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8월 26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김기협 : 지난 번(7월 29일) 만나 뵌 후에도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선, 해방 1주년 기념일에 큰 불상사가 없었던 것이 다행입니다.
안재홍 : 온 민족이 함께 기뻐할 날에 큰 불상사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다니 참 딱한 일입니다. 하지만 다행은 다행이죠. 지난 3·1절 때와 같은 심한 혼란과 충돌이 없었던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에도 행사가 양쪽에서 따로 열렸기 때문에 모두들 충돌을 걱정했죠.
김기협 : 3·1절에 비해 이번 행사가 평화롭게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안재홍 : 우선 정치적 상황이 다르죠. 3·1절 때는 미소공위를 앞두고 기세 싸움이 뜨거울 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앞으로의 상황 전개를 구체적으로 전망할 길이 없이 모두들 관망하는 분위기입니다. 여론의 표적이 되는 것이 조심스러운 분위기죠.
그리고 미군정의 행사 참여로 인해 우익 측 행사의 질서가 보장되었습니다. 조-미 공동 주최의 기념식이었기 때문에 도발적인 연설이나 진행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좌우 합작을 바라는 미군 지도자들의 성의를 확인할 수 있는 일입니다.
좌익도 마침 내부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판이라서 문제를 일으킬 형편이 아니었죠. 15일 밤 소사에서 좌우익 청년들 수백 명씩이 맞붙은 사건의 정황을 보면, 어느 쪽 도발인지는 몰라도 충돌에 대한 대비는 양쪽에 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기협 : 좌우 합작 회담이 첫 회의 이후 한 달째 개점 휴업 상태입니다. 좌익 3당의 합당 작업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합당 작업을 계기로 내부 문제가 예상 외로 격렬하게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공산당과 인민당은 반쪽이 난 꼴이고 신민당 내부 사정도 불안한 모양입니다.
세 당이 합쳐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쪼개져서 여섯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 당의 문제가 결국 박헌영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의 대결 아닙니까? 선생님은 그 귀추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안재홍 : 박헌영 씨의 힘이 이렇게 큰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공산당의 쟁쟁한 원로-중진들이 제기한 대회 소집 요구를 일축하면서도 저렇게 당 장악력을 유지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거니와, 인민당에까지 저런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못한 일입니다. 여운형 씨 지지자들은 박헌영 씨 측에서 '프락치'를 심어놓았다고 분개한다는데, 정확한 실상은 모르지만 '프락치'라는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즉각 합당'을 위한 현우현 씨 댁 모임 같은 것은 분명히 '당 내의 당'이죠.
꼭 1년 전 박헌영 씨가 건준에 손을 뻗치던 때 생각이 납니다. 아직 공산당도 제대로 세워놓지 못하고 건준 일각에서 인공 수립 공작을 추진하고 있던 박 씨는 여운형 씨의 당당한 위망에 비하면 일개 무명소졸이었죠. 그런데 인민당을 뒤흔들 만한 세력을 지금까지 심어놓았다니…. 반년만 더 있었다면 좌익을 완전히 장악했을 겁니다. 아직 장악이 확고하지 않은 단계에서 합당 문제가 나오는 바람에 그 반대자들의 총궐기가 일어난 셈이네요.
박 씨 중심의 남조선노동당은 만들어질 겁니다. 북조선노동당을 만든 이북 공산주의자들은 박 씨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이 좌익의 '대세'가 되겠죠. 그 반대자들은 수적으로 많지만 조직도 자금도 없으니 세력 결집에 한계가 있을 거고요. 이번 합당으로 좌익 전체는 타격을 받겠지만, 박헌영 씨의 위상은 더욱 강화될 겁니다.
김기협 : 박헌영 씨는 지금까지 좌우 합작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합작을 힘들게 만든 민전의 고압적인 '5원칙'도 박 씨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죠. 이번 좌우 합작은 지난 1~2월에 통일 전선 결성 시도가 무산된 후 모처럼 그 뒤를 잇는 노력으로 인민의 여망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 씨가 이런 여망을 외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안재홍 : 1월의 통일 전선 실패에는 좌우 양측 모두의 고압적인 태도가 작용했습니다. 고압적인 태도는 상황을 너무 쉽게 보는 안이한 시각에서 나오는 것이죠. 좌우 합작 없이도 독립 국가 건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각자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만 몰두했던 겁니다.
그 동안 미소공위의 한 차례 실패를 보며 우익에서는 반성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반탁'의 이름으로 3상 회담 자체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지금은 분단 건국의 위험 앞에서 대다수 우익 인사들이 합작을 더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좌우 합작에 관한 한 김구 선생과 이승만 박사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임하게 되었습니다.
좌익에서도 비슷한 반성이 많이 일어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박헌영 씨는 이북에서 공산당의 순조로운 득세를 보며 이남도 같은 식으로 풀려야 한다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좌익의 영도력을 둘러싼 여운형 씨와의 경쟁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조선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김기협 : 여운형 씨가 인민당 대표직을 사임하고 1주일 가까이, 그것도 해방 기념일을 전후해서 지방으로 잠적한 것을 보면 정말 상심이 컸던 모양입니다. 몇 달 전에는 동생 여운홍 씨가 떠나더니, 이번에는 건국동맹 이래의 여러 동지들이 등을 돌리고….
그래도 19일 서울에 돌아온 후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좌우 합작 회담 재개 의지를 보여주고 내일(8월 27일) 예정된 인민당 확대중앙위원회에도 당당히 임할 태세입니다. 박헌영 씨의 태도에 더 이상 개의치 않고 이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나아가겠다는 결의를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합작 회담의 전망은 밝아지는 것 아닌가요? 민전 의장단 5인 중에도 사실 여 선생 외에 백남운, 김원봉 두 분이 합작에 열성적인 태도죠. 그리고 공산당의 단합을 위해 참고 지내오던 소위 '대회파'도 풀려나오게 됐습니다. 여 선생의 합작 노력을 뒷받침하는 좌익 세력도 그 존재가 뚜렷해질 것 같습니다.
안재홍 : 그렇습니다. 지난 1월 나도 백범 선생과 이 박사 중심의 우익 단결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을 참았던 것처럼 여 선생도 좌익의 단결을 지키기 위해 참은 것이 많았죠. 그러나 미소공위 재개를 위한 좌우 합작 앞에서는 우익 단결을 뒷전으로 돌렸습니다. 합작을 외면하는 우익이 있다면 갈라설 작정입니다. 여운형 씨도 좌익 대동단결의 꿈을 접은 모양입니다.
합작 회담의 당장 진행은 풀리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8월 22일) 합작위원회 우방(右方) 대표단 성명서에서 "어떤 일방의 지령이나 사주를 받아 국가 독립을 불원하는 반민족 비애국적 분자를 제외하고" 진정한 좌측 지도자와 제휴할 용의를 가졌음을 밝혔습니다. 조금 지나친 표현일지는 몰라도 틀린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헌영 씨, 허헌 씨, 이강국 씨, 정말 너무했어요. 뭘 믿고 그렇게 책략에만 매달리고 대화를 회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양심적이고 성실한 좌익이 그들로부터 풀려나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합작 회담의 궁극적 성과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아쉬운 일입니다. 지금의 합작 회담은 남반부 내의 합작을 위한 것입니다. 더 큰 합작은 남북을 아우르는 것이라야 하죠. 그 단계를 위해서는 공산당의 전면적 참여가 필요합니다.
김기협 : 7월 29일 첫 공판 이후 중단되었던 정판사 사건 재판이 며칠 전부터 다시 시작됐죠. 공산당 측과 군정청 측의 상반된 주장 중 어느 쪽이 옳은지 완전히 밝혀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재판 진행의 책임을 가진 군정청 쪽 태도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경찰도 검찰도 고위층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판사까지도 그런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첫 공판 때 체포된 시위자들에게 징역 몇 년씩 군정 재판에서 때린 것은 일제 말기 전쟁기에도 없던 일입니다. 군정청의 공산당 탄압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 달 들어 공산당 주변에서 '신전술'이란 말이 돌고 있습니다. 미군정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강경 노선으로 돌아선다는 것입니다. 초순에 박헌영 씨가 하지 사령관에게 보낸 편지가 8일자 <조선인민보>에 게재된 것을 보니, 미군정의 실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인민위원회에 정권을 넘길 것을 요구했더군요. 확실히 전과 다른 자세로 보입니다.
미군정의 탄압이 공산당 노선 강경화의 원인 내지 핑계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미군정의 좌우 합작 지원도 진정성 있는 정책이 아니라 공산당 고립을 위한 술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죠. 도둑을 몰아도 막다른 골목으로는 몰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데, 공산당을 둘러싼 문제들은 끝없이 악화되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안재홍 : 정판사 사건 재판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정말로 경찰-검찰이 주장하는 범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죠. 나도 일본 경찰의 취조를 수없이 받아봤지만, 이번 사건처럼 기본 원칙도 안 지키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의 결과 자체보다 조선 사법계와 경찰의 자세가 잘못 만들어지는 것이 더 큰 걱정입니다.
공산당의 신전술도 걱정됩니다. 1928년 6차 코민테른 대회에서 "계급 대 계급"의 극좌 노선 채택한 것을 신전술이라고 했지요. 중국과 일본 소식 들으면 공산당이 모두 개방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데, 우리 공산당은 반대 방향으로만 가고 있습니다.
식량난에, 수해에, 전염병에, 민생이 엉망인데다가 미군정의 실정과 경찰의 횡포로 민심이 흉흉합니다. 이런 어려운 시절에는 정말 공산당에게도 햇볕 정책을 써야 합니다. 민심 수습에 도움까지 바라지는 않더라도 메마른 민심에 불붙이러 나가도록 몰아붙여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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