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하는가. 겉으로는 분명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곧 와츠의 친구처럼 말할 것이다.
"상식과 직관의 함정에 관한 자네 말이 다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한 내 확신이 흔들리지는 않아."
원래 머리가 굵어지면 굵어질수록 자신의 사고 체계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앞서 말한 대로 우리의 상식은 이미 무너지고 있는 것을.
국내에서 <상식의 배반>(정지인 옮김, 황상민 해제, 생각연구소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와츠의 이 책, 원제는 'Everything Is Obvious'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제목을 '상식의 배반'이라고 번역했는지 의아했다. 책을 쓴 와츠 역시 "모든 것은 분명하다(상식)"와 "모든 것은 분명하지 않다(비상식)" 사이를 갈 지(之)자로 오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분명한 상식으로 돌아가자
▲ <상식의 배반>(던컨 와츠 지음, 정지인 옮김, 황상민 해제, 생각연구소 펴냄). ⓒ생각연구소 |
그들은 희망 버스를 타고 단식하는 사람에게는 '빨갱이'라며 삿대질을 했지만,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중의원 입국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와츠는 이런 태도에 대해 "일관된 진보적 관점과 보수적 관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그런 믿음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에서 우리를 애써 위로한다.
또 와츠는 "빈곤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때도 정책 입안자는 자신의 상식에 의존 한다"며 "규모가 크고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속성을 가진 경제 개발과 도시 개발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마침 우리는 그의 말대로 딱 이런 상식을 가진 사람이 연이어 시장과 대통령을 맡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상식에만 의지한 정치가나 정책 입안자가 온갖 실수를 할수록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식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라고 말하게 된다는 와츠의 분석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상식을 전염시키는 트위터, 의심하라
소셜 네트워크의 확장으로, 누구나 @BarackObama를 팔로우 한 뒤 "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대화하는 사이"라고 으스댈 수 있다. 와츠는 (강수정 옮김, 세종연구원 펴냄)란 제목의 책을 통해서 이미 평범한 상식에 기초한 소셜 네트워크의 확장성에 주목했다.
그는 트위터의 세 가지 특징을 꼽는다. 먼저 트위터는 우리의 말을 듣고 싶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힌 사람들(팔로어)에게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 트위터 사용자 대부분이 보통 사람(가정주부에서 대통령까지, 초등학생에서 나이 일흔의 어른까지 수평적 관계 형성)이란 사실이다. 이런 다양성 덕에 모든 종류의, "잠재적 영향력 행사자"가 나올 수 있다. 세 번째, 트위터의 '리트윗'이라는 기능을 통해 정보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연쇄적 확산을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와츠는 전염과 유사한 사건이 트위터에서 일어나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런 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드물게 일어난다고 말하며 트위터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진지하게 의심해 보라고 충고한다.
최근 소셜테이너라 불리는 배우 김여진 씨의 문화방송(MBC) 라디오 출연이 무산됐다. 이유는 그의 사회 참여가 정치적이라는 것인데, 사실 그는 전염을 일으킬 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큰 행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방송 출연이 무산됐다는 뉴스가 나온 후 영향력이 증대됐다. 김여진 씨의 트위터를 통해 홍익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농성과 '반값 등록금' 촛불 집회,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를 처음 접한 사람은 있겠지만, 그에 등 떠밀려 희망 버스에 몸을 실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희망 버스를 탄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와츠는 이런 현상에 대해 "소수 특별한 사람이 주도했다고 말하는 것은 한 가지 순환 논리를 또 다른 순환 논리로 대체하는 일일 뿐"이라고 말한다.
상식의 맹점을 알아야 뒤집을 수 있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때 우리는 '내가 알기로는' 또는 '상식에 비추어 볼 때'와 같은 표현을 종종 쓴다. 이 말은 무턱대고 점프를 하다 발을 헛디뎌도 큰 부상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양탄자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그리고 이 양탄자를 우리는 '상식'이라 여긴다. 또 '상식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인식되면 농담일지라도 그 사람의 말에는 탄력이 붙어 빠르게 확산된다.
이처럼 상식은 모든 것의 배후로 위력을 발휘하며 신화와 같은 절대적 성격을 갖기도 한다. 와츠는 이에 대해 "상식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참인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믿게 된 것인지 걱정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위력 때문에 상식은 세상을 이해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선입관이 생겨 사람이나 사안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우리의 능동적 접근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또 상식은 그럴듯한 원인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어난 일을 그저 서술하는데 불과하다.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한 희망 버스를 와츠의 주장에 대입해 보면 상식의 또 다른 맹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결과(2, 3차 희망 버스 1만 명 이상 부산에 집결)가 특별한 한 명(송경동 시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싶더라도, 이는 우리가 세상이 그렇게 움직였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지(부당한 정리 해고가 우리 사회에서 또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은 아니다(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200일 넘게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지만 정부와 한나라당은 한진중공업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
상식에 기대 예측하지 말라
상식에 기대 우리가 할 수 있는 예측이 있기는 한 걸까. 와츠는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은 사회에서 실제로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유가증권을 거래하는 '예측 시장'을 예로 들어 구매자와 거래자가 자기 충족적 예언이 실현되기를 바랄지는 모르나, 따지고 보면 원래 예정되어 있던 대로 작동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오히려 비전이 명확하며 주저 없이 실행에 옮기는 조직이 동시에 기획상 오류에 가장 취약할 수 있다는 '전략적 역설'(전략 컨설턴트 마이크 레이너 주장)을 거론한다. 하지만 1980~90년 대 음악 시장을 주도했던 소니가 인터넷 음악 시장을 예측하지 못해 애플에 시장을 내준 사례를 들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니의 선택은 어쩌다 보니 잘못 풀렸고 애플의 선택은 어쩌다 보니 잘 풀렸다."
결국 '복불복(福不福)'이라는 맥 빠진 결론이다. 하지만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 단순 예언이 아닌 추정치를 모아 평균을 내고 이런 측정치를 통해 예측을 하고 대응법도 마련하는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쓰라고 충고한다.
와츠는 시나리오 플래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학 연구에 필요한 모든 예측에 부트스트랩(bootstrap,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든 한다'는 뜻)을 하라고 권한다. 이는 도요타의 생산 체제를 모범으로 한 것으로, 어느 한 부분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시스템 전체를 중단하고 일단 그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적시(just in time)' 원칙에 따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와츠는 또 충고한다. 자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진 '계획자'가 되지 말고, 미리부터 자신이 답을 알고 있다고 단정하지 않는 '탐색자'가 될 것을. 계획 실패의 요인은 계획자가 상식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상식에 의지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추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 <인셉션>처럼 모서리 한 귀퉁이부터 상식이 무너진다면?
2011년을 사는 우리는 '마태효과(마태복음 25장 29절,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에 기초해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명명한 법칙)에서 나온 '부익부빈익빈'에 따라 태생적으로 넉넉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더 이상 개천에서 (태어)나는 용은 없다는 게 상식이므로. 88만 원 세대 역시 항변한다.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20대에 신용 불량자가 되면 영영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오늘날 상식이라고.
우리에겐 왜 애플의 잡스같은 사람이 없냐고 호통 치는 정부와 기업에게 상식적으로 생각할 것을 권한다. 우리 사회에는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또 생각을 180도 바꿔보면, 애플의 아이폰이 천재의 창조물로 보이는 이유는 단지 그 제품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와츠는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에서 정치학자 존 롤스의 말을 인용해 "불평등의 메커니즘은 출생이든 재능이든 기회든 본질상 우연적이기 때문에 그러한 속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주장한다. 이런 부작용은 개인의 권리를 위해서도 또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평등권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최소화돼야 한다.
또 "사회 현상은 수많은 개인뿐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조직, 정부가 상호 작용하고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생겨나며 이들 중 어느 것도 직접적으로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던 과거에서 벗어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가 새로운 종류의 사회적 활동을 확대해 상호 작용을 용이하게 만든다고 와츠는 말한다.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이런 사회 과학 연구는 분명한 것과 분명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에서 우리를 계속 흔들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상식은 신화와 같은 절대적 성격에서 점차 가변성을 지닌 것으로 변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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