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나를 매우 싫어하시던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자네는 성적이 왜 이 모양인가?" 휴, 다행이다. "선생님들이 성적을 잘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당당히 말했다. 네 분의 선생님은 크게 웃으셨다. 역시 대답을 잘 했나 보다.
1학년 때부터 나를 안쓰러워하시던 교수님이 물으셨다. "자네 요즘도 데모만 하고 다니나?" (난 대학원 후기 입학생이다.) "요즘은 학교에 잘 안 나오는데요." 잘한 대답은 아니지만 넘어갔다.
제일 젊은 교수님이 물으셨다. "그래 어느 교수님 방에 가고 싶은가?" 선생님들 표정을 살폈지만 어느 분도 자신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출장 중인 선생님의 성함을 말했다.
그러자 네 번째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좋은 선택이야. OOO 교수님은 자네를 훌륭한 생화학자가 되는 길로 이끌어 주실 걸세." 내 선택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워 하시는 네 분의 교수님과 악수를 하고 방을 나섰다.
대학원 동기생은 열 명. 이 가운데 즐겁게 면접을 마친 여덟 명을 제외한 나와 다른 한 친구는 맥줏집으로 향했다. 그 친구가 불평했다. "교수님들은 왜 내가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퍼텐셜에는 관심이 없고 지금까지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에만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어." 내가 대답했다. "인마, 네가 얼마나 발전할지 어떻게 알아? 네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뭐가 더 필요해." 우리는 맥줏집에 채 닿기도 전에 헤어졌다.
나는 이렇게 과학자의 길에 들어섰다. 대학에 들어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원에 입학할 때조차도 어느 선생님도 내게 왜 생화학을 하려고 하는지, 왜 대사 조절을 연구하려 하는지 묻지 않았고 또 내게 그럴 소양이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으셨다. (다행이긴 하다. 내게는 그런 소양이 없는 게 분명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내가 딱히 어떤 유형의 질문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질문'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 같다. 면접시험에서 'DNA의 구조'나 '단백질의 작용 메커니즘' 또는 생화학에 나오는 수많은 사이클 따위처럼 필기시험에서 물을 것을 면접시험에서 질문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필기시험에 이미 합격한 사람들 가운데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창의적인 발상' 또는 '사고의 논리성'을 확인할 만한 것들을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떤 질문이 거기에 해당할까? 나는 몰랐다. 내 선생님들도 모르셨던 것 같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면접시험에서 기상천외한 질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지타니 미치토시는 그 질문들 가운데 45개를 정리하여 <당신은 빌게이츠의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가?>(이진원 옮김, 샘앰파커스 펴냄)를 썼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유명해진 이야기지만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전 세계 피아노 조율사는 몇 명일까?" "미국에는 주유소가 몇 개나 있을까?" 이런 것들은 왠지 리처드 파인만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을 것 같다. 물론 면접관이 수험생에게 정확한 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그들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수험생이 문제를 전개하고 답을 낼 때까지 순발력 있게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능력일 테다.
"맥주 캔은 왜 원통이 아닐까?" "저울 없이 제트기의 무게를 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질문은 과학의 원리가 뜻하는 바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응용할 수 있는지 파악하기에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난감해 보이지는 않는다. 답은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에 지원한 수험생 가운데 상당수는 나름대로 좋은 대답을 했을 것이다.
▲ <이것은 질문입니까?>(존 판던 지음, 류영훈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랜덤하우스코리아 |
"스스로 영리하다고 생각하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법학과 문제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 질문이 난감한 이유는 '똑똑하다(intelligent)'와 달리 '영리하다(clever)'에는 부정적인 어감이 있기 때문이다. "네"라고 대답하면 자신의 영리함을 내세우는 꼴이니, 배움에 대한 열의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오"라고 대답한다면 스스로 케임브리지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꼴. 어이할꼬? 저자가 고심 끝에 생각한 답은 "예, 이 대학에서 공부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영리합니다"이다. (저자가 이 시험에 응시했다면 꼭 붙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은 언제 죽는 걸까?" 심장이 멈추었을 때일까, 혈액 순환 부족으로 뉴런이 파괴되어 모든 두뇌 활동이 멈추었을 때일까? "환경 문제는 빈곤이나 에이즈 문제보다 더 중요할까?"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환경문제와 빈곤이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나 가족이 에이즈 환자일 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컴퓨터도 양심을 가질 수 있을까?" 복잡한 문제다.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눈에 확 들어오는 질문이 나왔다. "국민건강보험이 비만인 사람에게도 혜택을 주어야 할까?" 이것은 내게 절박한 문제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이 질문을 옮겼다. 댓글이 즉시 달렸다.
A : "이것은 분명 주민 투표감입니다."
B : "비만 유병률 기준으로 성인의 3분의 1 정도나 해당될 텐데 그러면 그들은 다 죽으란 말입니까? 국가가 그러면 안 되지요."
C : "근데 사실 비만, 음주, 흡연을 하는 사람은 수명이 짧기 때문에 의료 보험 혜택을 덜 받아요. 그래서 더 싸게 해 줄 필요도 있지요. 수명이 길 것으로 예측되는 사람에게 많이 받아야…."
D : "보험 혜택을 받는 기간만 짧지 집중적이고 지속적으로 받기 때문에 혜택의 금액으로는 훨씬 더 클 겁니다.^^."
E : "흡연으로 폐암에 걸렸을 경우 건강 보험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가 밝혀진 지금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폐암과 그로 인한 피해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만 된다면 흡연율을 뚝 떨어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KT&G가 담배를 팔아먹고 보험 공단이 암 치료비를 지원하는 것은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고 아닌지…."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은 비만인 사람에게도 당연히 혜택을 주어야 한다." 중증 비만인 내 입장에서 볼 때 (가수 이적의 노래처럼) 정말 "다행~이다." 그 이유는 세 쪽에 걸쳐서 자세히 논리적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위의 댓글에서 B의 입장이 그것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B는 우리나라에서 세칭 SKY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영국에 살았다면 케임브리지 대학 사회정치학부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다.
책 제목 "이것은 질문입니까?" 역시 면접 문제 가운데 하나다. 이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전설적인 쿨함'을 보여준 대답이 있었다. "글쎄요, 만약 이것이 대답이라면 그것은 질문이었던 것이 틀림없겠네요."
혹시 독자가 물을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게 서평입니까?" 나도 그 학생의 쿨함을 따르고 싶다. "글쎄요, 만약 당신이 지금 '프레시안 books'에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것은 서평인 게 틀림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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