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은 이론과 실무에 두루 능한 몇 안 되는 사람이면서, 청와대에서 수년간 부동산 정책 설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바로 이 대목이 그를 다른 자칭, 타칭의 부동산 전문가와 구별 짓게 만든다. 대한민국에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널려 있다. 그러나 그처럼 부동산에 관한 이론의 세례(洗禮)를 받은 데다 최종 심급 단계에서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김수현이 부동산에 관한 이론의 트레이닝을 받고 정책 수립의 핵심적 기능을 담당했다는 얘기는, 그가 그 누구보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이 지닌 사회·정치·경제적 함의를 예리하게 감득하고 있고, 부동산 시장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각 정책들이 발휘하는 정책 효과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수현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정확히 말하면 박한 정도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그 정부의 실정(?)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시장 만능주의자는 반시장적인 정책을 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난타했고, 개입주의자는 지나치게 시장에 의존해 화를 좌초했다고 공격했다.
서민들은 치솟은 집값 때문에 노무현 정부에 돌을 던졌고, 강남 부자들은 종합부동산세로 그 정부에 원한을 품었다.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가 냉담한데, 그 정부 부동산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던 김수현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 일 리가 없다. 그 역시 비판과 비난을 한 몸에 받아 만신창이가 됐다.
그런 김수현이 책을 상재했다. <부동산은 끝났다>(오월의봄 펴냄). 자못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 실패와 성취를 토대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담담하게 평가하고, 백가쟁명식의 부동산 정책이 지닌 의미와 한계를 분석하며, 대한민국 국민들이 선망해 마지않는 외국 주택 정책들의 실체를 알려주고, 바람직한 부동산 레짐(regime)을 제안한다.
노무현 정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부동산은 끝났다>(김수현 지음,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
물론 노무현 정부도 구경만 하지는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사용 가능한 정책 수단들을 전부 동원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부동산 투기를 끝내고자 분투했다.
세제(종합부동산세, 양도세)를 통한 수요 억제, 개발 이익 환수, 2기 신도시 건설 등을 통한 공급 확대, 분양 원가 공개 및 분양가 상한제 등을 통한 분양 방식 개선, 주택 담보 대출 비율(LTV, Loan To Value ratio) 및 총부채 상환 비율(DTI, Debt To Income) 등을 통한 유동성 관리, 공공 임대 아파트의 대량 공급을 통한 주거 복지의 확보 등이 노무현 정부가 사용한 정책 수단의 목록이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건국 이래 가장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부동산 정책을 총망라했음에도 서울 및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했다는 사실이다. 김수현은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노무현 정부의 좌절을 세계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린 과잉 유동성 관리에 실패한 때문으로 풀이한다.
아울러 노무현 정부 시기 논의되거나 시행됐던 각종 부동산 정책의 의미와 한계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및 양도세 같은 부동산 관련 세금, LTV 및 DTI 같은 금융 규제 정책, 신도시 건설, 재개발 및 뉴타운 건설, 공공 임대 주택, 분양 원가 공개·후분양제·분양가 상한제 같은 분양 관련 제도, 토지 임대부 주택 같은 것들이 그것인데 이들 정책은 학계와 시민사회로부터 부동산 문제의 해법이라고 제시된 바 있다.
그러나 김수현은 위에 열거된 정책들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효용이 있지만, 정책의 무게가 다르고, 효과의 크기도 다르며, 쓰임새도 다르다고 진단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보유세 같은 경우 복지 재원이 아닌 부동산 세제 정상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옳고 보유세 1퍼센트 달성보다는 10년 이내 0.5퍼센트 달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 소비자 선택권 차원에서는 후분양제가 더 적합한 제도일지 몰라도 주택 가격이 상승할 때는 선분양 제도도 유용할 수 있으며 후분양제가 아파트 가격을 낮추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
금융 규제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이 아니고 은행과 가계의 재정 건전성 확보 장치라는 것. 공공 임대 주택은 예산 제약의 한계 및 게토(ghetto)화의 위험 때문에 만능이 아니라는 것. 토지 임대부 주택은 실제로 입주자들의 부담을 크게 낮추기 어렵고, 기존의 소유권 관념과 충돌되며, 공급물량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보편화되기 어려운 공급 방식이라는 것 등.
결론적으로 말해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종결자는 없다는 것이 김수현이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주장하는 골자 중의 하나다.
상식 혹은 신화의 이면(裏面)
더 나아가 김수현은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실의 전복을 꾀한다. 놀랍게도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주택 가격 상승률이 20퍼센트 이하인 국가 중의 하나라는 것, 자가 소유율 61퍼센트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 심지어 공공 임대 주택조차 재고 물량 기준으로 하면 주요국(구 사회주의권 제외) 가운데 10위권 내에 들 정도라는 것 등이 전복된 상식들의 구체적인 예다.
또 김수현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선진국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환상, 즉 선진국은 집값이 안정돼 있고 주택 걱정 없이 살아가며 국민 대부분이 자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신화를 여지없이 분쇄한다. <부동산은 끝났다>에는 세계의 주택 지도와 각국의 주택 시장 상황과 주택 정책 등이 소개되고 있는데, 선진 주요국들은 반드시 자가 소유율이 높은 것도 아니었고, 공공 임대 주택이 많은 것도 아니었으며, 부동산 투기나 가격 폭등의 무풍지대에 속한 것도 아니었다.
단적인 예로 지난 30년간(1980~2008년) 집값이 90퍼센트 이상 상승해 OECD 국가들 가운데 아주 많이 오른 국가로 분류되는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핀란드, 아일랜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영국 같은 나라들은 손에 꼽히는 선진국일 뿐 아니라 자가 소유율도 평균 70퍼센트를 상회할 정도의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반면 독일 같은 나라는 주택 가격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기로 유명한데, 독일의 주택 점유 형태는 자가가 대략 40퍼센트, 공공 임대가 10퍼센트, 민간 임대가 50퍼센트를 차지한다. 즉, 자가가 적고 공공 임대가 많지 않으며 민간 임대가 아주 많다고 해서 반드시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고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위스도 사정은 독일과 비슷하다.
김수현이 선진국의 주택 시장 상황과 정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부동산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방법도 없고, 최적의 자가-공공 임대-민간 임대 비율도 각국의 사정마다 다르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사정에 맞는 부동산 레짐을 설계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형 부동산 레짐
김수현이 제안하는 한국형 부동산 레짐을 설명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부동산(주택)이라는 재화의 특징을 이해한 후,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장기 흐름(인구와 산업 구조 변화 등의 요인에 의해 결정)·중기 흐름(주택 수급, 고용 상황 및 경제 상황 등의 요인에 의해 결정)·단기 흐름(유동성, 정부 정책 등의 요인에 의해 결정)의 세 가지 흐름상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김수현은 이를 바탕으로 주택 정책에서 꼭 지켜야 할 네 가지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데 건설업으로 경기 부양 않기, 부동산 세금 원칙 지키기, 가계와 금융의 건전성 살리기, 개발 이익 환수와 나누기가 그것이다. 또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0년 동안 지켜야 할 과제들을 선정하고 있다. 부동산을 통한 인위적인 경기 부양 금지, 근대적 주택 시장 제도의 정착, 저출산·고령 사회 도래에 대한 선제적 대응, 기존 시가지 환경 개선에 공공 지원 확충, 흔들림 없는 정책 추진 같은 것들이 그 과제들이다.
<부동산은 끝났다>는 노작(勞作)답게 내용이 풍부하고 실증적이며 총체성을 담보하고 있다. 또 이 책은 아주 논쟁적이다. 김수현은 <부동산은 끝났다>를 통해 시장 만능주의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원가 공개와 후분양제가 부동산 문제의 가장 중요한 해법이라고 주창했던 사람을, 분양가 상한제와 금융 규제가 부동산 시장 안정의 첩경이라고 갈파했던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아울러 공공 임대 주택을 통해 주택 문제를 해결하고 주거 차원의 보편적 복지를 구현하려는 사람들의 한계를 냉혹하게 보여주며, 보유세를 복지 재원으로 삼자는 헨리 조지를 좇는 이들의 심기를 어지럽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은 부동산 담론 시장에 던져진 '폭탄'이라고 할 만하다.
다음 총선과 대선을 고민하는 정치인, 학자들, 시민운동가, 자칭 타칭의 부동산 전문가, 부동산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관료들 그리고 언론인에게 <부동산은 끝났다>를 일독할 것을 권한다. 사리사욕과 근거 없는 낙관과 앙상한 이론과 도그마에서 벗어나 <부동산은 끝났다>를 정독한다면 분명 적지 않은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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