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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서 대통령 욕한들 세상이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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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서 대통령 욕한들 세상이 바뀌나!

[도시 주인 선언·15] '광장의 정치'의 현재와 미래

2000년대 발생한 효순이·미선이 사건(2002년), 노무현 탄핵(2004년), 광우병 촛불 집회(2008년), 반값 등록금 촛불 집회(2011년) 등의 일련의 사건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광장'이다.

2000년 이전에도 한국 사회가 광장의 존재와 역할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일제 식민 권력부터 박정희 군사 정권, 김영삼 문민 정권까지 지배 세력은 광장을 권력화한 공간으로 활용하여 시민들을 길들이고, 관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2000년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의 결정적인 차이가 나타나는데 바로 지배 세력의 권력화된 공간이었던 광장을 탈환하고자 하는 사회 세력 간의 갈등과 경합이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광장의 정치의 저변에는 "반(反)미-친(親)미"(효순이·미선이 사건), "보수-진보"(노무현 탄핵, 광우병 촛불 집회)와 같은 기존 한국 사회의 갈등 구도가 작동하였다. 그런데 광장의 정치는 보수-진보 구도와 같은 순수한 이념 투쟁이기보다는 광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저항의 중요한 토대이자 변수로 작용했다. 예컨대 국내 언론이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 조례 개정을 둘러싸고 어떻게 광장을 인식하고, 해석하는지를 통해서도 이를 가늠할 수 있다.

▲ 광장 관련 언론 사설 제목. ⓒ황진태

사설 제목들에서 보듯이 매체의 이념 성향과 상관없이 각 매체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정의(定義)는 상이하지만 공통적으로 광장을 민주주의가 발현되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광장을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의 실현이며, 다른 사회 세력으로부터 공간을 빼앗기는 것은 반(反) 민주주의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광장의 정치는 기존 한국 사회의 갈등 구도가 재현되는 것뿐만 아니라 공간 그 자체를 둘러싼 쟁탈이 갈등 구도의 전개와 긴밀히 연동된다. 이러한 광장의 정치는 민주화 이후 침체된 한국 사회 운동에서 새로운 연대의 방식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의 광장의 정치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인 광장을 지키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향에 대해서는 우려해야 한다. 이러한 광장 '안'의 정치에만 빠질 경우 광장의 정치는 저항 세력 스스로를 지배 세력이 설정한 특정 공간(즉, 광장)에 갇혀서 운동에너지를 무의미하게 배출하고, 결국 지배 세력의 통치를 합리화, 강화시키는 자충수(自充手)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광장의 정치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많은 경우 중앙 정부로부터 기인했는데, 중앙 정부가 아닌 서울시라는 도시 정부를 상대로 특정 물리적 공간(광화문광장, 서울광장 등)에서 시민들의 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조례에 초점을 맞추는 협소한 구도로 바뀌면서 중앙 정부가 야기한 문제와 중앙 정부가 조성한 조건들(가령 집시법)을 간과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의 광장의 정치의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광장 안에 갇혀있는 기존의 광장의 정치 형태가 앞으로는 광장의 안과 밖의 상호 작용 속에서 복합적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음을 환기시키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1 : FF그룹의 광화문광장 퍼포먼스

해치맨 프로젝트를 통해서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을 비판했었던 디자인 창작 그룹인 FF그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를 앞둔 2010년 10월 23일 광화문광장에서 이명박 정권의 녹색 성장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형식의 퍼포먼스를 계획했다.

퍼포먼스의 구성은 헬륨 기체를 채운 하얀 대형 풍선의 양면에 인터넷으로 공모하여 받은 문구(풍선에 쓰인 문구는 "녹(슨)색 성장"과 "제가 웃고 있다고 여러분이 웃게 되는 건 아닌데 말이죠"였다)를 검은 테이프로 붙여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옆에서 해치맨이 풍선을 쥐고 서 있음으로써 마치 하얀 풍선이 세종대왕의 말풍선처럼 보이도록 만화적인 연출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을 취하게 된 이유는 지난 해치맨 프로젝트에서 공공시설에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가 불법이라는 이유로 활동에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공공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물리적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 [사진 1] FF그룹의 광화문광장 퍼포먼스와 이를 제지하는 경찰. ⓒ황진태

하지만 광화문광장에서는 집시법에서도 보장하는 1인 시위조차 금지된 상황이었다. 앞서 광화문광장에서는 2010년 4월 4일 생명의 강 살리기를 위한 투표 참여 촉구 퍼포먼스가 경찰 저지로 무산되었고, 4월 14일에는 4월 2일부터 1인 시위를 해오던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다.

특히, G20 정상 회의를 앞둔 11월에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 정책이 녹색인지 혹은 녹슨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공론장에서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FF그룹이 풍선을 올린 순간, 광장 관리인과 정보과 사복 경찰이 벌떼같이 몰려들어 퍼포먼스는 제지되었고, FF그룹은 광장 밖으로 쫓겨난다.

광화문광장 주변은 오로지 G20 정상 회의개최를 축하하는 구호들과 녹색 성장을 전파하는 홍보관이 입지하면서 정권의 지배 담론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FF그룹이 "녹(슨)색 성장"에서 "(슨)"자만 삭제했더라도 광장으로부터 쫓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사진 2] 광화문 광장 건너편 녹색 성장 체험관 앞에 서 있는 해치맨. ⓒ황진태

그러나 여기서 광장 안의 정치의 문제점을 재확인하는 게 초점이 아니다. 문제는 지배 담론이 관철되는 광화문광장을 벗어나서도 FF그룹에 대한 국가의 감시는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해치맨과 FF그룹이 광화문광장에서 KT건물로 건너서 다시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로 이동할 때까지 약 230미터 가량을 한 명의 경찰이 무전기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쫓아왔었고, 이동의 자유가 있는 시민인 FF그룹은 경찰에게 어디로 가는지를 밝힌 후에야 비로소 감시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사회 운동으로 보기 힘든 일개 아티스트의 퍼포먼스에 대한 국가의 알레르기 반응은 광장 안뿐만 아니라 광장 밖의 정치를 동시에 고려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을 환기시켰다. 다음으로 G20 정상 회의 대응 민중 운동 집회를 통해서 광장 안의 정치가 갖고 있는 한계와 광장 밖의 정치의 필요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 서울역 광장 G20 정상 회의 대응 민중 운동 집회

2010년 11월 11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국내 시민단체, 노동조합, 시민과 외국인 활동가를 포함한 5000여 명이 모여 G20 정상 회의를 반대하는 시위를 개최하였다.

집회가 끝난 직후, 당시 집회를 주도한 '민중행동'은 이번 집회는 "꺾이지 않는 투쟁의 열기를 확인했다"고 자평했다. '민중행동'의 평가뿐만 아니라 주로 진보 성향 언론의 보도 사진을 통해서 다양한 국적과 인종으로 구성된 무지개 시위 행렬은 마치 1997년 시애틀 반세계화 투쟁을 상기시켰다.

▲ [사진 3] 방호벽으로 둘러싸인 코엑스 경관과 삼성역에 대기 중인 경찰. ⓒ황진태

하지만 이 시위는 국가가 설정한 시공간 매트릭스 안에서 운동 에너지를 자위하는 것으로 만족한,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G20 정상 회의를 앞두고 정부와 한나라당은 G20 정상 회의 경호 안전을 위한 특별법을 가동했다. 이 법은 집시법 등의 법률보다 우선 적용되고(제2조), 경호 안전 업무 수행상 필요한 경우 정상 회의 개최 장소 주변을 경호 안전 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으며(제5조), 이 구역 내에서의 집회와 시위는 필요한 경우 금지할 수 있다(제8조).

즉, 특별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 법에 의하여 정상 회의가 개최되는 삼성동 코엑스 주변은 방호벽으로 봉쇄되고([사진 3]의 왼쪽 사진 하단에 녹색 펜스 참조), G20 정상의 만찬 행사가 예정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인근도 통제되었다. '민중행동'은 본래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시위할 예정이었지만, 국가가 설정한 폴리스라인을 넘지 못하고, 남영역에서 시위 행렬을 종결지었다.

▲ [사진 4] G20 정상 회의 반대 행렬과 인도를 통해 도로로 진입하려는 꽃상여 행렬. ⓒ황진태

이처럼 국가가 집회 장소를 구획하고, 시위자를 시위 대상 장소에서 먼 곳으로 옮기는 공간 전략은 일찍이 1999년 시애틀 시위에서부터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경호 안전 특별법의 시행에 앞서 2009년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경찰청은 집회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면서 공공의 질서를 지킨다는 절충안으로 평화 시위 구역 제도를 시범 실시했다.

이 제도는 집회 주최자가 준법 시위를 약속하면 시위자들은 경찰에서 지정한 공간에서 시위를 하며, 경찰은 시위자들에게 자유발언대, 간이화장실, 현수막 등을 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위헌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집시법에서도 공공기관(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대통령 관저, 국무총리 공관 등)과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가 집회 금지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처럼 법률을 활용한 국가의 공간 전술을 통하여 집회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는 구조화된 조건을 간과하고서 광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지키는 것에 치중한 현재의 광장 '안'의 정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된 G20 정상 회의 대응 민중 운동 집회에서 '민중행동'이 신자유주의와 G20의 죽음을 상징하는 꽃상여를 도로에 진출시키는 것을 두고서 경찰과 대치되어 서울역 광장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꽃상여를 인도(人道)로 우회하여 도로로 진입한 전략([사진 4]의 오른쪽 사진)은 집회 참여자들에게 국가 기구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이미 국가가 설정한 폴리스 라인 안에서의 예정된 시나리오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따라서 광장의 정치는 광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그 자체를 지키는 것만 목적으로 한다면 광장의 정치가 전개될 폭은 상당히 협소해지며, 나아가 국가가 설정한 특정 공간을 광장으로 간주하여 운동 에너지를 배출하면서 국가의 공간 전술을 정당화하는 퇴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국가가 설정한 집시법을 비롯한 집회에 대한 억압적 시스템을 간과하고서는 광장의 정치는 광장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광장 밖의 정치는 현존하는 제도 안에서의 개선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집시법과 경호 안전 특별법과 같은 법률이 국가 수준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한 궁극적인 광장의 정치의 실현은 요원하다. 일부 법학자들조차도 기존 제도 안에서의 한계를 인식하는 동시에 사회 운동의 역할을 강조한다.

"집시법을 거부하는 운동, 집시법의 경계선 상에서 전개되는 운동, 집시법의 테두리 내에서 진행되는 운동, 집회가 아니면서도 집회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안적 운동 등이 고민되어야 할 시기이다." (김종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위헌성", <민주법학> 제41호, 384쪽)

"그 사회의 기본권 실현의 정도는 훌륭한 이론의 개발보다는 궁극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의 기본권 획득의 의지와 행동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집회, 시위의 자유는 온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시민이 자유롭게 모여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고 여론과 국가 정책 형성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기본권 획득 운동이 있어야 한다." (권혜령, "집회·시위의 전제로서 '장소' 개념에 대한 고찰 : 미국의 '공적 광장 이론'과 새로운 공간 전술에 대한 비판 논의를 중심으로", <공법학연구>, 제11권 제3호, 24쪽)

결론적으로 광장의 정치가 공간을 권력화하려는 국가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운동 방식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물리적 공간인 광장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뿐만 아니라 광장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모색이 필요하다.

이글은 <공간과 사회> 35호에 실린 "도시권의 측면에서 바라본 광장의 정치"의 일부를 요약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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