에서 재개발 제도의 개선을 내세우며, 일부 법·제도를 세입자 대책 강화라는 이름으로, 용산 참사 재발 방지라는 명목으로 개정했다. 하지만 일부 개선되었다고 하는 제도들은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기만 했다. 오히려 몇몇 조항들은 세입자들의 지위를 더욱 불안정하게 놓이도록 개악되기도 하였다.
결국 돌아가신 용산 철거민들의 외침은 고작 1개월분의 영업 손실 보상금 추가와 세입자 대책 후퇴로 돌아왔다. 어느 철거민은 "다섯 명이 죽어 나갔는데도, 세입자 대책이 달라진 것이 없다"며, "이제 개발 세력들은 더욱 자신 있게 활개를 치며, 밀어붙일 것"이라고 절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실은 또 다른 용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에서, 시급히 관련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더 이상 대책 없이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강제 퇴거를 막기 위한 대안적인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강제 퇴거가 집에서 쫓겨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생계와 사회적 관계, 삶의 전반을 후퇴시키는 문제이기에, 개발로 삶과 생존의 공간을 빼앗기는 이들의 재정착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지는 강제 퇴거를 금지해야 한다. 특히 강제 퇴거 금지법은 다양한 개발 사업과 그 사업에 따라 적용되는 다른 법체계에 의해 대책이 달라지는 현실 그리고 두리반처럼 법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개발 사업으로 분류조차 되지 못하는 무대책 상태의 개발 사업들을 관통하여,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개발 사업의 원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법이 만능이 될 수 없고, 이러한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막대한 개발 이득을 목전에 둔 세력에게는, 무시하면 그만일 수 있는 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지금처럼 개발 법에 의해 보호되는 폭력, 합법화된 폭력을, 불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철거민이 불법 세력이고 도심 테러리스트가 아닌, 법 집행을 이유로 휘두르는 저들의 폭력이 불법이고, 대책 없이 남발되는 강제 퇴거가 불법이고, 도시 주민들, 도시 주인들에 대한 테러임을 밝혀야 한다.
용산을 기억하는 것은 내일의 용산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법은 공공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용산4구역 개발 사업의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며 '관리 처분 무효 판결'이 있었지만, 그 잘못된 개발 사업의 인가로 인한 죽음의 책임은 철거민만이 지고 있다. 주검이 된 이상림 열사의 사랑하는 막내아들,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5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여전히 차가운 감옥에서 갇혀 있다.
망루에 오르기 전 마지막 거절당한 요구가 정당했음이 판결로 확인되었지만, 끔직한 참사를 부른 잘못된 개발을 밀어붙인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철거민들은 주검이 되어 땅 속에, 그리고 감옥에 갇혔지만, 잘못된 개발을 밀어붙이고 인가한 이들은 여전히 주인 행세하며, 또 다른 지역의 주민들을 철거민으로 내몰고 있다.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수많은 지역에서 고립된 철거민들이 저마다의 망루에 오르고 있다. 용산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2009년 1월 20일, 어제의 진실을 밝히고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다. 용산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우리에게 올 내일의 용산을 기억하고, 막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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