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측이 주장하는 인상률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간단히 계산할 수 있다. 노동계는 25.2퍼센트 인상을 요구하는 데 반해 경총은 0.7퍼센트만 올리자고 주장하고 있고, 공익위원은 2.9~13.2퍼센트 사이에서 타협하라고 종용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중세 시대의 박식가 몽테뉴가 이 상황을 봤다면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정말 너무하네" 하고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모두 대학의 수학 교수쯤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몽테뉴는 셈하는 법을 몰랐다. 스스로 <수상록> 제2권에서 당당히 밝힐 정도로 셈을 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덧셈과 뺄셈을 배우려면 대학에 진학해야 했다. 중세 시대 유럽 대학에서는 자유칠과(自由七科, Seven Liberal Arts)를 가르쳤는데, 자유칠과란 문법, 논리학, 수사학, 산수, 기하학, 음악, 천문학을 말한다. 아마 당시 대학에서 배운 산수 수준이 지금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을 결코 넘지 못했을 것이다.
지식을 남기려면 문자가 필요하다. 전 세계에 4000여 개의 언어가 존재하고 그 중 수백 개의 언어가 폭넓게 전파되었지만, 언어를 옮겨 적는 데 쓰이는 알파벳과 문자 언어 체계는 수십 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도 많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지식이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현재 계산에 사용하는 숫자는 오로지 아라비아 숫자 하나뿐이다. 숫자야말로 '진실로 유일한 세계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묻는다. "숫자는 어디에서 왔어요? 옛날에는 셈을 어떻게 했지요? 0은 누가 발명했어요?" 1947년 모로코 태생의 프랑스 수학 교수 출신의 역사학자로 <수의 세계사>로 극찬을 받은 조르주 이프라도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의 질문에 속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청소년과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숫자의 탄생>(김병욱 옮김, 부키 펴냄)을 새롭게 내놓았다.
▲ <숫자의 탄생>(조르주 이프라 지음, 김병욱 옮김, 부키 펴냄). ⓒ부키 |
수는 편리하다. 기억력의 한계가 빤한 인간의 능력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인간의 기억력은 대개 4개가 한계다. 넷까지는 명확히 인식한다. 로마 시대의 초기 달력에서 1~4월까지는 martius, aprilius, maius, junius로 이름이 있었다. (당시에는 춘분이 있는 현재의 3월이 첫째 달이었다.) 그 다음의 5~10월은 각각 다섯 번째, 여섯 번째, …, 열 번째 달이라는 뜻의 quintilis, sextilis, september, oktober, november, december였다. (11월과 12월에 해당하는 januarius와 februarius는 나중에 생긴다.) 아이들 이름도 마찬가지였다. 넷째까지는 고유의 이름을 붙였지만 다섯 번째부터는 퀸투스(Quintus, 다섯째), 섹스투스(Sextus, 여섯째), 옥타비우스(Octavius, 여덟째)처럼 단순히 번호로 불렀다.
숫자가 없을 때 사람들은 온몸의 신체 부위를 이용해 '일대일 대응 원리'로 셈을 했고 날짜를 헤아렸다. 예를 들면 왼손 새끼손가락에서 시작해서 얼굴과 몸통을 지나 오른발 엄지발가락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신체 지점이 숫자를 대신했다. 양을 세는 데 자기 신체 지점을 다 사용했다면 또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최초의 계산기는 물론 손이다. 손으로 덧셈과 뺄셈은 물론 곱셈과 나눗셈도 했다. 고대 로마 회계원들은 가느다란 홈들이 나 있고 그 홈을 따라 둥근 단추들이 굴러다니는 '아비크'라는 휴대용 계산기를 가지고 다녔다. 극동 지방의 주판은 고도의 계산기에 해당한다.
숫자는 처음에는 기록의 수단이었지만 곧 계산의 수단이 되었다. 계산을 쉽게 하려면 좋은 숫자가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나는 아라비아 숫자를 만든 인도인들에게 감사한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인류가 여전히 로마 숫자를 사용하고 있었다면 컴퓨터를 만들고 달에 사람을 보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로마 숫자에서 M은 1000, D는 500, C는 100, X는 10을 의미한다. 각 문자를 단순히 더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작은 수가 큰 수보다 앞에 나올 때는 빼야 한다. 예를 들어. DCX는 500+100+10=610이지만 CDX는 –100+500+10=490이다. 이런 계산을 상상해 보자.
MMMMMCDX-MMMMCCCXX=MXC
이것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1000+1000+1000+1000+1000-100+500+10)-(1000+1000+1000+1000+100+100+100+10+10)=(1000-10+100)
우리는 이것을 5410-4320=1090이라고 간단히 계산한다.
아라비아 숫자의 최대 장점은 각 자릿수에 단 한 개의 숫자만 쓰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도 로마 숫자를 사용한다면 "정부는 2010년 4대강 공사비로 6조4000억 원을 투자하여 1492개의 고정직 일자리를 창출하였는데, 그 돈을 그냥 사람들에게 3000만 원씩 나누어 주었다면 21만3333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셈이다"라는 140자 이내의 트위터 멘션은 불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로마 숫자에는 0이 없었다. 로마인뿐만 아니라 10세기까지 유럽인들은 도대체 0이란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6세기에 각국의 연도를 통일하기 위해서 새로운 연호를 만들었지만 0년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1과 +1의 차이는 2이지만 BC 1년과 AD 1년의 차이는 2년이 아니라 1년이다. 천문학자들이 기원전의 별자리를 추적하려면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 사용하는 아라비아 숫자와 영(0)은 6세기에야 발명되었다. 바빌로니아의 60진법을 사용하던 아라비아인들은 8세기에 인도의 수 체계를 받아들이면서 황금 시대를 맞는다. 유럽인들은 15세기까지도 0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였다.
숫자의 역사는 때로는 새김눈금과 같은 경험적 수단을 사용하고, 때로는 이집트인처럼 기묘한 신화적 수단을 써서 사회의 구성원, 재산, 손실, 포로 따위를 헤아리고 도시가 세워진 연대나 승전일 따위를 기록하고자 했던 욕구의 역사다. 그리고 그들이 품었던 편견의 역사이기도 하다.
<숫자의 탄생>은 수학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이 숫자의 역사를 다루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그런데 정작 프랑스에서는 이 책이 절판된 지 오래 되었고, 저자를 찾을 수도 없다고 한다. 1990년 도서출판 예하에서 <신비로운 수의 역사>로 출간되었던 것을 같은 번역자가 새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저자 조르주 이프라와 한국의 독자 모두에게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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