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내리 사흘 동안 <인권 변론 한 시대>의 세계에 빠져 살면서 1970~80년대의 민주화 운동사를 한꺼번에 다시 정리하였다. 무려 800쪽에 가까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맨 먼저 든 생각은 이런 분들의 헌신 덕분에 우리가 그 엄혹한 시대를 그만큼이라도 버텨낼 수 있었구나 하는 절절한 감회였다.
▲ <인권 변론 한 시대>(홍성우·한인섭 대담, 경인문화사 펴냄). ⓒ경인문화사 |
하지만 자신에게 어떤 계기가 주어졌을 때 홍성우는 비겁하게 외면하지 않았다. 구속된 학생들이, 재야인사들이, 고문 피해자들이, 노동자들이 찾아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응답했다. 왜? 어떻게? 그는 자신의 행동 동기를 아주 간단히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그런 짓을 보고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고, "구속된 사람들을 만나보니 진짜 피가 끓더라"고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천상 타고난 인권 변호사의 한 전형을 만나게 된다. 질풍노도와 같았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조금이라도 제 정신을 갖고 이 사회를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홍성우라는 이름 석 자는 이돈명, 조준희, 황인철, 한승헌 등과 함께 1세대 인권 변호사로서 일종의 보통명사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나중에 마치 무슨 경력처럼 너도나도 이 말을 쓰기 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권 변론 하면 바로 이들이 떠오르곤 했다. 인권 변호사라는 호칭 자체가 이들의 활동 때문에 생겨난 점도 기억해야 할 터이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학생-지식인-성직자-노동자들이 공권력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과정 속에서 생성되고 발전했으므로 그 갈등의 최전선에는 늘 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근대 이래 정상적인 국가란 입헌 민주주의 체제, 즉 법의 지배가 확립된 정치 공동체를 의미했으므로 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느냐 여부는 권력을 가진 정권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국가 그 자체의 정당성과도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재 정부가 저지른 잘못과 사법부가 제 기능을 못하는 일은 얼핏 비슷해 보여도 서로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후자는 국가 자체의 정당성과 연결되는 질문인 까닭이다. 따라서 인권 변호사들은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긴 세월의 독재 기간 동안 자의적인 정부 그리고 오욕의 대상밖에 되지 않은 사법부 이 둘을 상대로 상식과 법치와 사법 정의를 위한 투쟁을 해야 했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바로 인권 변론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며, 그 과업의 한 복판에 홍성우와 같은 인권 변호사들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일차적인 의의는 바로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가 우리 현대사에서 부정되었던 현실을 법사학(法史學)적으로 철저하고 정교하게 복원해 놓았다는데 있다.
지금의 눈으로는 어처구니없는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당시 사법부는 정말 수치스럽고 한심하고 마이동풍과 같은 허수아비에 가까웠다. 서울대학교 교수 백낙청 파면 처분 취소 소송의 예를 들어 보자. 재판에서 무엇이 정치 행위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변호인들이 논리적인 주장을 펼쳤을 때 판사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아예 판단을 안 해요. 논리 같은 거, 뭐 그런 것은 상관을 안 해 버려요. 그냥 넘어가 버리지…. 기각 하고 한 마디 하면 끝이에요….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 엉터리 판결 참 많았어요."
세상에, 독재 정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명색이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법부가 이런 형편이었으니 인권 변론이란 게 얼마나 기가 막히고 지난한 과정이었을까. 그 당시의 사법부는 사실상 인권 변호사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던 상징 기관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 책의 또 다른 의의는 진정한 법률가의 자세가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는데 있다. 홍성우는 두 가지 중요한 지적을 한다. 그 하나는 정치범이나 양심범과 같이 신념에 의해 박해 받는 사람들에 대해 변호사가 할 수 있는 바이다. 그것은 당사자가 자신이 철저히 믿는 양심을 지키고 주장하고 온 몸으로 밀고 나갈 때 그것을 지켜주면서 그 양심이 온전히 발현되도록 돕는 역할이다.
그 양심이 사후적으로 보아 '옳은 판단인가' 하는 점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 시점에서 목숨을 걸 만큼 중요했던 판단이라도 나중에 연륜이 쌓이고 세상을 겪어보면 스스로 민망할 만큼 유치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자신의 실존과 양심이 명하는 바를 실천하려는 의지, 그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절대 가치라는 말이다. 그럴 경우 변호사는 '온 몸을 던져' 양심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외받고 불우하고 갈 곳 없는 사람들에 대해 마지막 의지처가 되어 주는 일이다.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는 사건, 다른 사람들이 하기 꺼려하고 해봐야 생기는 것 없는 사건, 맡으면 오히려 손해만 보니까 안 하려는 사건, 이런 사건은 내가 피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즉, 변호사는 작디작은 사람들의 대변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양심의 수호와 서민의 대변, 이것이야말로 변호사법 1조에 나오는 저 유명한 그러나 잊히기 일쑤인 구절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법학도가 아닌 내가 의외로 깊은 인상을 받았던 측면이 있다. 그것은 한국 민주화 운동사에 있어 특기할 만한 점으로 지적되어 온 정치 이념의 급진화 현상에 대한 홍성우의 태도와 평가이다. 이 문제는 인권 변호사들에게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1980년대를 거치면서 뚜렷하게 부각된 점이기도 하다.
예컨대, 저 학생은 민주와 정의를 외치다 억울하게 끌려 왔으니 무죄요, 또는 저 운동가는 이 사회의 모순적 현실을 타개할 방책으로 저런 주장을 했지만 공산주의자는 절대 아니요, 또는 이 사건은 고문으로 조작된 것이요, 라고 변론하기는 비교적 쉽다. 그러나 스스로 급진 이념의 신봉자임을 떳떳이 내세울 때엔 어떤 식으로 변론을 해야 할까?
젊은 피의 학생들에겐 이런 일이 전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있겠지만 실정법을 전제해야 하는 법률가에겐 대단히 큰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신병은 전략을 논하지만 노병은 병참을 걱정한다"는. 과거 교육받았던 환경 때문에 스스로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고 인정하는 홍성우는 이런 일들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늘 열린 마음으로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사상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노라고 고백한다.
물론 주체사상파(주사파)와 같은 확신범들에 대해선 변론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더라는 솔직한 심경도 털어 놓는다. 아마 이 지점은 '민주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헌법 체계가 허용하는 사상의 최대치를 어느 선으로 잡아야 할 것인가를 놓고 우리 모두가 고민하는, 앞으로도 계속될 긴장의 영역이 아닐까 한다. 다만 홍성우의 고민이 남다르게 여겨지는 까닭은 이런 문제를 규범적으로 제기한 것이 아니라 법의 실천 속에서 모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만한 분량의, 이만한 깊이의 증언을 책으로 펴낸 대담자 한인섭의 노고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 변론 한 시대>는 단순한 대담이 아니다. 몇 년에 걸쳐 수만 장의 자료를 사전에 분석한 바탕에서 대담에 임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의 교차 증언과 사실 확인과 업무 지원으로 완성시킨 역저 중의 역저다. 연구자라면 누구나 동의할 터이지만, 이런 정도의 시간과 정성이라면 본인의 저서를 몇 권이나 더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대담의 진행 역시 외유내강형 사회의 전범이라 하겠다. 증언자의 이야기 흐름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중간에 적절한 개입을 통해 살과 피를 보탰다.
이번 기회에 새롭게 밝혀진 사항도 많다. 김수환 추기경이 인권 변호사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었는지, 또는 검찰 측에서 구속자들의 사상을 가린답시고 일본군 밀정 출신 '전문가'의 사상 감정서를 받곤 했다든지 하는 비화들이 책 곳곳에 널려 있다. 그만큼 <인권 변론 한 시대>는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독특한 자료이다.
만일 나에게 이 책에 관하여 한 가지 절대권한이 주어진다면 이 땅의 모든 법학 대학에서 1학년 1학기 첫째 주에 <인권 변론 한 시대>를 필수 도서로 읽게끔 지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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