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과적 도시가 생겨나는 근본 원인은 우리 속에 뿌리박혀 있는 '1등주의적 대도시 지상주의'다. 1970년대 심심치 않게 들었던 자랑거리가 서울은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 세계 최대의 도시라는 이야기였다. 그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세계 1등을 하고 있구나!'라고 탄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 혼자만이 세계 1등이 되어갈 때 대부분의 지방 중소 도시는 이미 헤어 나올 수 없는 인구 과소의 문제, 불균형의 골이라는 나락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을이 전국 각처에 널려 있다.
세계 1등이라던 서울도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인구가 많음을 자랑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과적 차량의 문제가 후진국에서나 발생할 만한 무질서의 문제인 것처럼 과적 도시의 문제도 후진국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도시 문제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균형 발전이라는 패러다임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과적 도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사고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꿔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다. 그 패러다임의 변화는 무엇보다 책임 있는 정치가와 시장이 나타나 진정으로 균형적 국가 발전과 도시 발전을 추구하도록 만들 때 가능하다. 즉 과적 차량의 운전을 잘 할 수 있다고 떠벌이는 운전자나 내 회사의 이윤만 극대화하겠다는 업주 같은 시장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모든 운전자가 함께 이용하는 도로처럼 도시민 모두가 이용해야할 자연 녹지라는 도시 환경을 훼손하며 개발을 일삼고자 할 때는 철저하게 감시하여 다시는 이런 행위가 발생되지 못하도록 근절시켜야 한다. 특히 국가를 운영하는 수장에게 부탁을 하고 싶다. 전 국토의 많은 중소 도시가 자족성을 갖춘 중소 도시로서 1등이 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진정한 국가 운영이 아니겠냐고 말이다. 국민들도 국민의 주권을 이용하여 이를 평가해야 한다.
균형 발전은 과적 도시의 불만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일 뿐만 아니라 인구 과소의 문제에 노출되어 있는 지방 도시에 인구 유입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통하여 세계 1등의 농촌형 도시, 산촌형 도시 그리고 어촌형 도시를 만들어가는 대안적 방법이 될 수 있다. 전라북도에만 해도 인구 과소 도시가 산재해 있다. 무주, 장수, 진안은 인구가 3만 명을 간신히 넘기고 있다. 수도권에는 다수의 도시가 인구 1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데 말이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시점에서 몇 해만 지나면 인구 3만 가량의 과소 도시는 더 이상 인구가 존재하지 않는 '무인 도시'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렇게 과소한 도시와 과도한 도시의 격차를 줄이려는 사고가 건강하고 정말 국민의 행복을 찾아주는 바람직한 경영 철학이 아닐까 한다.
지방에는 자연과 어우러져 살기 좋은 환경에 충분한 가용지가 분포하고 있다. 개발 비용도 저렴할 뿐 아니라 기반 시설도 상대적이긴 하나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파란 하늘과 수많은 별이 밤낮으로 우리를 반기고 있다. 비오는 여름밤에는 개구리가 울고 맹꽁이가 우는 자연의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마을 사람들의 인심도 넘쳐난다. 정서가 메마른 대도시의 각박함보다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고 싶은 이웃이 있다. 이 때문에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살아있는 사회 교육 효과도 뛰어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장점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산업화가 훨씬 일찍 시작된 서구 유럽의 국가들, 그 중에서도 가장 경제력이 뛰어나다는 독일의 균형 발전은 세계적 모델이다. 독일에는 인구 500만 명이 넘는 도시가 없어도 경제적 대국이다. 그들은 베를린이라는 수도에 인구가 많다는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인구가 300만 명에도 미치지 않지만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도시 계획을 수립하더라도 조금 떨어진 도시와 함께 광역 계획을 수립하여 베를린에서 50~100킬로미터씩 떨어진 작은 도시에 인구가 들어와서 살 수 있도록 협력적 계획을 수립한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직행 광역 철도 체계를 구축하여 한 시간 내에 출퇴근이 용이하도록 지원한다. 한쪽이 비대해지면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균형 발전이 잘 되어 있다고 자부한다. 국가의 공공 기관도 많은 중소 도시에 분산되어 있다. 어느 도시를 가나 자연이 있고,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대도시에 살고 있는 것도 결코 자랑처럼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독일 정부는 독일 어느 곳에 살든, 또 외국 기업이 어느 곳에 투자하든 전국에 골고루 갖추어져 있는 기반 시설을 내세우며 독일만이 내세울 수 있는 강점으로 부각시킨다.
ⓒ프레시안(손문상) |
살고 싶은 도시, 살맛나는 도시를 만들자
제주도에 가면 올레길이 있다. '올레'라는 말은 제주도의 방언으로 '좁은 골목'을 뜻하며, 통상 집의 대문에서 큰 길 언저리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이다.
올레길이란 단순히 걷고 싶은 그런 정도로만 볼 대상이 아니다. 올레란 그 길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가옥들이 역사적으로나 전통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생사고락을 같이 해 온 동네에 해당한다. 즐거움이 있으면 같이 웃고, 슬픔이 있으면 같이 울었던 그런 정이 서려있는 곳이다.
굳이 '슬로 시티 운동(Slow City Movement)'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슬로 시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정겨움이 살아나는 도시 이것이 살고 싶은 도시이고 떠나고 싶지 않은 도시이며 살맛이 넘쳐나는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도시를 자꾸 가꾸어 가야 한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 덩그러니 혼자만 서 있는 나 홀로 아파트를 목격할 때면 어떻게 여기에 이런 것이 들어설 수가 있었는지 의아스러울 때가 많다. 아마 과적 차량의 업주처럼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개발업자가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였는지 모르겠다. 지방 정부에서도 서울과 같이 우리도 고층아파트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대도시에서나 있음직한 용적률과 건폐율을 허용하여 이를 방조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쓸데없는 것은 뭣 하러 이렇게 잘 배우는지 모르겠다. 농촌 경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런 아파트는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라는 말이 있다. 작은 것, 아담한 것이 정말로 아름답다. 7층 이하의 저층형 아파트가 단지를 이루고 있는 영국의 신도시를 답사할 때 '7층의 미학'이라는 용어가 생각났다. 우리나라의 수도권에서는 높은 지가로 말미암아 상상하기도 힘든 저층이라고 볼 수 있지만 7층 정도의 아담(?)한 아파트라면 조금 크게 자라는 나무로 가려져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경관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최대의 높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주거가 자리를 잡은 것과 같은 모습 그리고 단지가 형성되기 때문에 마을 마당이 형성될 수 있는 모습, 이런 곳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물론 더 낮아진다면 더욱 좋겠지만 개발 비용이 주민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의 타협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소규모 도시에서는 용적률을 낮추고 하나의 단지가 갖춰진 주거지가 조성되도록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 중앙 정부도 이러한 제도를 만들어 가는 지방자치단체에 더 많은 재정지원과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담론의 재생산이 필요하다
앞서 과적 도시에 대한 화두를 던져 놓았지만 여전히 과적 도시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설픈 한두 개의 지표가 아닌 평가 기준으로서의 명확한 지표가 제시된다면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문제를 좀 더 정확히 진단할 수 있으며 분명한 처방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과적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건강한 도시, 살맛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담론으로 재생산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몇 몇의 전문가와 학자들만의 머리에서 나올 문제도 아니라고 본다. 물론 과적 도시에 대한 학문적 정의와 그 평가 방식에 대한 논의는 최종적으로 전문가들과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풀어가야 하겠지만 도시의 주인은 도시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다. 그렇기에 사회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숙제를 풀어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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