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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같은 '사타구니' 보며 그 삶을 떠올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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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같은 '사타구니' 보며 그 삶을 떠올리네!

[꽃산행 꽃글·8] 너도밤나무를 똑바로 보았다

그는 울릉도에 갔다. 나리분지에서 하룻밤을 자고 등대가 있는 태하 마을로 갔다. 길은 갈림길은 아니었고 외길이었다. 좌우로 숲이 빽빽했다. 섬이라 그런지 관목의 줄기마다 덩굴식물들이 타고 올라가 식물들의 밀집도가 아주 높았다. 이른 아침의 따뜻한 햇살. 새가 오늘 하루를 여는 소리를 내고 그 소리가 숲으로 들어가 졸린 나무들을 깨우고 있었다.

그는 울릉도에 이 야생화가 이렇게 많을 줄을 몰랐다. 큰 키 나무 아래로 길가 덤불에 우뚝우뚝 서 있는 꽃, 그 이름은 쥐오줌풀이었다. 잎이나 뿌리에서 쥐의 오줌 냄새가 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된 식물이다. 맡아본 적 없는 그 지린내를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날씬한 줄기가 쭉 뻗어 오르고 흰색과 부드러운 보라 계통의 색상이 어울린 화려한 꽃이었다. 실제 코를 대 보니 이름과 달리 냄새만 상큼했다.

국수나무도 길가에 흔했다. 줄기를 벗겨놓으면 마치 삶아놓은 국수 가락 같다고 해서 국수나무라 한다. 울릉군청의 홈페이지에 있는 울릉자생식물도감에는 국수나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전 지역의 산골짜기에 자라는 낙엽관목으로 높이 1∼2미터에 달한다. 뿌리 부근에서 줄기가 많이 나와 덤불을 이룬다. 잎은 호생하며 삼각형을 한 넓은 난형으로 점첨두 또는 첨두이며 절저 또는 아심장저로서 길이 2∼5센티미터이며 결각상 거치가 있다. 꽃은 5∼6월에 원추화서가 새가지 끝에 달린다. 꽃잎이 5개, 수술 10개, 암술 1개이다. 열매는 골돌로서 8∼9월에 익으며 털이 있다."

여기서 골돌이란 벌어진 열매를 뜻하는 말이다.

▲ 국수나무. ⓒ이굴기

그가 식물들의 꽃을 카메라에 연신 담으면서 천천히 걸어갈 때. 그 나무가 유독 그의 눈길을 끄는 것이었다. 멀리서 볼 때 그 나무는 그가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새총 생각을 단박에 떠오르게 했다. 저렇게 Y자로 생긴 나무를 꺾고 껍질을 벗기고 다듬어 고무줄을 달아 돌멩이로 장전을 하면 참새 한 마리는 너끈히 잡을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갓난아기 기저귀 채울 때 쓰던 노란 고무줄은 탄력도 좋아서 새총의 위력도 대단했었다.

그가 아무리 기억을 뒤적여도 새총으로 새를 명중한 적은 없었다. 다만 새총을 만들고 돌멩이를 장전해서 전방을 겨눈 적은 선명히 떠올랐다. 그 전방에 새가 과녁으로 들어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윙크하듯 한쪽 눈을 감고 숨을 일시 정지하고 발사해 보았지만 서툰 그의 솜씨에 걸려드는 새는 어디에도 없었다. 작은 새도 모두들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옛날 그 새총을 만들기에 딱 좋겠구나, 짐작하면서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그 나무는 너도밤나무였다. 나무는 굵고 잎사귀가 하늘로 무성히 뻗어 있었다. 나무는 1년에 얼마나 자랄까. 또 얼마나 굵어질까. 그에겐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 하지만 나무의 허리를 가늠해보니 분명 그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아 보였다. 나이테를 감추고 허벅지가 튼실한 너도밤나무. 그이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이요 굵기였다.

▲ 너도밤나무. ⓒ이굴기

이젠 그도 그러한 나이가 되었나. 어깨는 물론이요 키도 초라해져 버렸나. 옛날이라면 나무 앞에 서서 새총을 먼저 만들려고 했을 그였다. 실제로 낫 들고 나무한테 덤벼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오늘 압도적인 너도밤나무 앞에 서니 새총 대신 시들어가는 그의 몸 일부분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한 눈에 보아도 그것은 어쩌면 그리도 그의 하부를 빼닮았을까.

누군가는 몸뚱아리 중에서 가슴께가 가장 복잡하다고 했다. 하지만 저 부분도 엄청 복잡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인간사의 희한한 이야기가 대부분 바로 저기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가슴에서 괜한 부끄러움도 나타나고, 머리에서는 까닭 없는 죄의식도 생겨났었다. 그리고 그에 맞춰 그이의 그곳에도 거뭇한 거웃이 저렇게 은밀하게 자라나는 것!

김수영의 시에 <공자의 생활난>이 있다.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 너는 줄넘기 장난(作亂)을 한다. // 나는 발산(發散)한 형상(形象)을 구하였으나 / 그것은 작전(作戰)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 국수, 이태리어(語)로는 마카로니라고 /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와 /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오늘 그는 너도밤나무 앞에 서서, 너도밤나무를 똑바로 보면서 자신의 생애도 짧게 관찰해 보기로 했다. 장난처럼 흘러간 시절도 있었다. 작전하듯 어렵게 다가간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줄타기 하듯 순식간에 날들은 흘러들고 흘러가고.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옛날로 던져버리고도 싶었다. 자신의 골짜기를 들끓게 하던 힘을 이젠 그만 시들게 하고도 싶었다. 이런저런 욕망의 등불을 조용히 끄고도 싶었다. 좌우의 숲처럼 그저 조용히 늙어가고도 싶었다. 그리하여 그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한번 해 보았다. 하지만 어쩌나. 바로 그게 얼마나 큰 욕심인지! 그걸 잘 아는 그는 갈림길 같은 사타구니에서 걸음을 한 움큼 꺼내서는 너도밤나무 앞을 또 부리나케 떠나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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