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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승산 없는 싸움 도발하는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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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승산 없는 싸움 도발하는 속내는?

[시민정치시평] '교과서 쿠데타' 없다

건강한 논쟁은 민주주의의 꽃이다. 다원적 가치를 존중하는 풍토 위에 각기 다른 생각이 자유롭게 개진되는 논쟁이 때론 사회를 갈라놓기도 하고, 때론 갈등 너머 합일점을 찾아 사회 통합의 길을 모색하기도 하며 민주주의 사회는 여물어간다. 지금 후끈 달아오르고 있는 역사 교과서 논쟁 역시 우리 사회가 건강한 논쟁을 통해 거듭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역량을 갖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 중 하나다.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보수 학계와 언론의 역사전쟁 선포는 '뉴'라이트라는 개념이 무색할 만큼 극우적 발언으로 넘쳐나고, 야당과 일부 진보 매체는 사실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은 '카더라' 수준의 대응으로 역공에 직면해있다.

이 혼탁한 논쟁의 가닥을 잡기 위해 일찍이 역사 교과서 논쟁을 야기한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이하 금성교과서)와 뉴라이트가 만든 대안교과서 간의 쟁점을 정치가 아닌 학문의 중립적 언어로 상기해보자. 두 교과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금성교과서가 민족정체성을 강조한 반면, 대안교과서는 국가정체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민족정체성=친북'이라는 프레임으로 금성교과서를 비판한다. 하지만 민족정체성을 강조했다고 해서 국가정체성을 부정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국가정체성을 구성하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치를 금성교과서 역시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다만 운동사적 시각에서 민주화에 강조점을 두었을 뿐이다. 이에 비해 대안교과서는 산업화에 강조점을 두고 개항 이후 오늘날까지를 자본주의 발전사의 일환으로 재구성하고 민주화를 정치사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이렇듯 두 교과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친자본적 역사관과 친민중적 역사관이 공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건강한 역사 교과서 논쟁은 우리 사회에 보수적 관점과 진보적 관점의 역사관이 공존하고 있음을 상호 인정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작금의 논쟁에서는 자신의 역사관만이 정의이자 헌법적 가치라는 독선으로 상대를 편향적이라 공격하며 적대시하는 전투만이 난무하고 있다. 진보 매체의 오보 해프닝도 십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공공재인 교과서를 무기삼아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를 이적세력으로 몰아가는 뉴라이트의 정치행위 역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2011년 자유민주주의 논쟁으로 두 역사관이 정면충돌하는 혼란 속에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가 나름의 고심 끝에 만들어낸 중학교 교과서를 '교과서 쿠데타 세력'이 '남로당식 사관'으로 만들었다고 극언하며 역사 전쟁을 선포하는 뉴라이트에게는 극우사관의 그림자만 보일 뿐, 합리적 보수로서의 면모를 찾기 어렵다.

뉴라이트는 지금 보수 언론의 지원을 받는 등의 정치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가 쳐놓은 두 가지 덫으로 인해 역사 교과서 논쟁 혹은 전쟁에서 승자가 되기 어렵다. 우선 자유민주주의만이 대한민국 정체성이라는, 올드라이트와 구별되지 않는 뉴라이트의 낡은 주장은 일부 국민에게는 호소력이 있을 수 있지만, 광범한 대중적 기반을 확보하기 어렵다. 뉴라이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시장 가치의 수호와 함께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 곧 반공을 강조한다. 이 반공민주주의는 해방 직후 우익이 내놓은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 다시 말해 '공산주의를 없애야 민주주의가 완성된다'는 프레임의 반복에 불과하다. 반공의 위세가 꺾이자, 그 연장선상에서 반북을 전면에 내세우는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뉴라이트는 진영 논리에 입각한 비판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만, 대중의 역사 심리에 기반한 비판에는 매우 둔감한 듯하다. 인터넷 댓글 속의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은 온통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다는 데 쏠려있다. 친일과 독재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저항이라는 역사 심리는 곧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반공민주주의가 아닌 독재의 안티테제로서의 민주주의)도 대한민국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 가치임을 의미한다. 이런 현실을 홀대하고 자유민주주의만을 고집하며 대중을 계몽 대상으로 인식하는 한, 뉴라이트는 논쟁에서든 전쟁에서든 승기를 잡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 역사 교과서 논쟁에서는 보수 정치인들이 적극 나서 극우사관을 옹호하는 데 비해, 이번 역사 교과서 논쟁에서 감히 보수 정치인들도 공개적으로 뉴라이트 편을 들지 못하는 것은 친일과 독재 미화 세력이라는 대중의 뉴라이트'관'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뉴라이트의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 역시 그들의 일보 전진을 막고 있는 덫이다. 뉴라이트의 의도대로 교육과정이 정치적 논리와 힘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학계에서 통념화된 연구 성과를 반영하는 독자성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 레이건 보수 정부가 직접 나서 기존 역사관을 자학사관이라 비판하며 애국주의와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 했으나, 결국 학문적 공론장인 역사학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진정 뉴라이트적 역사 인식의 보편화를 꿈꾼다면, 교과서 쿠데타가 아니라 뉴라이트 학파를 형성해 부지런히 학문적 성과를 쌓는 것이 우선이란 얘기다.

지금 우리는 정치 선동이 아니라 역사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는 상식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군사 쿠데타가 불가능하듯이, 교과서 쿠데타 역시 불가능한 사회인 것이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 논쟁을 지켜보다보면 우리 사회에 건강한 논쟁이 펼쳐지는 공론장이 참으로 부족하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그 결핍이 뉴라이트에게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도발할 수 있는 빌미를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건강한 논쟁의 상대로 기다리는 건 극우와 공생하는 뉴라이트가 아니라, 합리적 보수의 길을 고민하는 진짜 '뉴'라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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