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라도 비가 오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몇 년 마다 마른장마도 오지만 그 동안 이놈들은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맛비가 뿌리고 장마 전선이 북상하여 햇볕이 쨍 하고 나는 순간, 사방은 매미소리로 뒤덮인다. 그리고는 건조한 뙤약볕과 소나기로 구성되는 본격적인 한여름이 시작되곤 했다.
매미가 장마 전선의 소멸을 어떻게 알아낼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십수 년을 굼벵이로 땅 속에서 지내다가 겨우 몇 주간 수액을 빨고 짝짓기를 해야 할 매미 입장에서는 간신히 화려한 지상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게 우기와 겹치면 낭패가 아닐 수 없는 거다. 그래서 수십만 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매미의 종들은 한반도에 독특한 장마철을 익혀서 생체 시계와 '동물적인' 감각으로 장마의 종료를 알아내고 땅 위로 기어 나와 날개를 펴 온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도 길었던 올해의 장마가 지난주에 끝났다는 보도가 나고 나서 매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만, 그 소리 크기는 예년 같질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반도 중서부를 중심으로 100년만의 폭우가 며칠째 다시 이어지고 있다. 광화문과 강남역이 잠기고, 야산이 무너져서 희생자까지 났다. 매미 유충도 이걸 귀신같이 알고 출동을 미룬 것일까?
ⓒ프레시안(손문상) |
이 폭우는 장맛비인가 아닌가? 대한민국 기상청은 1961년부터 해오던 장마 예보를 2009년부터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장마 예보는 안하고 '장마 중계'만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기상청의 고충은 이해가 가는 면이 있었다. 한반도가 기후 변화로 아열대 기후구의 특성을 띠게 되면서 장마의 시작과 끝도 불분명해졌고, 장마 전선의 배치가 아닌 상태에서도 며칠씩 게릴라성 호우가 내리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를 두고도 날씨도 못 맞추느냐는 성마른 국민들의 비난을 감수하기에 억울했을 터다.
시민들의 입장에선 그리고 매미의 입장에선 이 폭우가 장마 전선 탓인지 불안정한 기단 배치 때문인지 혹은 지형적 특성 때문인지는 중요지 않다. 오래된 습관과는 다른 기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이 때로는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다. 그리고 기후 과학자와 정부 관련 부처는 이를 예상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 온실 기체 배출 '완화'뿐만 아니라 이렇게 이미 일어나는 변화에 '적응'하는 각종 대책이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적응 정책이 제대로 강구되기도 전에 몸이 적응하기도 어려운 기후 격변이 벌써 전개되고 있는 현실이다.
수 만년 동안 축적되어 온 것을 수십 년 사이에 인간이 바꾸어버렸으니 격변이 일어나고 적응이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의 수도권 폭우에도 그런 관계의 축소판이 보였다. 각종 침수와 산사태 피해가 서울의 강북보다 강남에서 주로 발생했다는 것들인데,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간명하게 통찰하고 있다.
강북은 조선이 도읍을 정한 이래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살아온 곳이다. 지세와 물길에 따라 집과 길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거기에 맞추어 살았으니 큰 자연재해가 날 가능성이 적다는 말이다. 청계천의 원래 물길 대신 엉뚱한 수로와 광장을 만들어 놓아 이순신 장군 앞에서 울돌목을 연출한 일은 당연히 예외다.
이에 비해 한강 모래밭을 퍼서 둑을 쌓고 배나무밭 언덕들을 밀어내어 사통팔달 격자도로와 아파트 단지를 만든 강남의 나이는 겨우 수십 년에 불과하다. 강남역 뉴욕제과 뒤를 흐르던 옛 개천과 절개된 산허리가 존재 증명을 하며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만들어낸 동력과 공학적 구조물들이 유구한 자연을 이길까 하면서 말이다. 하물며 수십만 년의 강줄기를 두 해 사이에 가둬보려 기를 쓰는 4대강 사업이야 오죽하겠나 싶다.
이 폭우가 그치면 비로소 매미떼가 돌아올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매미 개체수 자체가 줄어든 올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알 수 없는 강우 패턴도 기후변화에 관한 일이고, 매미가 힘든 것도 기후 변화에 관한 일이다. 적응 대책이 가장 필요한 힘없는 국민들과 매미들은 일단 스스로 알아서 적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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