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성이 주연한 영화 <비열한 거리>(유하 감독)에는 주택 재개발 사업과 관련된 사회 문제가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재개발 대상 지역의 원주민은 "여기가 내 집이니 나갈 수 없다"고 철거 용역 직원(?)에게 항의한다. 용역 업체 직원인 병두(조인성)는 껄렁껄렁한 말투로 "딸 조심하라"고 그에게 엄포를 놓는다.
이쯤 되면 도장을 찍어주지 않을 수 없다. 병두와 경쟁 관계에 있는 또 다른 업체(?)는 다시 병두의 어머니와 딸을 위협한다. 결국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끝에 조인성은 주민 동의를 모두 얻어내고 재개발 사업을 성사시킨다. 이 영화의 감독인 유하는 조폭이나 재개발 문제를 조명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문제를 다뤘다.
▲ 유하의 <비열한 거리>(2006년). ⓒdaum.net |
유하 감독은 정상적인 삶을 갈구하는 사람이 범죄의 늪에 빠져드는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재개발'이라는 욕망의 고리가 숨어있다.
재개발 사업은 재산 가치 상승?
재개발 사업의 원래 목적은 노후한 주거 환경과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실제 재개발 사업에는 엄청난 이권이 오갈뿐만 아니라,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욕망도 숨어있다. 예를 들어, 2007년에 관리 처분 인가를 받은 서울시 성북구 동선 구역 주택 재개발 사업의 경우를 살펴보자.
재개발을 하기 이전의 총 자산 가격은 204억 원인데 재개발 이후 예상되는 수입 추산액은 682억 원에 달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업의 지출 항목 중 사업비가 478억 원으로 책정되어 재개발 사업 전 자산 가격의 2배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 서울시 성북구 동선 구역 정비 사업. ⓒ동선구역주택재개발조합 |
경제적으로 보면, 모든 재개발 사업은 신규 주택을 지음으로써 해당 지역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예를 들어, 성북구 동선 구역 주택 재개발 사업의 경우, 재개발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204억 원의 종전 자산 가치가 682억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사업 규모가 조금 더 커지면, 재개발 사업의 예상 수입은 몇 천억 원 단위를 넘어 1조 원을 넘어간다(수도권 남부 XX시 XX 지구 관리 처분 계획).
그러나 이러한 계산 방식은 항상 단위의 함정을 가지고 있다. 그 지구 전체의 자산 가격이 높아진다고 해서 지역 주민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단적으로 재개발 사업의 원주민 재정착률이 2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재개발 사업을 자산 가격 상승으로 보는 시각은 다른 문제도 안고 있다. 주택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재화이다. 집값이 오른다는 것은 주택 소유주에게는 기쁜 소식이지만 무주택자에게는 슬픈 소식이다. 더군다나 집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전세나 월세를 찾게 되고 이는 다시 전세 가격과 월세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영세한 서민들의 몫이다.
미해결 숙제로 남겨진 권리금
용산 참사, 두리반 그리고 최근 명동 2구역 재개발 사업에서도 드러났듯이 상가 세입자의 권리금 문제도 아직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김준호가 지적하듯이 한국 토지 시장의 법률과 담론 구조는 소유자 중심으로 되어 있다. (☞관련 기사 : 두리반의 기적…"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따라서 토지 소유자는 재개발 사업에서 분양 신청권, 손실 보상 청구권, 청산금 청구권, 주민 대표 회의 구성 선거권 및 피선거권, 전체회의 개최 요구권, 출석권, 발언권 및 의결권 등 다양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지만(사업 시행 규정 제 13조), 상가 세입자에게 이러한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상가 세입자가 전 임차인에게 지불하는 권리금은 재개발과 동시에 '증발'한다. 게다가 관리 처분 계획(안) 어디에도 '권리금'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은 권리금을 시한폭탄이라고 부른다. 재개발이 확정되는 순간 상가 세입자가 전 세입자에게 지불했던 권리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권리금을 받기 위해서는 세입자가 장사를 하면서 만들어 놓은 상권에 대한 판로가 있어야 하는데, 재개발 사업과 동시에 상권도 사라진다. 단골손님을 다른 지역으로 가지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권리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도시 재개발에 있어서 권리금 투쟁 또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국가 감독의 <비열한 거리> 계속되나?
어쩌면, 권리금이나 재정착률과 같은 문제는 부차적일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역할이다. 재개발과 관련된 수많은 시위에서 사람들이 국가에게 던지는 준엄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누구의 편인가?'
<비열한 거리>에서 병두는 재개발 사업을 성사시키고도 조직의 보스에게 배신당해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하게 된다. 어쩌면 유하 감독은 재개발에서 동원되는 폭력에 대한 영화적 심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곳에는 권리금 문제나 용역 업체의 폭력문제로 얼룩진 <비열한 거리>를 외면하는 국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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