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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도 항복한 해치맨, 그들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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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오세훈도 항복한 해치맨, 그들의 정체는?

[도시 주인 선언·14] 도시를 디자인할 권리

2006년 서울 시장에 취임한 오세훈 시장은 1년 후 디자인총괄본부의 신설, 부시장급인 본부장에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면서 '디자인 서울' 정책을 추진하였다.

오 시장이 취임하기 이전까지 도시 서울을 바라보는 행정가, 정치가의 눈이 반세기 동안 발전해온 서울의 모습처럼 칙칙한 콘크리트를 연상시키는 회색빛을 가졌음을 상기한다면 그의 디자인 철학은 앞으로 서울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잘 포착한 괄목할 진전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상적으로는 그의 디자인 철학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계획들을 접하면서 '동몽이상(同夢異床)'의 당혹감을 느꼈다.

취임 후 디자인 서울 정책의 첫 번째 사업이었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프로젝트의 추진과정에서는 시민 사회와의 충분한 협의 없이 근대 문화유산인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그곳에서 장사를 하던 노점상을 도심에서 쫓아냈으며, 간판 정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고유한 지역적 특성을 지녔던 북촌 거리의 간판들을 권위적인 행정력을 통해 교체하면서 상인들과 충돌하였다.

그리고 거리의 가로 판매대를 실용적이지 못한 디자인(가령, 차양이 짧아서 가판대에 비가 쉽게 들어왔다)으로 바꾸도록 강제하면서 노점상과 충돌을 빚기도 하였다. 오 시장의 야심 찬 계획이었던 광화문 광장은 일반적으로 광장이 도시민의 참여의 공간임에도 시민의 접근이 어려운 형태로 설계하면서 철학 없는 디자인의 대표 사례가 되었다.

상식적으로 서울 시정에서 디자인을 강조하는 것은 서울 시민들을 위한 것이어야 할 텐데 오 시장의 디자인은 서울 시민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도시를 디자인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이러한 디자인 서울 정책에 대한 불만과 비판 여론은 지난해 6·2 지방 선거와 맞물리면서 언론, 학계, 시민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디자인 서울에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디자인 창작그룹 FF그룹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디자인 정책에서 정작 서울에 거주하는 서울 시민들의 참여가 배제되었음을 비판하면서 '해치맨 프로젝트(또는 아이라이크서울 캠페인)를 기획하게 된다.

FF그룹의 창립은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재학생인 민성훈이 주도했다. 그는 2008년 5월경 디자인 거리 사업이 빠르게 추진되자 이 사업이 과연 시민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 디자인 수도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세운상가 재개발이나 디자인 수도로 서울이 선정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갖게 되었다.

이후 같은 과 출신의 장우석, 최보연과 디자인 관련 사업을 하는 조성도와 함께 FF그룹을 결성한다. FF그룹의 핵심 목표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디자인을 비롯한 도시 계획 과정에 시민의 참여가 봉쇄된 상황에서 서울시가 일방적이고, 권위적으로 추진하는 공간 정책의 영향을 받게 되는 시민은 과연 디자인 서울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FF그룹은 크게 세 가지 전략을 취했다. 첫 번째는 스티커 캠페인, 두 번째는 디자인 서울 거리 청소하기, 세 번째는 미술관 전시 활동이다.

첫 번째 전략인 스티커 캠페인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FF그룹이 구축한 인터넷 웹사이트와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와 같은 사회 연결망 서비스를 통하여 서울 시민으로부터 약 150개의 디자인 서울 정책에 대한 소감을 문구로 받아서 스티커를 제작하였다(<그림 1>의 A와 B의 과정).

스티커에 들어간 문구로는 "서울은 365일 공사 중", "한강에 나무 좀 그만 뽑으세요, 그늘이 하나도 없어요(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비판한 문구)", "와! 서울이 서울랜드가 되었어요!", "서울이 좋은지는 우리가 판단할 게요", "서울은 원래 좋아요" 등의 재기발랄한 문구들이었다.

▲ [그림 1] 스티커 캠페인의 전개 과정. ⓒ황진태

FF그룹 중의 한 명이 해치 가면을 쓴 해치맨(서울시가 서울의 상징으로 지정한 해치를 희화화한 FF그룹의 마스코트로 광화문광장 해치 기념품 가게에서 가장 큰 해치 인형을 구입하여, 솜을 빼고 가면으로 만들었다)이 되어 서울시의 디자인 서울을 홍보하는 포스터(도심의 대형광고판, 버스, 지하철 등)에 스티커를 붙였다([그림 1]의 C 과정).

스티커가 붙어 있는 위치와 사진은 웹사이트에서 위성 영상 지도 서비스인 구글 어스(earth.google.com)를 이용하여 시각화하였다([그림 2] 참조). 스티커 문구의 응모 과정에서 시민들이 원하는 위치에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였고, 응모한 시민들은 홈페이지에 있는 지도를 통해서 자신들의 스티커가 붙어 있는 장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버스에 붙어 있는 디자인 서울 홍보 포스터에 스티커를 붙이기 위해서는 야간에 버스 차고지를 가야 했는데, 이 과정을 스마트 폰을 이용한 인터넷 생중계를 하면서 시민들도 스티커를 붙일 때의 긴박감을 FF그룹과 공유하고 응원하는 등 상호 작용이 발생하였다([그림 1]의 D와 E 과정). 인터넷 생중계를 본 시민 가운데 일부는 생중계에서 스티커가 붙었던 버스에 자신이 직접 가서 확인 사진을 찍어 FF그룹에게 보내면서 디자인 서울 정책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 [그림 2] 스티커 위치를 나타내는 서울시 지도. ⓒ황진태

스티커 캠페인을 통하여 두 가지 함의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첫째는 디자인 서울 정책에 있어서 시민들의 참여의 권리다. FF그룹은 인터넷상의 사회 연결망 서비스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이용하여 그 동안 서울시가 추진한 디자인을 비롯한 도시 계획 과정에서 배제된 서울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 [그림 3] 서울시 홍보 포스터와 해치맨이 붙인 스티커. ⓒ황진태
두 번째는 새로운 도시 공간을 생산할 권리다. [그림 3]에서 보듯이 스티커는 현실과 괴리된 서울시가 지향하는 도시 담론("디자인 덕분에 살맛나요!")과 대립되는 메시지("서울은 365일 공사 중")를 배치함으로써 기존 담론을 조롱하는 것과 더불어 왜곡된 메시지가 담긴 홍보물이 붙어 있는 공간 그 자체를 대항 담론을 형성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생산한다.

스티커 캠페인은 뒤에 소개할 나머지 전략들과 비교할 때 사회적 파급력이 가장 강하였다. 이러한 파급력 덕분에 언론을 통해서 해치맨 프로젝트가 알려지게 되면서 FF그룹은 서울시 디자인총괄본부로부터 만남을 제의 받게 된다. 6·2 지방 선거를 앞둔 5월 20일 FF그룹을 만난 서울시 관계자는 해치맨 프로젝트에 대한 대응과 앞으로의 방침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해치맨이 붙인 스티커는 보이는 대로 떼는 중이며, 디자인 서울에 시민과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공감하니, 디자인총괄본부와 해치맨 사이의 네트워크를 유지하자. 공공 시설에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는 불법이니 그 부분은 삼가 달라. 아니면 대응할 수밖에 없다." (민성훈 씨로부터 받은 대화록 중에서)

FF그룹은 공공시설에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가 불법임을 알고 있었다(아이라이크서울 홈페이지에는 해치맨 프로젝트를 "비공식 불법 디자인 서울 캠페인"이라고 소개한다). 대신에 FF그룹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합법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서울시의 광고 시설물 중 몇 개를 할애해 달라고 요구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FF그룹은 서울시 관계자와의 만남 이후 불법적인 형태의 해치맨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결국 합법적인 형태로 해치맨 프로젝트를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하게 된다.

바로 두 번째 전략인 디자인 서울 거리 청소하기다. 이 전략은 시민들이 제안한 문구를 서울시가 지정한 디자인 서울 거리에서 먼지와 얼룩으로 지저분한 부분에다가 시민들의 문구가 출력된 종이를 문구대로 구멍을 뚫어서 마치 판화처럼 뚫은 부분을 거리 바닥에 놓고 칫솔과 락스를 이용하여 먼지와 얼룩을 닦아냄으로써 문구를 남기는 '합법'적 전략이다([그림 4]).

▲ [그림 4] 혜화역 1번 출구 맥도날드 앞 길바닥에 새겨진 문구. ⓒ황진태
이 전략은 스티커 캠페인이 야기한 서울시의 사법적 반격을 피하는 동시에 디자인 서울 정책으로 생산된 디자인 서울 거리를 전유한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 전략은 거리 한복판에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통행이 많을 때는 작업을 할 수가 없어서 인적이 드문 야간에 해야 하는 시간의 제약을 받았고, 스티커를 붙이는 것보다 작업량이 많다는 단점이 있었다. 보통 [그림 4]와 같은 하나의 문구를 작업하는 데 30여 분이 걸리며, 작업은 새벽에 끝났다.

마지막 세 번째 전략은 미술관 전시 활동이다. FF그룹은 6월 2일 지방 선거일 투표 개표 시간에 맞춰 인사미술공간에서 <디자인 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 행사를 개막하였다. 이 전시에서는 스티커 캠페인과 디자인 서울 거리 청소하기를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응모되었던 스티커 문구와 활동 일지를 전시하였다. 서울 시장 연임을 노린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을 효과적으로 비판하기 위하여 지방 선거일에 맞춘 것이다.

선거가 끝난 직후인 6월 23일 서울지방경찰청은 FF그룹을 소환한다. 해치맨 프로젝트 전략 중의 하나인 스티커 캠페인이 지방 선거를 겨냥하여 오세훈 시장의 정치적 타격을 줄 의도가 있었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경찰 소환은 FF그룹 구성원들에게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하였지만, 합법적 캠페인인 청소 작업을 2주 동안 더 했었다.

이후 FF그룹을 소환했다는 언론 보도로 야기될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서울시는 기자 회견을 열어 FF그룹의 소환은 서울시와 관계가 없다고 밝혔고, 경찰청도 서울시의 고발로 수사를 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을 하고, 수사는 곧 종료되었다. 이처럼 서울시가 언론 보도에 민감했던 이유는 지방 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예상과 달리 가까스로 연임에 성공하면서, 선거 기간 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던 디자인 서울 정책에 대한 강력한 수정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맥락에서 디자인 서울 정책을 비판한 FF그룹이 경찰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되는 것은 서울시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부담이 컸을 것이다.

결국, 오 시장은 승리했지만 초라한 선거 결과로 인해 디자인총괄본부는 해체되고, 대신 행정1부시장 산하에 문화관광디자인부로 개편되었고, 2008년부터 대규모로 진행되었던 서울 디자인 올림픽도 2010년에는 서울 디자인 한마당이라는 이름으로 소규모로 개최되었다. 또 FF그룹이 요구한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서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 홈페이지에 '디자인 서울 토론방'을 만들게 된다.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 토론방을 만든 사실을 FF그룹에게 직접 알렸다.

이러한 결과는 시민 사회가 오랫동안 디자인을 비롯한 서울시의 도시 계획 과정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시민의 참여가 배제되었음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았던 사실을 감안하면, FF그룹의 해치맨 프로젝트 활동이 서울 시정에 미약하나마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창구를 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해치맨 프로젝트의 성과를 내가 과대평가한다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도시 공간에서 시민들이 주변화되고, 해외 관광객이나 해외 자본을 호객하는 장소마케팅에 기반을 둔 도시 공간의 생산이 지배적인 상황 그리고 기존의 제도 내에서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려웠음을 생각한다면, 디자인 정책 분야에서 대안적 도시 공간을 생산하고자 했던 FF그룹의 시도는 지배적 도시 공간에 미묘한 균열을 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고, 의미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서울시와 시민 간에 '동몽이상(同夢異床)'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시정에 시민 참여의 확대와 더불어 서울시와 시민 간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이 필요하다.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는 자신의 도시를 디자인할 권리를 갖고 있다.

이 글은 <공간과 사회> 34호에 실린 "신자유주의 도시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의 실현 : 해치맨 프로젝트를 사례로"의 일부를 요약,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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