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긴급한 지원이나 혹은 '한국인으로서의 소양'을 키우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매우 역설적이게도, 지난 달 노르웨이 연쇄 살인의 주인공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의 그 한국, 즉 "가부장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한국"에 훨씬 더 가깝다.
도시 브랜드로서의 다문화 : 안산시의 다문화 특구 정책
안산시는 약 5만 명의 외국인이 거주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외국인 밀집 지역이다. 안산역 앞에서부터 시작하는 '국경 없는 거리'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이 밀집해 있다. 안산시는 이곳을 대상으로 2009년 5월 '다문화 마을 특구'를 기획재정부에 신청하여 승인을 받았으며 현재 관련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다문화 마을 특구'란 무엇인가? 안산시에서는 다문화 마을 특구라는 이름으로 국경 없는 거리 일대에 다문화원 건립, 특화 거리 조성, 외국계 음식점 관광 식당화, 세계 전통 민속 축제 개최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의 내용은 주로 인프라 개발과 지역의 관광 상품화와 관련된 것이다. 즉,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안산시의 시민단체들은 초기부터 다문화 마을 특구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안산시는 2005년부터 특구 지정을 추진하였으나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시민단체의 반발로 추진이 무산된 바 있다. 시민단체가 반대하는 이유는 물리적 환경 정비 위주로 추진되는 다문화 마을 특구 정책이 지역의 임대료를 상승시켜 오히려 다문화 공동체가 해체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후 안산시에서는 일부 계획을 수정하여 2009년 다문화 마을 특구 지정을 받기에 이른다.
▲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 ⓒ박세훈 |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지역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안산시가 '다문화'를 하나의 '사업'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주 외국인을 어떻게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한국 사회에 정착하도록 지원할 것인가보다는, 도시의 경제적,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데에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초점이 있다.
박제된 중국 문화의 거리 : 인천 차이나타운 특구
여기에 또 하나의 '특구'가 있다. 바로 100년 이상 된 한국 화교의 중심지에 지정된 인천 차이나타운 특구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최근 한국 내에서 중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제법 관광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문화의 거리'로 알려진 차이나타운은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가 외국인에 대해 얼마나 불관용적인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해방 이후 한국 정부는 화교 사회에 대해 탄압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정부는 화교 학교의 학력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토지 소유를 제한하여 경제력의 성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였다. 화교들이 음식점을 많이 경영하게 된 것은 그들이 요리를 잘 해서가 아니다. 달리 가질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의 화교는 노역과 행상에서 출발하여 자본을 축적하고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세계적인 경제인으로 성장하였다. 그들과 대조적으로 한국의 화교들은 철저한 규제와 탄압 속에서 사회적으로 공간적으로 고립되었다.
인천 도심부의 궁벽한 언덕에 위치한 쇠락한 거리가 1992년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고 이어 중국 경제가 급속히 부상하면서부터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해외의 차이나타운이 관광의 명소이자 화교 투자의 거점으로 기능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인천 차이나타운의 가치도 새롭게 조명 받게 된 것이다. 인천시는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차이나타운 조성 사업에 착수하였다.
도로 기반 정비, 페루 및 관련 시설 건설 등 인프라 개선과 함께 각종 축제 및 이벤트를 지원하고 중국 현지를 방문하여 투자 상담회를 벌이기도 하였다. 인천 차이나타운을 인천시의 핵심 관광 상품이자 중국 투자의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억눌려 있던 화교 경제가 단시간의 지원으로 되살아날 리 만무한 일이다.
▲ 인천 차이나타운. ⓒ박세훈 |
어쩔 수 없이 차이나타운 조성 정책은 많은 혼란과 갈등을 낳았다. 시정부의 개발 드라이브에 화교들은 시큰둥했고 오히려 한국 상인들이 적극적이었다. 화교들과 한국 상인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고, 시정부는 차이나타운을 지원하고 싶어도 누구를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사업이 아니라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정책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은 양극화되어있다. '사업'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지방자치단체가 그것이다. 안산시와 인천시의 경우 외국인의 집중도가 높고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밀집 지역 자체가 '상품성'을 가진다. 따라서 비교적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높고 관련된 정책도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정책마저 상당 부분 지원보다는 '사업'에 치우쳐 있다. 외국인과 외국 문화가 당장 도시의 먹을거리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지만 주목한 결과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외국인의 '상품성'이 낮은 지방자치단체는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외국인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2007년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단체에게 '거주 외국인 지원을 위한 표준 조례안'을 내려 보낸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오늘날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약 90퍼센트가 표준 조례안을 제정하였다. 괄목할 만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관할 구역 내 외국인의 실태와 여건을 파악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내용을 조례에 담았다고 볼 수 없다.
전국의 외국인 지원 조례가 거의 동일한 문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러한 형식적인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실천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천편일률적이고 시혜적인 정책보다는 지역의 여건과 상황에 부합하는 창의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오직 지역 시민 사회와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오늘날 도시에서 외국인의 존재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은 문화적 다양성과 경제적 활력을 가져다주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갈등과 소요를 유발할 수도 있다. 해외의 활성화된 차이나타운의 사례는 결국 외국인의 사회 경제적 역량 강화가 장기적으로 수용국에 이익이 됨을 보여준다.
성급한 마음에 거위의 배를 가르고 황금을 꺼내려 한다면 우리는 황금도 거위도 모두 잃을 수 있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외국인의 사회 통합을 지원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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