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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로 뽑는 대통령,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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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로 뽑는 대통령, 최선입니까?"

[프레시안 books]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

"평범한 유권자와 5분만 대화를 나눠보라. 그러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민주주의는 참 괴상한 제도다. 우리는 아플 때 의사를 찾아간다. 신발이 망가졌을 때는 구두 수선공을 찾는다. 만돌린을 배우고 싶다면 뛰어난 만돌린 연주자를 찾아 나설 테다. 이 때, 누가 과연 필요한 전문가인지를 '민주적인 투표'로 정하는 경우는 없다. 각 분야의 전문가는 투표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치 문제에서만큼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다수결의 원칙은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 정치가들은 온갖 달콤한 말로 표를 모은다. 선거는 필요한 전문가를 떨구고 말 잘하는 정치인의 손을 들어주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수결에 의한 민주적 투표'가 최선이라고 굳게 믿는다.

예술은 또 어떤가. 에릭 그릴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조각했다. 그러곤 그 옆에 벌거벗은 여인을 찰싹 붙여 놓았다. 기독교 신자들이 보면 기겁할 일이다. 하지만 이를 '신성모독'으로 보아서는 안 된단다. 엄연한 '예술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이런 식이라면 강간, 협박, 살인도 '예술'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표현의 자유'를 앞세우는 데 누가 감히 막아서겠는가.

예술과 외설 사이의 줄다리기는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포르노그래피를 만드는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들 행위를 '예술'이라 우긴다. 하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像)'도 성기를 자랑스레 내보이며 광장 한복판에 서 있다. 예술과 외설을 가리려면 과연 무슨 잣대를 세워야 할까?

이렇듯 세상에는 '당연한 듯하지만 하나도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냥 당연하다며 받아넘길 뿐이다. 이래놓고 선거 때만 되면 애먼 자를 뽑아 놓고 오랫동안 후회한다. 마녀 사냥식으로 위대한 예술가를 짓밟는 일도 드물지 않다.

세상을 제대로 세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연한 듯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들부터 따지고 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철학이 하는 일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배인섭 옮김, 어크로스 펴냄)는 철학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책이다. 지은이는 영국에서 인기를 끄는 대중 철학자 피터 케이브이다.

▲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피터 케이브 지음, 배인섭 옮김, 아카이브 펴냄). ⓒ아카이브
책에는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33가지 물음이 담겨 있다. "완벽한 평화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가혹한 처벌도 가능한가?", "왜 노숙자를 보면 마음이 불편해질까?", "참고 기다리면 더 나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등등. 평범한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지당한 일들에 물음을 던지고 집요하게 캐물어댄다.

33가지 물음은 '랜덤'하게 뽑아진 듯 보인다. 그러나 33가지 물음은 철학의 여러 영역을 골고루 건드리고 있다. 피터 케이브는 철학의 영역을 네 가지 질문으로 갈무리한다. "세상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세상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각각은 존재론, 윤리학(사회철학), 가치론(미학)의 핵심을 건드리는 물음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우리가 과연 지식을 얻을 수 있는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얻게 되는 것인지"를 묻는다. 지식의 근거를 다루는 인식론과 논리학을 꿰는 질문이다.

33가지 물음 각각은 이 네 물음을 골고루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는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 편하게 늘어져 있음에도 근육이 저절로 붙는 경우는 없다. 세상을 깊고 넓게 바라보는 '철학적 성찰 능력'을 갖추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나하나는 짧고 재밌는 에세이이지만 따라가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대표 에세이격인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철학적 이유"를 따라가 보도록 하자. 독일어에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얄궂은 단어가 있다. 남의 불행을 고소해 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낱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우리 속담에 딱 맞는 번역어라 하겠다.

왜 우리는 남이 잘될 때 마음이 불편할까? 우리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지 않는다. 우월하고 잘나가는 사람이 망가지고 무너질 때만 고소함을 느낀다. 왜 그럴까? 우리의 마음이 악하고 나쁘지 때문일까?

피터 케이브는 '논리 균형 감각(logical symmetry)'이라 할 만 한 잣대로 그 이유를 풀어준다. 아무리 잘나간다 한들, 재앙이 닥치면 하루아침에 쪽박 차는 게 인간 운명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밀린다는 생각에 초조했던 마음도 편안해진다. 내가 특별히 차별받거나 불행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는 안도감이 밀려들 테다. 다른 이의 불행을 보며 고소해하는 까닭은 무너진 '평등'이 다시 회복되었다는 기쁨에 있다.

글머리에서 던진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도 되짚어 보자. 민주주의는 과연 나쁜 제도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복잡한 논의 끝에 피터 케이브는 민주주의를 다시 감싸 안는다.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누가 선장을 해야 할지를 투표로 결정하는 꼴'이라며 비웃는다. 선장은 항해 전문가가 맡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피터 케이브의 생각은 다르다. 민주적인 투표로 뽑아야 할 선장은 '어디로 가야할지까지 결정하는 사람'이다. 단순한 항해 전문가일 뿐 아니라, 그는 목적지까지 결정해야할 책임이 있다. 그러니 당연히 많은 이들의 바람을 들어야 한다.

이처럼 철학적 물음은 꼭 비딱한 결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근거 없이 당연하게만 여겼던 믿음은 철학을 통해 단단해 진다. 반면, 이유 없이 흐릿하게 받아들였던 생각은 칼같이 내쳐진다. 빈자리를 메울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믿음을 찾기 위해 철학은 물음을 던지고 또 던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는 여러 철학 분야의 깊은 물음들이 골고루 담겨있는 '종합 물음 세트'라 할 만하다.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재밌고 쉬운 예를 통해 논의를 풀어가기에, 따라가기에도 부담이 없다.

나는 독자들에게 이 책에 실린 철학 에세이를 하루에 한 편씩 '복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철학자 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가급적 적게 읽고 많이 생각하라. 그리고 사람들과 많이 대화하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에 꼭 맞는 독서법이다. 깊게 읽고 이해하며 따지고 묻는 동안, 나의 삶은 보다 살만하게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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