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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현대의 성자? 냉혹한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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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현대의 성자? 냉혹한 정치가?

[프레시안 books] 남부디리파드의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

나는 다른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글을 좋아한다. 김종철의 "간디의 물레"와 이반 일리치의 "간디의 오두막"도 그런 글에 속한다. 짧은 글에서 간디의 삶이 지닌 가치의 핵심을 전달하는 간결함이 돋보이고, 자본주의 체제의 부정성을 근본주의적 태도로 제시하는 강건함이 중후한 울림을 안겨준다.

김종철과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세계관을 간디의 삶에 투영해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옹호했다. 나는 이 두 편의 글을 지역 사회에서 개최되는 인문학 강의나 교도소 수용자들에게 인문학을 강의할 때 함께 읽곤 했다. 강의를 듣는 이들은 간디의 삶을 금욕주의적인 것으로 간주해 거부감을 표현하기도 하고, 너무 윤리적이기에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간디와 같은 삶이 있었다는 것 자체로 자신의 현재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내게 간디의 삶은 제프리 애쉬의 <간디 평전>(안규남 옮김, 실천문학사 펴냄)을 통해 간접 경험되었다. 한 겁 많은 식민지 지식인 변호사가 어떻게 영적인 종교 지도자가 되고, 궁극에는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가를 연대기적으로 그려낸 애쉬의 글은 감동적이었다. 영국인이 인도인의 삶의 재구성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고, 가급적 객관화된 시각으로 간디의 삶을 제시하려 한 노력도 돋보였다. 나는 간디의 삶을 존경한다. 시련 속에서 더욱 강인해지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간디를 통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야 간디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풍문을 최초로 접한 것은 암베드카르라는 인물을 통해서였다.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간디와 맞섰던 인물이다. 암베르카드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내 생각에 간디의 시대는 인도의 암흑기임이 너무나 명백하다. 간디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미래에서 이상을 찾지 않고 먼 옛날로 회귀한다." (<암베드카르 평전>(게일 옴베트 지음, 이상수 옮김, 필맥 펴냄, 121쪽)

이것은 암베드카르의 절규였다. 간디는 힌두교적 신념에 입각해 식민지 해방의 과제를 바라보았다. 간디에게 불가촉천민 문제는 힌두교 테두리 내에서 해결해야 할 공동체의 문제였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의 독자적 정치 세력화를 통해 해방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나는 암베드카르와 간디의 입장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카스트 제도의 복잡한 면모를 조금은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간디의 입장이 전통주의적이고, 완고한 힌두 민족주의로 규정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남부디리파드 지음, 정호영 옮김, 한스콘텐츠 펴냄). ⓒ한스콘텐츠
내게는 암베드카르가 바라본 간디가 충격의 제1탄이었다면, 최근에 번역 출간된 남부디리파드의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정호영 옮김, 한스콘텐츠 펴냄)은 격렬한 후폭풍 같은 것이었다. 남부디리파드는 인도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 세력들 간의 갈등 속에서 간디를 '냉혹한 정치가'로 그려냈다. 이 책은 인도 내부에서 이뤄진 간디 비판이 한국에서 출간되었다는 측면에서 문제적이다.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은 일종의 비평서이면서, 역사적인 텍스트이다. 이 책은 텐둘카르의 8권으로 된 마하트마 간디 전기인 <마하트마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의 생애>에 대한 서평과 해설을 묶은 것이다. 남부디리파드는 인도 공산당 중앙당사에서 정치국원으로 일하고 있던 1955∼56년에 '간디 전기'에 대한 비평을 인도 공산당 월간지인 <뉴 에이지(New Age)>에 열네 차례에 걸쳐 기고했다. 이렇게 연재한 글들이 묶여 간디를 새롭게 평가하는 단행본으로 1958년에 출판된 것이다. 저자인 남부디리파드는 한 때 간디주의 추종자였다가 마르크스주의자로 전향한 인물이다. 이 책을 간행하던 즈음의 남부디리파드는 스스로를 '레닌주의자'라고 칭했다. 하지만, 존경의 마음을 담아 '간디 선생님'이라 호칭하고 있으며, '간디주의가 인도에서 갖는 긍정적 의미'를 전면부정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간디가 지도하던 인도 독립 운동 단체인 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정체성'을 지닌 단체였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문제 삼는다. 남부디리파드는 간디가 국민회의를 통해 시종일관 '부르주아지의 이해와 요구에 부응하는 정치적 판단'을 해 왔다고 주장한다.

간디의 '비폭력주의'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한다. 그는 간디가 "농촌 빈민이 독자적인 정치 세력으로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간디의 두려움은 "대중의 전투적인 시위와 행동을 막는 것"으로 나아갔고, 죽음을 불사하는 단식으로 대중 봉기를 저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관점이 간디의 비폭력주의를 종교적인 것으로 해석했다면, 남부디리파드는 인도 내부인의 시선으로 간디의 비폭력주의가 당시의 정치 지형 내에서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하려는 판단이었다고 보았다. 그 근거로 간디가 제1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의 징병관이 되어 모병 활동에 참여했다는 사실, 1921년 의회에 대한 보이콧을 요구했다가 다시 의회 활동을 허용한 것, 차우리 차우라 사건이 발생하자 대중운동에 대한 공포심을 드러냈던 것 등을 제시했다.

남부디리파드는 1948년 1월 30일 발생한 간디 암살도 부르주아 정치의 메커니즘 속에서 해명한다. 그는 암살자인 힌두 극우주의자 나투람 고드세가 '광범위하게 조직된 힌두 정치세력의 대리인'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남부디리파드의 판단에 따르면, 국민회의를 주도하던 힌두교 중심의 부르주아지 정치인들이 국가 권력을 획득하면서, 간디의 '힌두-무슬림 단결' 주장을 정치적 장애로 간주하고 암살을 암묵적으로 사주했다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은 인도 공산당에 적을 두고 있는 사회주의자의 시각에서 간디주의를 평가한 글이기에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며 읽어야 한다. 1950년대 중반은 동서냉전 체제가 엄혹하던 시대였고, 인도 내에서도 이데올로기 대립이 점차 가열되던 시기였다.

이 책의 저자인 남부디리파드는 이 시기에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인도의 민족 운동을 다시 평가하고, 계급적 관점을 통해 간디주의를 객관화할 필요를 느꼈다. 그 자신이 인도 공산당을 이끄는 현실 정치인이었기에, 간디의 민족 운동적 관점을 비판하는 것은 당시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유물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간디의 종교적·영적 성격에 대해서는 괄호를 치고, 현실 정치의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했다. 남부디리파드의 시각은 근대주의자의 발전론적 세계관을 견지한다. 그는 세속적이고, 현실 정치적이며,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에 대한 다소 교조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치가 있는 것은 '간디주의를 객관화하려는 인도 내부인의 시선' 때문이다.

나는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을 충격적으로 읽었지만, 간디에 대한 근본적 사고 자체를 변화시킬 만큼의 전환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이것은 아마도 간디의 사상이 내게 주었던 충격을 뒤엎을 정도로 이 책의 주장이 강렬하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간디는 '전통적 복고주의자'라기 보다는 '평화주의적 반근대주의자'였다. 그렇기에 근본주의적 태도 '스와라지(자치)'의 가치를 설파하고, 비폭력주의의 원칙 속에서 '국가 폭력을 부정'했던 것이다.

간디도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인간으로서 한계를 드러낸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객관적 사실로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간디가 스스로를 변화시키면서 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대안적 세계를 모색했다는 사실이다. 간디의 사상이 20세기에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로, 20세기는 '그래도 희망을 간직한 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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