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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온 특별한 개미, 道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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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온 특별한 개미, 道를 말하다!

[프레시안 books] 저우쭝웨이·주잉춘의 <나는 한 마리 개미>

<나는 한 마리 개미>(저우쭝웨이 지음, 주잉춘 그림, 장영권 옮김, 펜타그램 펴냄)의 주인공은 결코 개미가 아니었다.

책표지 앞면에 그려져 있는 다섯 마리의 개미를 자세히 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은 안경을 벗어던지고야 말았다. 근시인 맨눈으로 책을 가까이 대고 보니 개미들의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림을 자세히 보려고 하니 글씨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글씨를 읽으려고 하니 이번엔 그림이 눈에서 멀리 벗어났다.

다시 안경을 쓰고 두 팔을 쭉 뻗어서 책을 멀찌감치 띄어놓고 훑어봤다. 그러고서야 한자와 한글이 눈에 들어왔고 그림도 같이 보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백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애초에 읽는 책이 아니었다. 단박에 덥석 집어 들고 그림과 글자와 그들을 품고 있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넓은 여백을 함께 즐겨야 할 책이었다.

▲ <나는 한 마리 개미>(저우쭝웨이 지음, 주잉춘 그림, 장영권 옮김, 펜타그램 펴냄). ⓒ펜타그램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 나를 맞아 준 것은 정오의 햇살이었다. 햇살은 땅 위의 모든 것을 끝 간 데 없이 비추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나는, 외롭고 조금은 두려웠다."


이 한글 문자들 아래에는 붉은 색의 한자 원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햇살이 반사되어 만들어 주었을 두 쪽에 걸친 하얀 여백 위에 본문의 글자 한 개 크기만 한 개미가 한 마리 엉거주춤 멈춰 서 있는 것 같았다. 안경을 다시 벗고 책을 눈앞에 바짝 대고 보니 정말 그랬다. 그렇게 개미의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개미를 따라 여행을 나설 참이었다.

<나는 한 마리 개미>를 덥석 집어 들고는 장면 하나하나를 '느끼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월간 <페이퍼>의 발행인인 김원이 자신의 첫 작품집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김원 지음, 링거스그룹 펴냄)를 보내온 것이었다.

"대체로 살아가는 일이란, 일상의 반복이라 생각됩니다.
같은 책상, 같은 의자, 같은 전화기, 같은 사람, 같은 구두, 같은 시계,
같은 커피, 같은 음악….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은 하루쯤
아침에 일어나 세수도 안 한 채로 집을 나서고 싶어요."


그러니까 김원도 개미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막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위의 글이 있는 면의 오른쪽 면에는 '오늘 같은 날은 하루쯤'이라고 손 글씨로 굵고 크게 써놓았다. 여분이랄 정도의 여백은 있지만 압도하지는 않는 평범한 여유 공간을 남겨두었다.

개미가 여행에서 만나 엄청난 여백과는 달리 김원은 유쾌한 재잘거림이 넘쳐나는 채워진 시공간에서 그의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우연히 두 권의 책이 내 손이 점유하고 있는 시공간 속으로 동시에 들어오는 바람에 시공간의 꼬임 현상이 생기고 약간의 혼선이 생긴 것이다. 그냥 작은 해프닝일 뿐이다.

다시 개미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하릴없이 여기저기를 홀로 떠돌았다. 마음씨 좋은 지네가 자기 '열차'에 올라타고 여행을 하자고 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걸. 어쩌면 나는 그저 외로움을 달래 줄 동료를 만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긴 지네 등에 올라탔지만 여백은 여전히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책 속 여백의 침묵에 파묻힌 그들은 외로웠을 것이다. 개미에게는 친구가 필요했을 것이고 친구는 언제나처럼 불쑥 서로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나타났을 것이다.

"나와 그, 우리의 저울은 결코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너무 작고 가벼워 무게를 잴 도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지기의 마음은 언제나 서로 똑같은 무게를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을이 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겨울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면서 점점 더 많은 생명이 스러져 갔다." 그리고 저울도 기울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도 개미는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종이 위에 이런저런 풍경 그리기를 좋아한다. 종이에 풍경을 붙잡아 두려는 것이다. 나와 내 친구는 그저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리며 한가롭게 종이 위에서 거닐기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마음속에 풍경을 담아두었으니까."

이젤 위에 놓인 여백인지 실체인지 구별할 수 없는 하얀 캔버스 속에서 개미는 친구와 같이 영원히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별이었다.

다시 김원이 찾아왔다. 책 속에서 열리고 있는 '백발두령 김원의 음악이 있는 작은 사진전'에 개미를 초대한 것이었다. 그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그에 어울릴 것 같은 음악을 추천하는 다정한 사진전이었다.

그는 개미에게 같은 곳을 다른 계절에 찍은 사진 두 장을 선물했다. 한 쪽 사진 속에는 풀이 무성하던 그 곳이 있었다. 다른 것은 풀은 사라지고 나란히 흘러간 물줄기 두 가닥이 얕은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 같은 사진이었다.

개미와 친구는 캔버스 위에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마음속에 풍경을 담아두었으니까'라고 했지만 김원은 잔인하게도 그 흔적을 사진에 담아서 전시하고 있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금세 사라질 것 같아 보이는 두 줄기 우정의 흔적 사이로 뒤늦은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흘러가고 있었다.

김원은 다시 떠나고 개미는 남았다.

"추위가 몰아쳐 왔다. 나도 언젠가는 내 친구 곁으로 가리란 걸 안다. 지금 나는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 아래 예전처럼 혼자지만, 이제 더는 외롭지 않다."

글자 한 개만한 개미는 어느새 두 쪽에 걸쳐서 당당하게 펼쳐진 여백의 오른쪽 끄트머리까지 가 있었다. 이번에도 안경을 벗고 책을 코앞까지 당겨서 살펴보았다. 개미는 자기 말대로 외롭지 않았다. 언제가 부터 자기 그림자와 함께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 마리 개미. 당신에겐 보이지 않는 곳에 살고 있다. 나의 세계는 비록 컴컴한 어둠으로 온통 둘러싸여 있지만, 당신이 내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어 주었다면 당신은 이미 나의 세계에 한 줄기 빛을 던져 준 것이다."

개미는 햇살을 반사해서 하얀 여백을 만들어내던 세상을 떠나서 땅속 어두운 개미집으로 돌아갔다. 사방은 온통 깜깜하지만 작은 구멍 사이로 여전히 햇살이 들어오고 있으므로 개미의 여행은 또 언제 어디선가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될 것이다.

김원의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여행도 이제 다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그가 다시 찾아왔다.

"잃어버리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늘 잃어버리고 난 후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가끔씩은 휴대폰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상 두 권의 책을 덮고 나니 그들의 여행의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김원의 말처럼 '모든 것은 그것이 사라진 뒤에 그 가치를 드러내는 법'인가 보다. 벌써부터 이들 책이 그립다. <나는 한 마리 개미>가 허탈한 여백의 미를 보여줬다면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는 그 여백을 채워가는 낙천적인 삶의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한 마리 개미>의 저자들은 책 끝머리에 "당신의 작품을 우편이나 이메일을 이용해 우리에게 보내 주세요. 우리는 멋진 작품들을 모아 '개미'에 대한 책을 계속 엮어 낼 생각입니다" 라고 써놓았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 속을 떠나지 않는 그림 한 장면이 있었다. 글을 쓰는 내내 이 글을 다 쓰자마자 저자가 써놓은 이메일 주소(booksyf@163.com)로 그 그림을 파일로 만들어서 보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동자승이 소를 찾아 나선다.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따라간다. 소의 뒷모습과 꼬리를 발견한다. 소의 꼬리를 잡고 고삐를 건다. 소에 코뚜레를 뚫고 길들이고 끌고 간다.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집으로 간다. 소는 없어지고 동자승만 앉아있다. 소도 동자승도 모두 없어진다. 물이 흐르고 꽃이 핀 풍경만이 있다. 지팡이에 도포를 입은 스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인간 본성을 찾아 나서는 수행의 단계를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심우도(尋牛圖)를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나는 한 마리 개미>가 바로 또 다른 버전의 심우도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개미는 심우도 속 동자승처럼 수행 끝에 또는 여행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각성을 하고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눈을 얻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왠지 인우구망(人牛俱忘), 즉 소도 사람도 없는 공(空)의 상태를 상징하는 텅 빈 동그라미 그림이 내 마음 속에 관처럼 뿌리내리고 있었다. 혹시 개미가 여백이 넘쳐나서 아름답지만 과잉이 되어 주체할 수 없는 이 책 속 어느 곳에서 그 텅 빈 동그라미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억측이 앞섰다.

"나도 나를 감추는 법을 배웠다. 깊이 숨을수록 더 느긋하게 감미로운 식사를 즐길 수 있었고, 성가신 일 없이 호젓하게 지낼 수 있었다. 나는 나를 감추는 온갖 방법을 생각해 냈다. 어떤 때는 더없이 빼어난 솜씨에 남몰래 뿌듯해하기도 했다."

개미는 키위의 씨처럼 자신을 숨기기도 하고 악보 속으로 숨어들기도 했다. 내 주장은 최소한 개미는 자신을 감추는 법을 알고 있으므로 여백 속에 숨어있을 수 있다는 생각(또는 소망)도 무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개미가 되어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텅 빈 동그라미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사라지는 무념무상의 개미. 나는 개미다. 그런데 나는 소도 동자승도 개미도 아니다. 따라서 나는 여백을 개미 그림이라 우기면서 텅 빈 동그라미도 지워버린 그림을 저자에게 이메일로 보낼 것이다. 내가 보낼 것은 여백, 즉 백지 파일이 될 것이다.

<나는 한 마리 개미>의 주인공은 결코 개미가 아니었다. 아무리 '나는 개미다'라고 우겨도 이 책의 원래 제목처럼 '개미의 잠꼬대'였고 원래부터 한바탕 꿈이었고 여백 그 차체였다. 애초부터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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