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 이전 관립 1개(대한의원 부속의학교), 사립 1개(세브란스 의학교)였던 의학교는 해방을 맞던 1945년에는 관립 2개, 도립 4개, 사립 2개(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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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에 따라 근대 서양 의학을 교육받은 조선인 의사 수는 강점 이전 100명 미만에서 1943년 2618명으로 30배가량 늘어났다. 하지만 조선인 의사 1인당 조선인 인구는 1943년에도 9800여 명이나 되었다.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의사 1194명을 합하면 의사 1인당 조선인 인구는 6700여 명으로 조금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2010년 12월 말 현재, 의사 1인당 인구가 639명이다. 강점 초기보다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는 일제 강점기 말에도 인구당 의사 수가 지금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조선인들에게 의사는 구경조차하기 힘든 존재였다.
▲ 출처 :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 <일본 제국 통계 연감>. ⓒ프레시안 |
일제 강점기 동안 조선인 의사를 찾는 일본인 환자도 더러 있었고 일본인 의사의 진료를 받는 조선인 환자도 없지 않았지만, 의료의 공간은 민족별로 분리되어 있었다. 위의 그림처럼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일본 본국보다도 더 많은 의사의 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내내 일본인 의사 1인당 일본인은 600명 내외로 오늘날의 선진국 수준이었다. 이렇듯 조선인과 일본인은 의료 혜택 면에서도 전혀 다른 처지였다.
이 현상을 뒤집어 생각하면 일본인 의사들은 강점 초기부터 사실상 포화 상태에 놓여 있었다. 민족별로 의료 공간이 사실상 거의 분리되어 있기는 했지만, 조선인 의사들의 증가는 일본인 의사들에게 (잠재적인) 위협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당연히 일제 당국으로서도 이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1874년 8월 <의제(醫制)>를 제정하면서부터 의료인의 자격을 국가가 관장했다. (대한제국은 1900년 1월 <의사 규칙> <약제사 규칙> 등을 제정하여 국가가 의료인 관리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정부의 방침은 의료 체계를 근대 서양식으로 완전히 개편하는 것이었다.
▲ 출처 : 橋本鑛市. "近代日本における醫師界の社會學的分析". (1991년 10월 일본교육사회학회 발표 논문). M : 메이지(明治), T : 다이쇼(大正) S : 쇼와(昭和). ⓒ프레시안 |
일제는 일본 본국에서와는 달리 식민지인 대만과 조선에서는 전통 의료인에게 온전한 "의사(醫師)" 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의생(醫生)"으로 차별 대우를 했다. 대만에서는 1901년부터, 조선에서는 1912년부터 전통 의료인들을 의생으로 등록시켰다. 조선에서 <의생 규칙>이 제정된 것은 1913년 11월이었지만 그보다 1년여 전부터 사실상 시행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환자들이 더 많이 찾은 의료인은 의생이었다. 하지만 의생들의 재생산은 억제되었으므로 날이 갈수록 수가 줄어들었다. 더욱이 신식 의사가 증가하는 속도보다 의생의 감소 속도가 훨씬 빨랐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조선인들이 이용한 의료인 수는 증가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감소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인들은 의료 혜택에서 점점 더 소외되고 있었다. 뒤에 살펴보겠지만 대만과도 다른 현상이었다.
▲ 출처 :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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