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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가 아이들을 '루저'로 만든다!"

[도시 주인 선언·8] 도시에서 쫓겨나는 학생들

학교에 경쟁이라는 채찍을 가하다

2008년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되었던 공정택은 당선 인터뷰에서 "초등학교부터 철저히 경쟁을 시켜야 한다"는 자신의 교육관을 설파한 바 있다.

당시 대통령 이명박은 공정택의 당선이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인한 것이라고 환영하면서 경쟁을 중심으로 교육 정책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2010년 신년 국정 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학교도 경쟁하고 선생님도 경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고 자평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각 학교 단위에서, 또 도시 단위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학력 수준을 성취하려는 경쟁에 여념이 없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이하는 서울시의 고교 선택제는 학교 간 경쟁을 부추기고 있고, 이 과정에서 곰비임비 과거의 병폐들이 다시금 부활하기 시작했다. 지난 정권에서 잠시나마 자율화되었던 고등학교의 야간 자율 학습과 보충 수업 등은 이미 일반화 된 지 오래다.

다만 경기도의 경우는 지난해 통과된 학생 인권 조례에 의해서 야간 자율 학습에 좀 다른 접근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더 오래도록 학교에 남겨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선지 고등학교에 기숙사를 건립하는 것은 지역 명문고를 위한 필수 조건처럼 여겨진다.

이른바 공부 못하는 지역으로 알려진 곳에서는 그런 평판에 반전을 가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여러 곳에서 지금 실시하고 있는 명문고 육성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상대적으로 학력 수준이 낮았던 지역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명문고 육성 프로젝트가 과연 실제로 학생들의 학력을 신장시키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접 학교 또는 인접 도시보다 더 높은 성과를 올리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학력 수준 상승 경쟁이 가열될수록 성적 상위권의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특별한 관심과 혜택을 받게 된다. 심지어 학원조차도 최상위권 아이들의 학원비는 면제 시켜주는 곳이 많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학교도, 학교가 소재한 도시도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에, 학교와 지방자치단체는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게 하는 것보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한다.

이 과정에서 성적 하위권의 아이들은 학교에서나 도시에서나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다. 집과 가까운 학교에 갈 수 없어 먼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친한 친구들과도 성적이 다르면 같은 학교에 진학하기 어렵다. 일부 학교에서는 성적이 낮고 문제를 일으킬 만한 학생들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놓기도 한다. 성적이 낮은 아이들은 심지어 그들이 살던 도시로부터 쫓겨나는 처지에 놓이게 되기도 한다.

고등학교에서만 나타나는 도시 간 성적차

현재 고등학교들의 입시 성적은 그 지역의 학력 수준을 나타내주는 대표적 지표로 인식되고 활용된다. 학원에서 재원생의 성적 결과를 큰 현수막에 과시하는 것과 같이, 고등학교도 항상 교문 앞에는 입시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명문대 진학 결과가 나타난 대형 현수막을 걸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성과를 과시하여 우수한 경쟁력을 내비치는 이런 모습은 공교육과 사교육 간 차이가 없다.

그 해의 고등학교 입시 결과에 따라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고교 선택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각 학교의 이러한 우수 학생 유치 경쟁은 해가 갈수록 뜨겁다. 해마다 대입 못지않게 고교 입시철이 되면 각 급 공·사립 고등학교에서는 지역 내의 고등학교로 입시 홍보를 다닌다. 입시 홍보의 주요 내용은 대략 비슷한데, 그 내용은 홍보 대상 고등학교에서 우수 학생을 얼마나 좋은 대학으로 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학교 정책과 그 간의 입시 결과이다.

이러한 경쟁은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하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무척 곤욕스럽게 한다. 수시 전형과 대학수학능력시험 그리고 앞으로 확대되어 실시될 예정인 입학사정관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성적이 좋고 면학 분위기가 잘 갖춰진 학교와 성적은 낮지만 높은 내신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학교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게 한다.

평준화 지역도 마찬가지로 1지망에서부터 보통 10개가 넘는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과거 경기도 4대 명문고라 불리는 고교들은 여전히 지역 내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전국 상위 100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평준화에 의해서도 여전히 서열은 존재한다.

수도권의 인접한 비평준화 도시 A, B, C(고교 수능 성적순) 사례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아래 그래프는 수능 표준점수 학교 평균을 통해 각각 A시의 ㄱ고교와 C시의 ㄴ, ㄷ 고교 간의 격차를 나타내 주고 있다. 인접한 A시와 C시 최상위 고교 간 수능 표준점수 학교 평균의 격차가 100점 이상으로 매우 큰 차이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C시 내에서도 점차로 격차가 커져 60점을 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journalogplus.net

▲ 3개 고등학교의 수능 3개 영역 표준점수 차. ⓒjournalogplus.net

A시는 인근 B시와 더불어 명문 사립고 하나씩을 유치하고 있으며 지역 내 인문계고 절반 이상이 학교 수능 평균 300점 이상을 기록 하고 있는 소위 '공부 잘하는' 도시이다. 반면 C시의 경우는 지역 내 단 하나의 인문계고 만이 2009년 이후 간신히 300점을 넘고 있음을 볼 때 소위 '공부를 못하는'도시이다. 더구나 세 곳의 비평준화 지역의 도시 내외의 성적 격차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며, 이는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의 표를 보면 이 상태가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인접한 A, B, C 세 도시는 원래 차이가 나는 도시가 아님은 아래 표에 잘 나타난다. 원래 공부 잘하는 A, B시와 공부 못하는 C시의 중3학생 대상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를 비교했을 때 작은 차이지만, 기초 학력 이상의 학생 비율이 C시가 가장 높다. 기초 학력 미달 학생 비율도 C시가 가장 낮다.

▲ 2009년 중학교 3학년 대상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 비교. (기초 미달 학생 수가 적을수록 학업 성취도가 높다는 것을 반영). ⓒ교육과학기술부

다시 말하면, 중학교까지 C시는 A, B시 못지않게 공부 잘하는 도시인 셈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등학교로 가면서 공부 못하는 도시가 된 것은 현재 도시의 고교들 간 격차의 원인을 잘 말해준다. 공부 잘하는 학교와 못하는 학교가 이미 정해져 있으며,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갈 수 있는 학교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학교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가기 때문에 잘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 사회의 관심이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집중되는 이유다. 또한 이것이 경쟁에 의해 철저하게 서열화 되어 있는 도시의 교육 현실이다. 이러한 격차는 경쟁이 심해질수록 더욱 커져 갈 것이다. 이로 인해 그간 인재를 빼앗겨온 C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막대한 예산을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잘하는 학교에게 몰아주는 명문고 육성 프로젝트인 것이다.

명문고 육성 프로젝트의 탄생

C시의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인재들이 유출되는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따라서 2007년 C시에서는 명문고 육성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여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상당히 많은 지역에서 실행하고 있는 이러한 명문고 육성 사업의 공통적인 목표는 인재의 유출을 막기 위함이다.

2010년 올해 C 지역의 중학교 3학년 담임들이 모인 고교 입시 설명회에서 시청의 한 관계자는 내신점수 180점대 이상의 우수한 학생들이 관내 학교로 진학할 수 있도록 부탁을 했다. 심지어는 올 해 중학교 3학년 담임 교사들의 우수 학생들을 관내로 유치하는 성과가 인정이 되면 고등학교 교사들에게 부여되던 해외 연수의 기회를 중학교 선생님들께도 드리는 혜택을 드리도록 하겠다는 공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현재 수도권 비평준화 지역의 교육 현황을 잘 말해주는 사례이다.

해마다 조금씩 내용이 달라지지만, 2009년 C시의 명문고 육성 사업 예산 안을 살펴보면, 총예산 17억74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사업을 진행했다. 예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C시 관내 1개 고등학교에 기숙사를 건립하는 사업으로 총 14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며, 다음으로 3억 원이 중·고등학교 재정 지원 사업으로 투입이 된다. 그 다음 우수 교사 지원 사업에 총 48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 고등학교 기숙사들. 기숙사는 명문고의 상징처럼 되어있다. 학생들이 기숙사를 선호하는지의 여부와는 별도로 명문고 사업에서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다. 물론 모든 고등학교에 이런 기숙사가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 ⓒ김기남

우수 교사와 우수 학교를 선정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중학교에서 내신점수 180 이상의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관내로 진학을 시켰는가를 비교하는 방식이다. 내신 180 이하의 학생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우수 교사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인사상의 가산점과 해외 연수이다. 우수 교사로 선정이 되면 이듬해 여름방학 중 해외의 교육 선진국을 지정해 자비 부담 없이 1주일간의 연수를 다녀올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는 것인데, 최근 3년간 미국으로 약 6일 간의 해외 연수가 시행 된 바 있다. 게다가 2011년부터 관내 고교에 진학한 학생들 중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하였다.

이런 정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실행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결국 고등학교에서 서울대가 가지고 있는 위상을 엿볼 수 있는 결정이며, 철저한 경쟁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

쫓겨나는 아이들

비평준화 지역의 고교 선택권은 성적 상위권의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부여된다. 성적이 높은 아이들부터 채워져서 인원이 마감되는 방식이라 성적이 낮은 아이들이 갈 곳은 해마다 크게 변함은 없지만, 그 해의 판세에 따라 달라진다. 간혹 상위권 아이들이 학교별로 분산이 되는 경우가 있고 집중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따라서 하위권 아이들이 갈 학교가 정해지기도 한다.

성적이 중간에 걸쳐있는 아이들은 수준이 다른 몇 개의 학교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내신에선 불이익을 받겠지만 면학 분위기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상위권 고교와 내신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겠지만, 면학 분위기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하위권 고교 사이에서의 고민이다. 고교 선택이 대입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들의 갈등은 매우 치열하다.

그러나 성적이 아예 하위권인 아이들은 별로 고민할 여지도 없이 대략 갈 수 있는 학교가 정해진다. 대개 성적이 낮은 고등학교들은 도시의 중심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거나,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 또는 인구 밀집 지역으로부터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이 낮은 아이들의 경우는 집과 가까운 학교로 진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일찌감치 박탈당하게 된다.

대부분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성적이 높은 아이들을 위한 특별반 구성과 각종 혜택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성적이 낮고 불량한 학생들을 걸러내기 위해서 강력한 생활 지도를 실시하게 된다. 좋은 학교 분위기를 위한 학교의 사투는 지역 사회에서 학교에 대한 소문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학교는 애들을 잘 잡아줘서 분위기가 좋다는 소문은 그 학교의 평판에 큰 도움이 되며, 다음 해의 신입생의 성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강력한 생활지도는 좋은 고등학교의 공식처럼 자리 잡고 있다.

영화의 결말을 모르는 아이들

지금처럼 철저하게 학생들을 서열화하여 학교를 분류하는 형태의 차별에 대해서 이것이 정당한지의 여부를 떠나서 과연 이런 것들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질문해봐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2005년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 보고를 참고하면 알 수 있다.

이 연구 보고서에서는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진학해서 졸업할 때까지를 추적하여 본 것과, 전국 126개 일반계 고교 8588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본 것,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한 연구 결과 모두에서 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학력 향상도가 더 높았다고 보고한다.

같은 비용으로 더 적은 희생이 가능하다면, 경쟁을 시키지 않아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적어도 낮아지지는 않는다면, 여기서 경쟁을 배제해도 큰 문제가 없다면 이제 교육에 있어서도 평등과 형평성을 고려해봐야 할 때다. 영화 <식스센스>에서처럼 결말을 봐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영화가 있듯, 어떤 아이들은 지금은 수학과 영어 그리고 국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중에 언젠가 접하게 될 내용을 통해 갑자기 흥미를 가지게 될 수도 있고, 이전의 것들을 이해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은 이런 학생들로 하여금 절대로 영화의 결말을 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의 교육 경험은 이후 학생들이 그들의 생활 공간인 도시에 대한 이해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학생 시절부터 불평등한 경험을 한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어 도시 공간이 평등하고 정의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린 학생 때부터 성적에 의해서 차별받아온 아이들이 이후 성인이 되어 직업에 의해서 재산에 의해서 또는 다른 어떤 지표에 의해서 서열화되는 현상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전한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

지난해에 통과된 경기도 학생 인권 조례에 대한 반응이 무척 뜨겁다. 많은 우려의 시각들이 학교에 집중되고 있다. 아직 학생들에게 인권은 이르다는 반응이 많다. 현장의 선생님들도 무척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시대가 많이 바뀌어 있다. 기술적으로 최첨단을 달리고 있고, 경제력에 있어서도, 학생들의 성적 수준에 있어서도 우리는 이미 세계 최고를 다투고 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인권에 대한 적절한 어떤 시점을 찾고 있어야 할까. 이젠 통제에서 아이들을 풀어놓아 주어야 한다. 이젠 두려움을 없애고 우리의 아이들 모두에게 영화의 결말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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