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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는 마음대로 오가는 섬이 아니다!"

[꽃산행 꽃글·6] 울릉도를 가다

울릉도는 마음대로 오고가는 섬이 아니랍니다!

1


울릉도 저동항 선착장에서 나와 음식점 거리를 빠져나오면 저동 버스정류장이 있다. 울릉도 시내버스는 4개의 노선이 있다. 천부-추산-평리-현포-태하-학포-구암-남양-통구미-간령-사동-도동-저동-내수전을 잇는 노선, 천부-나리분지 노선, 천부-죽암-석포-선창-섬목 노선 그리고 도동-저동-봉래폭포 노선이다. 버스정류장 간판 아래 4개의 버스 시간표가 빼곡히 적혀 있고 바로 그 앞에 제일약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 울릉도 제일약국. ⓒ이굴기

성인봉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약국으로 들어섰다. 마땅히 살 것은 없었지만 처음 와보는 이 낯선 동네에 대해 물어볼 것은 많았다. 약사님은 아주 친절했다. 그 많은 여행객의 별 시시콜콜한 질문에 시달렸을 법한데 귀찮아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나 또한 한눈에 보아 뜨내기손님이 분명할 텐데 시원시원하게 응대해 주었다. 다음은 약국에서 내가 무료로 구입한 좋은 말씀들이다.

"관광객이 많이 북적거립니다."
"강릉에서 배가 취항한 이후 조금 는 것 같네요."
"울릉도 인구가 얼마인가요?"
"울릉도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 큰 섬인데, 거주자는 한 7000명이고 주소를 둔 분이 한 1만 명 될 겁니다. 울릉도 주민한테는 뱃삯도 아주 싸죠."
"울릉도에서 꼭 가보아야 할 데가 어딥니까?"
"아이고, 글쎄요. 근데 울릉도는 좀 여유를 가지고 보셔야 돼요. 얼마 전 영국인 두 부부가 울릉도에 와서 3개월을 지내다 갔지요."
"???"
"물론 그들은 자동차는 안 타고 걸어서 구석구석 울릉도를 훑었다지요. 사진도 많이 찍었다 하더군요. 성인봉도 여섯 번인가 오르고요."
"???"
"아무튼 울릉도 위아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어제 배로 나갔어요."
"이곳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이 뭡니까?"
"관광객들한테는 멀미약, 이곳 주민들한테는 관절약이지요. 이곳 산세가 아주 험해서."
"깨물어 먹는 비타민 두 곽만 주세요."

제일약국의 약사님은 이곳에 자리 잡은 지가 20년이 되어간다고 했다. 젊은 시절에 울릉도에 왔다가 반해서 몇 번 기회를 노리다가 3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고 했다. 버스가 와서 후다닥 뛰어나가는 뒤통수에 약사님이 덧붙였다.

"울릉도는 오고 싶다고 오고 나가고 싶다고 나가는 섬이 아니랍니다."

2

울릉도의 가로수는 대부분 마가목이다. 그 가로수를 뒤로뒤로 밀쳐내며 오늘도 시내버스는 씽씽 달린다. 울릉도의 도로는 짧기도 하지만 좁기도 하다. 그래서 왕복 2차선의 그 좁장한 도로를 질주하는 버스는 소형이거나 중형차뿐이다. 울릉도의 버스 회사도 우산버스 하나뿐이다. 우산(于山)이라는 이름은 삼국시대에 울릉도와 부속 섬을 다스리던 나라인 우산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름의 역사로 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버스가 아닐까.

서울로 돌아와 이 글을 쓰다가 보충 취재도 할 겸 울릉도 우산버스 회사로 전화를 해보았다. 신호가 오래 가더니 굵직한 음성의 남자분이 받았다. 버스 요금은 기본 1000원이고 거리에 따라 1500원까지 받는다고 한다. 단체가 움직일 때 전화하면 임시 버스가 급파되기도 한단다. 그리고 또 하나. 다음 달부터는 회사명이 우산버스에서 무릉버스로 바뀐다고 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름의 역사가 더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위로해야 하나?
▲ 울릉도 우산버스. ⓒ이굴기

나리분지에서 하룻밤을 자고 추산 마을로 내려와 등대가 있는 태하까지 우산버스를 이용했다. 우산버스에는 할머니 몇 분이 타고 있었다. 우산 속처럼 고요하던 버스 안이 우리 일행이 타자 금방 왁자지껄한 만원 버스가 되어버렸다. 버스 기사님은 친절했고 할머니들도 따뜻했다. 우리의 무거운 배낭도 받아주시고 옆자리에 앉은 관광객과 이야기도 나누기 시작했다. 다음은 우산버스 안에서 내가 그냥 주워들은 이야기이다.

"보통 큰 맘 먹고도 여기에 한번 올까말까 하는데 늘 사시니 좋겠습니다."
"아, 좋다마다요. 울릉도는 여름이면 참 고요하지요.""섬이 고요하다니요?"
"곱아요. 파도가 참 고와서 고요해요."
"???"
"예전엔 눈도 참 억수로 오더니만 작년부터 반밖에 안 오더니이다."
"할머니 말씀이 참 재미있습니다."
"바람이나 안개도 질금질금해요."
"울릉도에 산나물이 유명하지요?"
"그럼요. 옛날에 우리가 다 산에 가서 캐왔는데 요샌 저렇게 재배를 모두 하지요."


할머니가 가리키는 차창 밖으로 고비, 명이, 부지깽이 등의 산나물이 자라고 있었다.

▲명이나물. ⓒ이굴기

"할머니, 울릉도 나물 중에서 어느 나물이 최고로 좋아요?"
"글쎄, 다 좋지 뭐, 어딜 순서를 정하나. 여긴 제대로 키울라꼬 땅을 물쿠기도 하지요."
"???"
"땅이 낡아서 물쿠지요."
"할머니. 땅이 늙은 겁니까? 낡은 겁니까?"
"아이고, 땅에 징기가 빠져나가뿌리니께 지심을 돋우려니 낡은 것이지. 그라고 저기 가로수가 다 마가목인데 그 열매가 관절에 그리 좋아요."


나의 무릎은 몹시 부실하다. 등산할 때 경사길은 그런대로 올라가지만 내려올 때 더 애를 먹는다. 특히 산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계단을 만나면 시쳇말로 쥐약이다. 그래서 그랬나. 그리도 잘 외워지지 않던 마가목이란 나무 이름이 단박에 귀로 쏙 들어왔다.

3

태하 해변에서 바닷가 식물들을 많이 보았다. 해안 암석과 암벽 사이로 갯메꽃, 갯개미자리, 해국, 땅채송화 등이 피어났다. 바닷바람에 하도 시달렸는지 모두들 바위에 납작 엎드려 산다.

▲ 해국. ⓒ이굴기

▲ 갯메꽃. ⓒ이굴기

석포전망대에서 와달리옛길을 빠져나오니 간이 휴게소가 있다. 내처 나무 계단이 가파르게 나 있는 내수전 전망대에 힘겹게 올랐다. 전망대에 서니 울릉도의 한쪽 면과 그 앞바다가 일거에 들어왔다. 도동항과 저동항이 보이고 관음도, 섬모, 죽도 등이 시퍼렇게 바다에 떠 있었다. 어제 올랐던 성인봉도 의연했다.

이것은 모두 내 눈이 좋아하는 멀리 있는 풍경이다. 시원찮은 내 무릎이 찾는 경치는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전망대 아주 가까이에서는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다. 그리고 바람 따라 마가목이 휘청휘청 부러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 문득 친절했던 제일약국 약사님, 시인에 버금가는 어휘력을 구사하시던 할머니의 말씀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관절약과 마가목.

교학사에서 펴낸 <원색 한국 식물 도감(이영노 지음)>에는 마가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깊은 산 중턱 이상의 숲 속에 나는 낙엽 소교목. 잎은 호생, 깃꼴겹잎, 작은잎은 9-13장, 피침형, 넓은 피침형, 양면에 털이 없고, 잎가장자리에 길고 뾰죡한 톱니나 겹톱니가 있음. 꽃은 흰색, 겹산방화서, 암술대 3개. 열매는 이과, 둥근모양, 붉은색."

그리고 수록한 사진은 저자가 1983년 5월 19일에 울릉도에서 찍은 것이었다. 한편, 이 도감에는 나무들의 용도를 관상용, 가구용, 식용, 사료용, 가로수용 등으로 나눈다. 땔감용도 있다. 마가목의 용도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지팡이용.
▲ 마가목. ⓒ프레시안

나도 금방 알 것 같았다. 낭창낭창 마구 흔들리는 마가목. 그 나무의 가지가지가 지금 관절에 좋다는 약물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그 효능을 찾아서 붉은 마가목 열매 따러 가을에 다시 울릉도를 찾고 싶건만 그건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영역의 일이라 하겠다. 울릉도는 오고 싶다고 오고 나가고 싶다고 나가는 곳이 아니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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