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운각 대피소에서 마등령까지의 바윗길을 이르는 공룡능선. 그 말을 들을 때면 살아있는 공룡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꼭 그런 느낌이 든다. 어디 코끼리능선, 널뛰기능선, 물고기비늘능선이라고 해 볼까. 아니다. 공룡능선은 그야말로 그냥 공룡능선일 수밖에 없다.
지형과 몸집을 고려한다면 공룡은 희운각으로 꼬리를, 마등령으로 고개를 두고 있다. 따라서 처음 출발해서 능선에 오르기 위해서는 길게 늘어진 공룡의 꼬리를 따라가야 했다. 꼬리는 힘이 세고 꼬리를 밟는 나는 힘들었다. 드디어 공룡의 우툴두툴한 등뼈에 도착했다. 돌아보니 희붐했던 희운각 대피소 주위가 어느 새 짙은 안개로 빽빽해졌다. 매미가 허물 벗어 놓았듯 공룡은 껍질을 남기고 어디로 갔을까.
산 아래에 사는 자들이 어쩌다 찾아와서는 참 전망이 좋네! 감탄들을 하겠지만 이곳의 붙박이들에게 생존의 조건은 대단히 불리하다. 비는 자주 내리지만 저축할 틈도 없이 바위 겉을 흘러가고 양분을 담은 흙도 애만 태우며 저만치 떨어져 있다. 그래서 이곳 식물들은 키가 모두 작다. 욕심 부리지 않고 손에 쥔 것만으로 꾸려가는 단촐한 살림살이인 것이다. 침묵의 바위와 맞대결하고 있는 저 연잎꿩의다리를 보라.
▲ 연잎꿩의다리. ⓒ이굴기 |
오늘은 가혹한 조건이 하나 추가되었다. 이곳 주민들한테는 물론 나그네인 나한테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람이다. 바람은 잠시의 단절도 없이 불고 불었다. 어느 고갯마루에서 마지막 한 모금을 털어 넣자 생수병은 빈병이 되었다. 그때 바람이 몰려오더니 병의 주둥이를 불었다. 곡조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초보자가 내는 퉁소 소리가 한 모금 났다.
바위틈에 붙어서 안간힘으로 버티다가 지금 잎사귀 하나의 뒷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저것은 은분취이다. 앞면과 뒷면의 표면과 색깔이 저리도 다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바위양지꽃이 피어난다. 산솜다리, 산오이풀도 있다. 막 지고 있는 난장이붓꽃도 보았다. 내 좋아하는 각시붓꽃이 생각났다. 척박한 바위가 정성을 다해서 피운 꽃이라서 그럴까. 활짝 핀 꽃은 각시붓꽃보다도 훨씬 더 예쁘다고 한다.
▲ 은분취. ⓒ이굴기 |
아침 기운이 완연히 끝나고 걸음의 고삐를 조금 늦추었다. 동해 쪽을 보니 구름이 게으르게 떠 있다. 손에 잡힐 듯한, 이마를 건드릴 듯한 구름. 작정하고 저 구름의 하루 일과를 관찰해 보고 싶은 충동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그러나 오늘은 안 된다. 지금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보다 지상에서 솟아오르는 별들에게 더 열중해야 할 때.
<꽃>으로 널리 알려진 김춘수 시인의 작품 중에는 뿌리 없는 것을 소재로 한 시도 많다. 그의 시 밭에 가서 열매 하나를 딴다. 시큼한 맛을 좋아하는 내가 한 입 베어 무는 그것의 이름은 구름.
구름은 딸기밭에 가서 딸기를 몇 개 따먹고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얼굴을 한다.
구름은 흰 보자기를 펴더니, 양털 같기도 하고 무슨 헝겊쪽 같기도 한 그런 것들을 늘어놓고, 혼자서 히죽이 웃어보기도 하고 혼자서 깔깔깔 웃어보기도 하고
어디로 갈까? 냇물로 내려가서 목욕이나 하고 화장이나 할까 보다. 저 뭐라는 높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서 휘파람이나 불까 보다. 그러나 구름은 딸기를 몇 개 더 따먹고 이런 청명한 날에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는 듯이,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얼굴을 한다. (김춘수, '구름' 전문)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걸 보니 구름도 딸기 맛의 깊이를 아는 모양이다. 딸기는 비닐하우스나 과일가게에도 많이 있지만 실은 산에 더 많이 산다. 구름의 종류만큼이나 많은 딸기들. 그동안의 꽃산행에서 여러 딸기를 보았다. 백암산에서 복분자딸기, 회문산에서 뱀딸기와 수리딸기, 인제에서 줄딸기, 울릉도에서 뱀딸기, 거창 삼봉산에서 산딸기나무와 멍석딸기. 그리고 오늘 청명한 구름 아래의 설악산에서 만나는 것은 멍덕딸기.
▲ 멍덕딸기. ⓒ이굴기 |
희운각에서 마등령 쪽으로 가면서 공룡능선의 구조를 보면 등산로는 모두 바위의 왼쪽으로 나 있다. 오른쪽은 그야말로 아찔한 절벽이다. 그렇게 나아가면서 어느 모퉁이를 돌았던가. 쿵, 쿵, 쿵. 종소리가 저 아래에서 울려왔다. 산중에서의 느닷없는 종소리에 마음도 그만 아찔해진다. 그 첫소리는 키읔처럼 날카로워서 가슴을 긁어준다. 그 끝소리는 이응처럼 둥글고 둥글어서 내 둥근 갈비뼈와 궁합을 잘 맞춘다.
그 소리는 봉정암에서 점심 공양을 알리는 소리인 듯했다. 소리는 바람과 함께 기슭을 타고 올라와 나를 건드리고 공룡능선의 바위 끝으로 몰려갔다. 문득 소리의 꼬리를 따라가 보니 기이한 바위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돌출한 바위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 공룡능선의 목탁바위. ⓒ이굴기 |
좀 거친 상상일까. 그것은 목탁의 손잡이처럼 내겐 보였다. 기력이 떨어지던 소리도 저 잘록한 구멍을 빠져나가면서 다시 힘을 보충할 수도 있겠다. 탁 하면 목탁이요, 척 하면 삼척이라 했다. 지금 저 목탁 구멍을 통과한 소리는 내 마음속에 절 한 채씩 지어주고 삼척으로, 강릉으로 포교하러 떠나는 것이리라. 신갈나무 잎들이 바람의 등을 향하여 일제히 뒤집어졌다. 그건 나뭇잎들이 저의 방식으로 하는 합장일까?
▲ 바람에 뒤집히는 신갈나무 잎사귀들. ⓒ이굴기 |
왼쪽으로만 구부러지던 등산로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꿀 때, 그때는 바로 지친 등산객들이 한 고비를 넘기는 순간이다. 공룡이 능선을 다 탔다며 그들을 등에서 내려준다. 그 바뀌는 방향에서 힘을 다시 길어 올린다. 이윽고 마등령에 도착하고 이정표가 나타났다. 왼쪽으로 가면 봉정암, 오른쪽으로 가면 비선대. 오늘 예정했던 길로 나아가니 희귀한 꽃들이 먼저 와서 반겼다. 꿩의다리였다.
▲ 꿩의다리. ⓒ이굴기 |
마등령에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나의 높이는 설악산의 높이에 나의 키를 더한 높이이다. 이제 이틀 동안 애써 쌓았던 그 높이를 까먹으면서 나는 내려가야 한다. 내 높이를 제외하고 산의 그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산도 나를 골짜기에서 내놓지 않을 것이다. 내 집으로 갈 때엔 내 것만 가지고 가야 한다. 설악산의 허리를 돌아가는 고개와 축 처진 하늘에서 흘러나온 안개. 비선대로 가는 길은 그 속으로 늘어진 밧줄처럼 던져져 있었다. 까마득히 보이는 저곳이 설악동일까.
이번 산행에서 목표했던 식물들은 모두 보았다. 뜻밖의 식물들을 발견하는 기쁨도 누렸다. 개회나무도 그중의 하나였다. 저의 잎을 쟁반처럼 활용하면서 피어난 개회나무의 꽃들!
▲ 개회나무. ⓒ이굴기 |
비선대를 지날 땐 특별한 기억이 솟아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여드름을 주렁주렁 단 채 수학여행을 이곳으로 왔었다. 그땐 못 본 나무들 이번에는 보였다. 신갈나무, 박달나무, 사스래나무, 복자기나무, 물푸레나무. 아마도 그때 그 나무일 것이다. 아무도 못 들어가는 울타리 너머는 이젠 나무들의 차지였다. 물가의 나무들은 그림자로만 들어가서 저마다 혼자 놀고 있었다. 나는 검은 교복을 입고 비선대의 돌팎에 앉았었다. 응원가도 불렀다. 물장구도 쳤다. 지금으로선 어림없는 일이었다. 동래고등학교 응원가 대신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부르면서 돌계단을 내려왔다.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설악산을 일주했으니 내친 김에 동해까지 가볼까. 공룡의 등허리를 밟았으니 아직도 가슴 속에 뚜렷이 남아있는 예쁜 고래 잡아볼까. 생각을 아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문득 나는 수십 가지의 서로 다른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설악산에서 포획한 나의 작고 예쁜 고래들이 카메라 속에서 떼 지어 노는 소리, 소리, 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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