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중권(진행) : "혹시 시사회 같은 것을 통해 영화나 책을 보셨는지요?"
☎ 홍재철 : "아니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2006년 3월 31일 SBS 라디오 <시사전망대>의 한 장면이다. 나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었다. 명색이 엄마 뱃속에서부터 기독교인인 나는 부끄러웠다. 결국 책을 주문했다. 얼떨결에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전2권, 안종설 옮김, 문학수첩 펴냄)를 읽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흥미진진했다.
ⓒ프레시안 |
1.618이 어디서 나왔느냐고? 자로 재보면 된다. 물론 수학적으로도 구할 수 있다. (여기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우리는 중학교 2학년까지 다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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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x=x:1+x
x2-x-1=0
이 2차방정식을 근의 공식을 이용하여 풀면 두 개의 근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양의 근이 1.6180339887…이다. 뒤에 있는 우수리를 뺀 나머지 1.618을 황금수라고 한다. (지금 내가 소개하는 책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부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 <비트루비우스적 인간>(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 ⓒ프레시안 |
하긴, 패턴은 본질을 파악하는 도구다. 6각형의 눈송이 패턴에서 얼음 결정의 원자적 기하를, 행성의 공전에서 중력과 운동 법칙을, 그리고 무지개에서 물방울은 둥글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았는가!
스웨덴 예테보리에 있는 한 서점의 외벽에는 이상한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다.
0, 1, 1, 2, 3, 5, □, 13, 21, 34, 53, 89, … , 514229
이 괴상한 수열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514229에서 끝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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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비 이야기를 하다가 피보나치수열을 이야기하는 것은 뜬금없는 일이 아니다. 인접한 피보나치 수의 비율을 계산해 보자.
34/21=1.6190, 51/34=1.6176, 89/55=1.6182 (…) 377/233=1.6180
피보나치수열에서 점점 더 뒤로 갈수록 인접한 두 피보나치 수의 비는 황금비에 가까워진다. 이 성질은 1611년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알아냈다. 케플러는 잎차례(phyllotaxis)와 피보나치 수의 관계도 발견했다. 줄기가 수직으로 자라는 동안 잎은 상당히 규칙적인 간격으로 돋아난다. 잎은 다른 잎의 바로 위로 돋아나지 않는다. 아래쪽 잎에 필요한 수분과 햇빛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잎이나 가지는 줄기를 따라 나사선 모양으로 생겨난다. 결국 잎은 2/5, 3/8처럼 피보나치수열 항들의 비로 나타난다.
피보나치 수는 자연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꽃잎의 수는 거의(!) 피보나치 수다.
칼라릴리 (1개)
등대꽃 (2개)
연령초 (3개)
접시꽃 (5개)
▲ 칼라릴리. ⓒ프레시안 |
▲ 등대꽃. ⓒ프레시안 |
▲ 연령초. ⓒ프레시안 |
▲ 접시꽃. ⓒ프레시안 |
코스모스 (8개)
시네나리아 (13개)
샤스타 데이지 (21개)
제충국 (34개)
▲ 코스모스. ⓒ프레시안 |
▲ 시네나리아. ⓒ프레시안 |
▲ 샤스타데이지. ⓒ프레시안 |
▲ 제충국. ⓒ프레시안 |
이 외에도 데이지 가운데는 꽃잎의 수가 55개, 89개인 종류가 있다. 그리고 파인애플 표면의 육각형 과린을 보면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서 올라가는 줄이 8개, 오른쪽 위로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는 줄이 21개 있다. 해바라기 두상화를 자세히 보면 꽃(씨)들이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배열된 나선 패턴이 있는데, 두 나선의 비가 55/34, 89/55, 144/89 등으로 인접한 피보나치 수의 비와 같다.
자연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에서 관찰되는 이 신비로운 수를 신성시할 수 있다. <다빈치 코드>는 이런 심정을 십분 활용한 소설이다. 그리고 많은 교양 수학책이 황금비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고 <피보나치수열과 황금비>(김진호 지음, 교우사 펴냄)처럼 아예 이 주제를 다룬 책들도 있다. <신성 기하학>(스티븐 스키너 지음, 김영희 류혜원 옮김, 열린과학 펴냄)은 자연과 예술에 숨어 있는 황금비를 총천연색의 도판으로 보여준다. 거의 모든 책이 다루는 예가 겹친다. 솔직히 좀 지겹기도 하다.
▲ <황금 비율의 진실>(마리오 리비오 지음, 권민 옮김, 공존 펴냄). ⓒ공존 |
둘째는,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인데, "완벽을 창조하는 가장 아름다운 비율의 미스터리와 허구"라는 책의 부제가 말하듯이 황금비에 얽힌 허구를 적나라하게 밝혔다는 것이다. 많은 책들이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황금비를 찾아내지만, 당시 사람들은 황금비를 몰랐다. 또 많은 건축물, 조각품 그리고 음악에서 황금비를 제시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은 황금비를 보기 원하는 사람들이 억지로 찾아낸 비율에 불과하다는 것을 조목조목 밝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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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비가 음악, 미술, 건축 등에 의도적이고 실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다. 그리고 황금비는 하나의 비율일 뿐 어떤 절대적인 숫자가 아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영속하는 가치를 지닌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은 바로 그러한 학문적인 인식으로부터 탈피한 사람들이다. 비록 수학, 과학, 자연 현상의 많은 영역에서 황금 비율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황금 비율을 미학의 일정한 표준이나 시금석으로 해서는 안 된다." (295~296쪽)
참, 스웨덴 예테보리 서점 외벽의 피보나치수열이 514229에서 끝난 이유는 이 숫자가 바로 서점의 전화번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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