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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맞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원하는 이들은…

[꽃산행 꽃글·15] 비오는 날, 화분에 담긴 식물들을 생각하다

최근에 비가 많이 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높낮이도 고려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골고루 왔다. 너무 많이 오는 비이다 보니 비가 오지 않는 곳에서도 비가 왔다. 지하철 구내에도 물기로 흥건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도 우산이 물어온 빗물로 번들거렸다.

현관도 마찬가지였다. 신발코에 묻어온 물기로 얼룩덜룩했다. 텔레비전에서도 비가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온통 비에 관한 뉴스뿐이었다. 식구들도 밥을 먹으면서 비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근원을 따진다면 물과 물고기의 관계처럼 밥과 비는 상당히 친근한 관계일 것이다. 세상이 온통 습기로 축축해졌다.

비는 하늘에서 온다. 아래로 떨어진 빗물은 알 수 없는 문자를 자꾸 적으면서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 무슨 두려운 느낌을 감지한 것일까. 손에 물 한 방울 묻히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검은 우산을 쓰고 출근했다.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조금의 물기도 용납하지 않으려 했다. 한 방울의 비라도 들이칠까 봐 유리 창문을 꼭꼭 닫아걸었다.

화분 하나 없는 사무실은 없을 것이다. 햇볕을 많이 쬐어야겠다는 작은 배려로 화분을 창가에 주로 둔다. 그래서 화분은 빗소리를 더욱 가까이에서 들어야 했다. 감질나게 소리로만 비를 실컷 맞았다. 그러나 그건 해갈에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유리문이라 밖은 훤히 잘 보였다. 잘만 하면 바로 고향에서 온 저 빗물을 받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손 뻗어보지만 차가운 꼴만 당했다. 줄기찬 비는 줄줄이 창문 밖으로만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러 날 동안 화분의 식물은 한 모금의 물도 얻어먹지 못했다. 다리 한번 제대로 뻗지 못하는 화분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감옥살이인데 이건 무슨 잔인한 사태인가.

▲ 창가의 화분들. ⓒ이굴기

마음이 축축해진 사람들은 식물도 그러려니 하고 여기는 것 같았다. 화분의 흙에도 물이 질컥이는 것으로 짐작하는 것 같았다. 그저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홍수인데 정작 실내의 식물들은 쫄쫄 굶는다는 이 아이러니!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속 물기가 마르고 나서야 식물들도 이 가뭄을 겨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처럼 우산을 두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몸살을 앓고 난 하늘은 후련해 보였다. 붉고 건강한 얼굴을 되찾았다. 공중을 떠돌던 먼지들도 비의 밧줄을 타고 모두 아래로 내려왔다. 모처럼 전방이 깨끗했다. 그 풍경을 놓치기 싫어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타기로 했다.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댔다. 이들도 모두 흙에서 유래한 몸을 가지고 있다.

▲ 효자동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서쪽 모습. 능선에는 무슨 기호처럼 참나무 종류들이 도열해 있고 모아이를 닮은 바위도 꿈꾸듯 서 있다. ⓒ이굴기

대한문에서 꺾어져 서소문 버스정류장에서 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묵묵히 서 있는 가운데 바로 앞이 횡단보도였다. 여기가 목이 좋아서 그런지 대기하는 빈 택시들이 많았다. 전광판에서 나의 버스는 10분 뒤에 도착한다고 알려주었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나란히 서 있는 택시를 보았다.

말하자면 저 영업용 택시도 작은 구멍가게이다. 그래서 저렇게 사람들 이동이 빈번한 횡단보도 앞에 가게를 차린 것이다. 가게들은 지붕의 등을 모두 환히 밝혔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있었다. 가게 안의 온도를 낮추는 그만큼의 열기가 바깥을 데우고 있었다. 아직 오지도 않는 택시 손님 때문에 버스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여자 둘 남자 넷의 일행이 횡단보도로 몰려왔다. 한 사람이 택시를 타려고 하자 다른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쪽 편에서 한 잔 했으니 저쪽 편에서도 공평하게 한 잔만 더 하자고 하는 것 같았다. 옥신각신하다가 녹색불이 들어오자 그들은 택시를 남겨두고 우르르 횡단해 버렸다. 불빛 가득한 도로가 뗏목만 남은 쓸쓸한 강으로 갑자기 변했다.

신호등의 불은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모였다가 썰물처럼 건너갔다. 건너편에서 또 그만큼이 건너왔다. 좌우의 빌딩은 대부분 불이 꺼졌다. 그래도 몇몇 사무실은 불이 환했다. 그곳 창턱에 삐쩍 마른 난초 화분이 걸터앉아 있었다. 높은 빌딩 떼에 가려 달은 얼른 보이지 않았다.

▲ 아침 출근길 서소문 버스정류장에서 하늘을 보니 은행나무 사이로 낮달이 떠 있었다. ⓒ이굴기

보이지 않는 달을 찾으면서, 달이 떠 있을 여러 산들을 생각했다. 천마산, 태백산, 설악산, 회문산, 백암산. 그리고 최근 태풍 무이파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지리산 노고단까지. 그 능선에서 골짜기를 훑어내려 가자니 눈길을 한번이라도 맞춘 나무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어디 발밑에 상처는 안 났을까. 이 와중에 통통한 체력이라도 길어 올렸을까.

휘영청 달 대신 휘황한 가로등이 공중을 점령한 이곳은 크게 보아 인왕산과 남산의 골짜기이기도 하다. 그 옛날에는 서울에 다 왔다고 한번 쉬어가는 고개이기도 했겠다. 그 얼마나 좋은 꽃산행이었을까. 높은 빌딩 사이로 텁텁한 바람이 불어오자 은행나무들이 출렁거렸다. 마치 답답한 지경에서 목을 길게 빼고 울부짖는 동물처럼 보였다.

▲ 인왕산에서 본 남산. ⓒ이굴기

버스를 기다리는 10분 동안, 나는 택시 안을 자주 바라보았다. 지금 택시 기사는 에어컨 때문에 창문을 열 수가 없다. 창문을 연다 해도 길에서 풍겨오는 온갖 번들거리는 냄새에 곤욕만 치러야 한다. 신경을 뻗어보아야 저건 모두 내 것이 아닌 것이다. 감질나게 입맛만 버려놓기가 쉽다. 모두가 퇴근하고 쉬는 시간이 그에게는 영업시간이다. 끼니야 어차피 불규칙하니 여기서 운 좋게 장거리 손님 하나 태우고 변두리 기사식당을 찾아가는 게 소박한 희망일까.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기사 아저씨는 유리창 너머에서 화분의 식물처럼 조용히 담겨 있었다.

연재 12회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고래 사냥을 했다!" 중에서 "개회나무"는 "회목나무"의 잘못이었습니다. 이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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