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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vs 책…그 피 튀기는 현장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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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책 vs 책…그 피 튀기는 현장의 기록

[1주년 특집] 하승우, 서평으로 논쟁하다

내게 서평은 독한 대화이다. '독한 대화'라는 말의 뜻은 이중적인데, 읽은(讀) 책에 관한 대화이자 책을 좀 독하게 평하는 대화라는 의미이다.

서평이니 책을 읽고 쓰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실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의 의도를 따라가며 꼼꼼히 읽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의 내용이 읽는 사람의 취향과도 맞아야 술술 읽히는데 모든 책이 그렇지는 않고 또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을 읽어야 평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서평을 쓰는 사람에게는 책을 읽는 것이 하나의 취미이자 노동이다.

프랑스의 작가 다니엘 페낙이 <소설처럼>에서 독자의 10가지 권리에 포함시켰던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어서 읽을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는 서평을 쓰는 사람에게 인정되지 않는다. 서평을 쓰는 사람은 책에 대한 취향이나 자신의 신념과 상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책의 내용을 잘못 이해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독자가 작가는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서평을 독하게 쓰는 이유

나는 왜 책을 독하게 평하려 하는가? 원래 평(評)이라는 말 자체가 됨됨이를 따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사실 독하게 평하지 않을 거면 굳이 서평을 써서 다른 독자의 선택에 간섭할 이유가 없다. 옛날과 달리 인터넷 서점에 가면 출판사 서평들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책에 관한 기본 정보는 대부분 구할 수 있다. 그러니 책에 관한 기본 정보를 서평에서 다시 나열할 필요는 없고 어떤 관점을 가지고 책의 내용을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books'의 서평이 다른 언론의 서평보다 훨씬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 <책>(강유원 지음, 야간비행 펴냄). ⓒ야간비행
예전에 철학자 강유원은 <책>(야간비행 펴냄)에서 서평자는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감식자여야 한다고 얘기했다. "고미술품 감정가가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서 그 물건을 제대로 감정하지 않고 무조건 파는 사람 편만 든다면 당연히 그는 사기꾼"이기 때문에 서평자에게는 "그 값을 제대로 따져서 독자에게 알려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서평은 그 책을 감정하는 제법 부담스러운 작업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출판사 서평만이 아니라 일반 서평들도 책에 관해 좋은 얘기들을 늘어놓곤 한다. 출판사 서평이 책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찬사를 늘어놓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서평들이 그렇게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용에 너무 공감해서 좋아하는 걸 말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왜 공감하는지에 관한 근거를 충실하게 제시해야 기뻐할 텐데 맥락 없이 좋아하는 글들이 간혹 있다. 한때 '주례사 비평'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주례사 서평'도 제법 있다. 그런 서평을 보면 괜히 배알이 뒤틀려 글이 세게 나가기도 한다. (서평을 쓰는 이도 사람이다!)

사실 독하다는 게 꼭 책을 나쁘게 평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서평은 독자로서 저자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라 생각한다. 그런데 서평을 책처럼 길게 쓸 수 없기 때문에 압축적으로 말하다보면 때로는 그 말이 좀 독할 수밖에 없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니 일부러 독하게 말해서 스트레스를 풀려는 게 아니다. 나도 책을 쓰는 사람이니 그런 악담이 부메랑처럼 고스란히 내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의식한다(실제로 인터넷에서 내 글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을 읽고 마음 상하거나 불쾌해 하기도 한다). 그러니 일부러 악담을 하려는 건 아니고 오히려 평할 때 더 조심스럽다.

그래서 혹시 내가 책을 잘못 읽었을까 걱정하고, 그런 부분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그 책에 관한 다른 서평들을 찾아본다. 다른 서평을 읽으면 무의식적으로 그 논지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책을 다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한 뒤에 다른 글들을 찾아본다. 그리고 다른 서평의 내용을 받아들일 만하면 내 주장을 무리하게 서평에 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도 뭔가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저자의 다른 책들도 훑어본다. 미리 읽어본 사람의 책이라면 좀 수월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일 때는 서평을 쓰는 게 중노동으로 변한다. 그래도 이렇게 하고 난 뒤에 서평을 써야 좀 안심이 된다.

서평이 나만의 생각일까?

이런 부분들이 글을 쓰기 전의 준비라면,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가급적이면 이 책을 지금 읽는 이유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신간만 뽑아서 서평을 하는 게 아니라면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을 다루는 의미를 따져야 하고, 신간이라 하더라도 번역서일 경우 발간 일자가 틀리는 경우가 있기에 시점을 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이유가 중요하기에, 서평을 쓰는 사람은 그 근거를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평을 쓰면서 고려하는 또 다른 점은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개인적으로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 아니라 청탁을 받고 쓰는 서평의 경우, 나는 청탁한 사람의 '의도'를 따지는 편이다. 파워블로거를 비롯해 서평을 쓰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판에 굳이 내게 서평을 청탁한다면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 의도를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쭉 늘어놓을 수도 있지만 그런 건 그냥 블로그에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서평만이 아니라 다른 원고도 마찬가지이다. 왜 굳이 이 주제를 내게 청탁했는지 물어보고 난 뒤에 글을 쓰겠다고 말한다). 물론 청탁의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여 서평을 쓰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프레시안 books'에 쓴 서평을 훑어보니 내 마음에 흡족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2010년 10월에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그린비 펴냄), 2011년 1월에 제임스 스콧의 <국가처럼 보기>(전상인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011년 4월에 최장집의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폴리테이아 펴냄)에 관해 서평을 썼다. 청탁의 의도도 있겠지만 세 권 모두 좀 독하게 평했다(스콧의 책은 저자보다 번역자에 초점을 맞췄다). 독하게 평하다보니 그 책의 내용을 충실히 다루지 못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프레시안 books'의 의도에는 잘 맞췄다고 생각한다.

사실 서평은 좀 허전한 글이다. 그 주제에 관해 내 얘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저자의 입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평은 대화이지만 저자를 눈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가 아니다. 쌍방향의 대화일 수 없다. 서평에서 저자의 깊은 마음속까지 간파하면서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분들도 가끔 계시지만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안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그 이상을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읽은 책과 지금 읽는 책을 서로 대결시키는 교활한(?) 방법을 많이 택한다. 똑같은 사건이나 개념, 인물을 놓고 차이가 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니, 그런 비교를 통해 내가 말하고픈 바를 교묘하게 얘기할 수 있다. 남의 글에 빗대어 내 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기 좋고, 독자도 책을 비교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결국 서평은 독백의 형식을 취하지만 다양한 의도와 목소리를 담을 수밖에 없다. 나의 관점을 드러내지만 그 관점이 책의 경계를 넘을 수 없다는 점에서 서평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서평을 통한 대화는 불가능한가?

서평을 쓰고 난 뒤에 내가 평한 것과 다른 식으로 평한 글을 접하곤 한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는 거 아니냐, 좋은 의도에서 썼으니 좋게 해석하자는 식의 글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그리고 누가 더 저자의 의도를 잘 따라갔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책 자체가 저자의 의도이니 그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따져야 할 몫이다. 그럴 거면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서평을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서평은 저자에게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그래서 저자와 서평을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책의 편집자와 서평을 쓰는 사람들 간에도 논쟁이 필요하다고 본다. 책 자체를 놓고 따지는 논쟁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책이 나온 시점과 의도에 관한 논쟁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면 논쟁이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프레시안 books'가 더 많은 논쟁의 중심지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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