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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기! 하지만 '서구의 몰락'은 없다!

[프레시안 books] 기디언 래치먼의 <불안의 시대>

역사책이 아니다. 정치학, 그것도 국제정치학 책에 가깝다. 조금 양보한다면 현대 정치 지형도를 조망한 정치사라고 할까. 그러니 제목에서 언뜻 '혁명의 시대'에서 '극단의 시대'까지 다룬 영국의 진보적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책을 떠올렸다면 접는 게 좋다. '불안의 시대'라 했지만, 문화와 경제를 아우르며 시대를 촘촘하게 조망한 홉스봄의 책과는 많이 다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978년 이후 현재까지를 세 시기로 구분해 국제 정치의 역학 구도 변화를, 역사가나 학자의 눈이 아니라 저널리스트의 시각에서 훑어본 것이다. 그것도 지은이 기디언 래치먼이 <파이낸셜타임스>의 외교 문제 수석 칼럼니스트여서인지 미국의 입장에서 서술했다.

▲ <불안의 시대>(기디언 래치먼 지음, 안세민 옮김, 아카이브 펴냄). ⓒ아카이브
그렇다고 책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다. 역사책이리란 선입견만 떨치면 책은 흥미롭고 유익하다. 우리 대부분이 정신없이 휩쓸려 돌아가며 몸으로 체험한 시기를, 변화의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가 시대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생생한 뒷이야기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요컨대 흥미와 통찰력이 가득한 책이다.

래치먼은 지난 30년을 '전환의 시대', '낙관의 시대', '불안의 시대' 세 시기로 구분한다.

1978년 12월 열린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덩샤오핑 주도로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 근대화' 정책을 공식 채택한 것이 '전환의 시대'의 시작이었다. 잠자던 용이 서구 세계와 자유 무역을 수용한 것은 세계사 흐름은 대변환을 맞이했다. 개혁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국제 정치의 대세였다.

미국과 영국에선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집권해 자유 시장 사상과 민영화가 부활했다. 1980년대엔 민주화 물결이 라틴 아메리카를 휩쓸면서 16개국이 민주화를 이루었다. 한국에서도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독재 시대를 청산했다. 1980년대 말에는 폴란드 등 동구권의 소련 블록이 무너지면서 민주화되었다.

'전환의 시대'는 1991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모스크바 크렘린 궁정의 소련 국기가 마지막으로 내려지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2008년 세계적 금융 위기가 닥칠 때까지 전 세계적으로 낙관주의가 풍미했다. 지은이가 말하는 '낙관의 시대'다.

이 기간에는 민주주의가 승리했고, 자본주의는 세계화 열풍을 타고 전례 없이 성장했으며, 인터넷 등 기술의 발달로 지리적 장벽이 무너졌다. 평화와 번영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윈-윈 세계를 세계화와 단극 체제인 미국의 파워가 뒷받침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세계의 중심이었다. 뉴욕 월가는 전 세계 자본 흐름을 좌지우지 했으며 미국의 군비 지출은 나머지 모든 나라의 군비 지출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자연히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유럽연합(EU)이나 아시아의 신흥 국가들도 수용했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상 유례가 없는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얻는 것이 많아졌으니 불만이 따로 있을 리 없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한 9·11 테러가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한 가장 놀랍고도 충격적인 도전이었지만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의 가치를 옹호하는 '십자군'으로 나섰다.

하지만 이게 '낙관의 시대'에 대한 조종(弔鐘)이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미국 사람들의 낙관주의는 조금씩 무너졌고 2008년 월가에서 비롯된 금융 위기는 낙관주의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었다.

래치먼은 2008년 이후를 '불안의 시대'라 이름 지었다. 미국이 주도권을 상실하면서도 새로운 대체 세력이 등장하지 않는 시기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성장의 신화가 사라지면서 주요 강대국을 비롯해 한 쪽이 얻는 만큼 다른 쪽이 피해를 보는 제로섬 체제가 국제 정치의 틀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기에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로 지구촌의 미래는 한층 불안해졌다는 것이다.

핵 문제, 실패 국가 처리, 지구 온난화 등에 대해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표현한 대로 "글로벌한 문제에 대한 글로벌한 해결책"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래치먼의 말이다. 현재 진행형인 국제 정치의 흐름을 분석한 3부가 이 책의 핵심으로, 시간이 없다면 이 부분만 읽어도 세상을 읽는 눈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이다. 한데 이 대목에서 지은이의 미국중심주의 시각이 살짝 드러난다.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는 방안을 다룬 부분이 그렇다. 탄소 배출량을 규제하려는 국제적 움직임을 언급하면서 중국과 브라질 등 후발국의 입장보다는 미국과 EU 등 선진국의 입장에 기우는 인상이다. 하지만 탄소 배출량을 선진국,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일률적으로 규제하려는 안은 이미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만큼 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룬 선진국이 후발국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아닌가?

이를 두고 "서구 국가들은 비싼 음식을 맛있게 먹고는 가난한 이웃을 초대해 커피를 같이 마시고는 음식 값을 나누어 내자는 부자나 마찬가지"라는 중국과 브라질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지. 게다가 지금도 선진국의 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개발도상국의 그것보다 훨씬 많은 마당에 말이다.

래치먼은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 정치의 난맥을 짚은 후 마지막 장에서 현장을 뛰는 저널리스트의 자세로 돌아온다. 나름의 세 가지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첫째는 미국과 유럽인들에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라'고 조언한다. 지난 세기의 역사를 돌아보면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은 충분한 회복력을 가졌다는 이유에서다.

두 번째로 국가 간의 라이벌 의식이 필연적으로 국제 관계를 규정지을 것이란 생각을 버리라고 한다. 창의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면 중국과 미국을 포함한 주요 강대국들이 윈-윈 논리로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란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EU가 자신의 경제와 사회를 재구축하고 강화하면 자본주의 시스템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미국은 혹은 서구 자본주의는 1930년대, 냉전 시대에 이미 소련이나 일본의 도전으로 비슷한 '쇠퇴 과정'을 겪었지만 극복해냈다는 전례를 들면서 하는 이야기다.

역사를 서술하는 데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 있고 유용하다. 해서 많은 역사가들이 시대를 규정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래치먼은 역사가는 아니지만 특정 시기의 성격을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틀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책은 막강한 경제적 파워를 지니면서도 민주 정치의 불완전으로 국제 정치 불안의 핵으로 등장한 중국에 초점을 맞춘 느낌인데 지은이가 설정한 틀은 나름대로 현대사의 큰 줄기를 조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어쨌거나 곳곳에서 주요 인물들의 면모를 보여주는 등 '현장' 분위기를 전하는 대목이 적지 않아 흥미를 높였다. 낙관의 시대를 상징하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의 사생활을 소개하는 이야기가 그런 예로 보통 역사책이라면 다루지 않을 이야기다. 그린스펀이 재능 있는 수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면서 음악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여 재즈 악단의 연주자로 활동했다든가, 그러면서도 악단원의 세금 환급 업무를 처리해주는 등 수리에 밝은 면을 보여주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또 그린스펀의 정신적 스승인 러시아 출신의 소설가 에인 랜드가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25세나 어린 제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는 데까지 이어지는 식이다.

책을 읽는다 해서 장삼이사에게 당장 도움이 될 것은 없지만 갈수록 한국 사회에 비중이 커져가는 중국의 실체를 볼 수 있게 해주면서 역사가들이 흔히 회피하는 당대의 정치 흐름을 짚어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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