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등화가 정당화하는 부의 불균형 분배와 그 결과로 나타나는 계층의 고착화는 상위 계층의 이해를 대변한다. 그러나 차등화를 통하여 계층 고착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상위 계층 역시 차등화의 피해자가 된다면, 또한 극단의 차등화로 초래되는 계층 고착화가 경제 성장 역시 저해한다면 이를 과연 방치해야 옳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렇다'라고 하면, 계층 고착화가 갖는 여러 사회 문제는 차치하고 성장만을 고려하더라도 더 이상 차등화가 강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계층 고착화는 엘리트에게도 손해
계층 고착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이를 타파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차등화와 계층 고착화는 물론 상위 계층의 이해를 대변한다. 그러나 계층의 고착화가 그들에게 항상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차등화의 강화로 계층의 고착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계층이 차등화의 결과인 소득 불평등 때문에 그들 역시 피해를 볼 수 있다. 아래 영국과 스웨덴의 비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모든 계층에서 스웨덴의 사망률이 영국보다 낮다. 영국의 최상위 계층의 사망률이 스웨덴의 최하위 계층의 사망률보다 높다. ⓒ프레시안 |
그림은 인구 10만 명당 각 직업 계층 사이에서 노동자의 사망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도표로 나타낸 것이다. 직업 계층은 단순 노동자들은 최하로, 그리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최상으로 구분하였다. 또 아래의 그림은 부모의 직업 계층에 따라 1000명당 영아 사망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두 나라의 비교를 한 것이다.
소득이 평등한 스웨덴이 두 경우 모두에서 소득이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영국보다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스웨덴에서 노동자 사망률이 가장 높은 최하층과 노동자 사망률이 가장 낮은 영국의 최상층과의 비교해도 스웨덴의 최하층이 오히려 낮다는 것이다. 영아 사망률에서도 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소득이 평등화됨으로써 직업에 구분 없이 모든 계층, 특히 최상 계층 역시 그 혜택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과 같이 소득의 불평등을 낮춤으로써 최하 계층뿐만 아니라 상류층 역시 그의 긍정적 효과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류층 역시 소득의 불균형과 계층의 고착화보다는, 오히려 소득의 불균형을 감소시키는 것이 그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스웨덴의 영아 사망률이 모든 사회 계층에서 영국보다 낮다. 영국의 최상위 계층의 영아 사망률이 스웨덴보다 높다. ⓒ프레시안 |
계층 고착과 의욕 상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계층 상승률은 낮아지고 계층 하락률은 증가하고 있다. 빈곤층 도시 근로자의 경우 계층 상승률이 1990~97년 43.6퍼센트에서 2003~2008년에 31.1퍼센트로 12.5퍼센트나 낮아졌고, 중하위 계층 도시 근로자의 계층 상승률 역시 33.5퍼센트에서 28.2퍼센트로 낮아졌다. 그리고 중하위 계층이 빈곤층으로 하락한 비율은 12퍼센트에서 17.6퍼센트로 증가했다.
중하위 계층의 계층 상승률 하락은 부모의 임금 격차가 사교육비 부담의 격차로 연결되고, 이는 결국 자녀의 교육 격차로 연결되며, 교육 격차가 다시 임금 격차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계층에 따른 교육 격차는 중하위 계층이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희망의 좌절과 의욕 상실로 연결되어 결국 경제적 활력을 잃게 하는 요소로 발전될 것이다. (☞관련 기사 : 빈곤층, 중산층 진입 벽 갈수록 높아진다)
일본이 긴 경기 침체를 거치는 동안 발생한 특이한 현상 중에 하나가 소위 "하류 의식"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기회가 박탈된 일본 젊은이들이 신분 상승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 저임금 노동자로 안주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이들이 의욕을 상실하여 일본 경제의 활력을 낮추어 경제를 더욱 침체시킨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에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대명은 한국도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붕괴되어 가고, 그에 따라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의욕 붕괴로 이어진다는 위험 신호가 왔다고 한다. 한국갤럽의 저소득 계층 남녀 631명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사람이 약 49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10년 뒤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살 것 같다"라는 사람이 63.5퍼센트나 되고, "모든 계층이 지금보다 힘들어질 것 같다"는 사람이 빈부 격차 문제와 미래의 삶에 대하여 비관적 전망을 하는 사람의 "지금과 비슷하거나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하는 사람보다 아주 높게 나타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과연 미래에 좀 더 나은 계층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10년 후 계층에 대한 전망에 대하여 3명 중 2명이 "지금과 비슷하거나 더 떨어질 것 같다"고 했으며, "더 높은 계층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소수라고 한다. 이러한 개인들의 의욕 상실과 비관적 미래에 대한 전망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김희삼은 "'상승 루트'가 닫혀가고 있다는 초조감이 광범위하게 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 70퍼센트가 "해도 안 될 것" '일본형 下流 의식' 팽배)
차등화 논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많이 사용된다. 차등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득의 불평등이 일을 더욱 열심히 하게 하여 결국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 성장을 통하여 모두가 더 잘 살게 하기 위해서는 소득 불평등의 필요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의 극단의 차등화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 붕괴," 즉 계층 고착화로 연결되고, 그에 따른 "의욕 상실"을 가져온다. 그래서 일을 더 열심히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신분 상승의 포기를 초래하고, 경제의 활력을 감퇴시키는 것이다. 결국 경제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차등화 강화가 지나치면 계층 고착화와 경제 활력 감소를 일으켜서 오히려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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