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들의 생명력 약화를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혹독한 경쟁 상황에서 그들이 승리하여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그러한 대가를 지불하는 이유는 승리하면 더 소중한 무엇인가를 얻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패배의 불안이 그들로 하여금 한 생명체가 갖는 가장 소중한 것들까지 거부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연애를 거부하는 젊은이들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연애하기 힘든 사회에서 살고 있다. 대학을 다니거나 직장을 다니는 많은 젊은이들은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
'88만 원 세대'로 대표되는 이들은 '알바'와 같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 노동 시간은 많아도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공부도 더 해야 하고, 더 많은 '스펙'을 만들어야 한다. 직장 일이 끝난 후에도 남는 시간에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거나 자격증을 따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러니 연애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아래 두 젊은이의 예를 보자.
"스물여섯의 팔팔한 청춘에게 사랑은 사치였다. 8만 원, 휴대 전화 요금 고지서에 찍한 금액을 보는 순간 그는 연애를 '끊기로' 결심했다. 3만 원이 아까웠다. 통화는 비싸서 안 하고 문자도 "세 번이 오면 한 번만" 보내며 자제를 했건만, 원래 5만 원 나오던 요금이 3만 원이 더 나왔다. 차라리 그 돈으로 등록금 대출을 갚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알바를 하며 만났던 연하의 청년과 연애의 가능성을 실험해보기엔 그의 어깨에 얹힌 짐이 컸다. 2014년, 대학 등록금 대출 상환이 끝나는 날은 아득히 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알바를 뛰어도 손에 쥐는 돈은 겨우 한 달에 100만 원 안팎, 한 달 60만 원 등록금 대출을 갚으면 한 푼이 아쉽다. 한 모 씨는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았다". "누나, 동생으로 남자." 모처럼 찾아온 사랑의 기회는 그렇게 끝났다."(☞관련 기사 : 사랑은 88만 원보다 비싸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난 정 모(25) 씨는 자꾸만 데이트 시간이 '800원'으로 계산됐다. 오래된 알바는 오래된 습관을 키웠다. 그는 인터넷으로 중·고생 학습 상담을 해주는 알바를 대학 시절 내내 했는데, 10~15분에 상담 하나를 끝내면 800원을 받았다. 그러니 애인과 영화 한 편을 봐도 '영화 요금 8000원이면 3시간 알바인데…'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는 "노는 내가 일하는 나에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다닌 그도 알바로 점철된 대학 시절을 보냈다. 동생과 둘이 대학에 다니다 보니 한 번에 800만 원씩 나오는 등록금은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는" 그의 집에도 큰 부담이었다. 그는 "언제나 오전엔 수업, 오후엔 알바를 했다"고 돌이켰다. 휴학을 하면 더욱 '빡세게' 살았다. "학교에서 복사하고 청소하고 도서관 잡무로 8시간 일했다. 그 사이사이 눈치를 보면서 채점하는 알바를 하고, 한 주에 두 번씩 점심시간에 나가서 학생들 출석 점검을 하고, 주말 알바를 따로 뛰고." 그렇게 시간당 4000원, 한 달에 150만 원을 벌었다. 두어 번 연애를 했지만 "만나기 전에 뭔가 계산부터 하거나 내가 이걸 할 여유가 있을까 생각이 들어서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결국 연애는 길지 않았다. 그는 "그래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제발 숨 좀 쉬게 해 달라"고 호소한다."(☞관련 기사 : 사랑은 88만 원보다 비싸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걸 바쳐도 힘든 현 상황에서 이제 연애의 열정은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젊은이들. 이제 그들은 연애의 열정마저 빼앗기고 있다. 목수정은 <야성의 사랑학>(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이라는 책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연애 기능 장애라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는 단지 돈의 절대적 액수 부족이나 시간의 절대적 양의 부족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경쟁 사회에서의 성공을 위해 스펙을 쌓거나 자격시험 또는 기술 시험 준비를 위해 자신을 골방에 가두어야 하고, 관계 단절을 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열정이라는 존재는 방해가 될 뿐이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외로운 존재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로운 존재가 되지 않고서는 양육강식의 경쟁 논리로 무장할 수도 없고, 이해타산에 의한 계산을 할 수도 없다.
열정을 잃은 인간이 되기를 부추기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다. 성장과 경쟁을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인간이 갖고 있는 기본적 욕구까지 거부하는 극한 상황으로 돌진하게 하는 이 거대한 동력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의 장래는 경제 성장만으로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숨 쉬는 사람들에 의하여 보장받고 이루어진다. 성장과 경쟁을 위해 인간이 갖는 기본적인 것들인 꿈, 열정, 희망, 사랑의 희생이 강요되어서는 희망이 없다.
경쟁과 한국인의 성 만족도
한국 사람이 경제 성장으로 무엇을 얻었고 그 달성을 위해 무엇을 희생 했을까? 한국의 성공한 사람의 전형으로, 어린 시절 입시 경쟁이라는 힘든 10여 년을 견뎌내고, 대학에서의 학점 유지, 영어 습득, 스펙 쌓기 등등의 경쟁에서 이겨 좋은 직장을 잡아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성공한 사람이 보상으로 받는 높은 연봉과 함께 주어지는 또 하나는 10퍼센트라고 하는 확률의 성 만족도이다. (☞관련 기사 : 대한민국 성인 남녀 性생활 만족도, 아·태 13개국 중 12위)
한국의 성인 남자의 91퍼센트가 그리고 여자의 85퍼센트가 섹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성 만족도는 남자는 9퍼센트, 여자는 7퍼센트로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아래 표가 보여주듯이 거의 세계 최저 수준이다. 가까운 나라 대만과 비교해 봐도 대만 남자는 성 만족도가 한국 남자보다 3배, 여자는 약 4배 정도 더 높다. 그리고 성 만족도가 높은 멕시코와 비교하면, 멕시코 남자는 한국 남자보다 성 만족도가 8배 높고, 여자는 10배 정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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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 남성은 완전한 발기 강직도를 지니지 못한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교수 백재승은 발기 강직도가 완전한 사람보다 낮은 남성들은 성생활 횟수가 낮고, 성 만족도가 낮으며 삶에 대하여 덜 긍정적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 대한민국 성인 남녀 性생활 만족도, 아·태 13개국 중 12위)
한국의 직장인들은 세계에서 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녁 식사 후에도 직장에 남아서 야근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회사 회식 등으로 밤늦게까지 가정에 돌아가지 못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직장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과도한 업무로 인한 수면 부족이나 스트레스 등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남자의 발기 불능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놀라운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아마 이런 놀라운 사실들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운 뿐이다.
성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90퍼센트가 넘는 한국인들의 불만은 그들의 성적 욕구 발산을 위한 소비에서 잘 드러난다. 영국 BBC가 발행하는 과학기술 전문 잡지 <포커스>에서 세계 35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이 포르노 산업에 대한 국민 1인당 연간 지출액이 경제 수준 대비 가장 높았다고 한다. (☞관련 기사 : 포르노 산업 지출 1위 한국은 '정욕의 나라')
한국은 1인당 섹스 산업에 대한 소비가 세계에서 가장 높지만, 섹스의 만족도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하는 나라가 되었다. 성적인 욕구가 거부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돈 벌고, 거부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 돈을 써보지만, 그 욕구의 충족은 상품과 같이 쉽게 시장을 통하여 구입되는 것이 아니다. 성장의 대가로 시장을 통한 섹스 서비스의 소비 증가를 가져 왔지만, 그 소비의 증가는 만족의 증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만족의 증가를 나타낸다.
출산을 거부하는 한국 여성들
인구보건복지협회는 20일 유엔인구기금(UNFPA)과 함께 펴낸 <2010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한국의 출산율은 1.24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 한국 출산율 1.24명…여전히 '세계 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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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러한 특이한 출산율 감소의 중요한 원인은 자녀들과 함께 함으로써 갖는 근본적 행복감의 소멸이 아닌가 하고 의심된다. 자녀를 키우는 일이 고통이 되며, 자녀의 불확실한 미래는 그들에게 희망이 아니고 불안이다. 이러한 자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다른 행복 추구를 입시 경쟁에 희생하고 가계 지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교육비를 지출한다. 그 부담이 너무 커서 아예 출산을 거부하거나 한 자녀만 갖는 부부가 늘어난다. 기혼 남녀가 자녀를 갖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육아와 사교육비 부담 52.9퍼센트(여성 37.5퍼센트, 남성 66.7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관련 기사 : 떨어진 출산율, 한국이 위험하다!)
경쟁과 성장의 강조로 생명체가 갖는 기본적 본능까지 거부하게 하는 기이한 상황은 그들의 연애 열정을 통제하도록 강요하고, 성적 욕구를 억제한다. 그들이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자손 번식의 기본 욕구는 교육이라는 사회적 압력에 의하여 통제된다. 경제 성장으로 국민소득은 몇 배로 올라갔지만, 자식을 키우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가정의 수는 그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이제 자식 하나 교육시키기도 벅차게 되어, 아예 출산을 거부하는 사회가 되었다.
극단의 차등화, 경쟁, 효율, 성장, 세계화를 강조하여 달성되는 사회는 경제성장 이상으로 자살률이 성장하는 사회, 포르노 소비는 늘지만 성 만족도는 줄어들고 연애의 열정은 거부되는 사회, 국민소득은 높아지는데 사교육비 부담으로 출산을 거부하는 사회가 아닌가? 생명력까지 거부하게 만드는 과도한 경쟁 사회에서 인간이 보전하고자 하는 그 어떤 가치 있는 것이 남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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