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는 한 나라의 경제력 및 소득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로 꼽힌다. 흔히 GDP가 큰 나라는 잘 사는 나라요 선진국이며, GDP가 낮은 나라는 곧 못사는 나라요 후진국으로 통한다. 각국 정부들은 자국의 일인당 GDP가 증가하면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1인당 GDP는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지표다. 1인당 GDP는 한 나라 국민의 복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래서 1인당 GDP가 큰 나라는 국민의 복지 수준이 높은 행복한 나라요 1인당 GDP가 작은 나라는 복지 수준이 낮은 불쌍한 나라로 간주된다. 경제에 대한 통계 작성 방식은 이데올로기나 이념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와 같이 GDP는 여러 가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가장 중요한 국정 지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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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처럼 "GDP가 틀렸다"는 비판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지표로서 GDP에 관하여 제기된 문제점이 16~17가지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GDP는 제 2차 세계 대전 때에 미국이 국가의 물자 동원 능력을 점검하기 위한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그 후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캐나다 등 몇몇 나라들이 비슷한 목적으로 비슷한 자료를 정리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1945년에는 당시 국제연맹의 주관 아래 국민소득을 계정화하고자 국제회의도 개최된 바 있었다. 그러다가 1947년 미국이 오늘날에 보는 것과 비슷한 국민소득 계정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발표하였다.
이제까지 지적된 GDP의 문제점들은 대체로 두 줄기로 정리된다. 그 하나는 GDP가 원래 의도한 국민소득이나 경제력도 제대로 나타내주지 못하는 지표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GDP가 국민의 복지 수준도 제대로 나타내주지 못하는 지표라는 것이다. 이 책은 GDP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두 가지 측면에서 결함을 가지고 있는 지표인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책은 GDP가 이 환경의 시대에 국제 사회의 규범이 되고 있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원칙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구시대 지표임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GDP는 경제력(소득 수준), 복지 수준(행복), 지속 가능성,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매우 어정쩡한 지표인 셈이다.
이와 같이 결함투성이 지표를 국정 지표로 삼는 것은 조종사가 엉터리 나침반을 들고 비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경제와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이 책의 발간사를 썼는데, 그는 가사 노동을 무시하는 현재의 GDP는 더 이상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문명을 표현하는 것이며, 스포츠와 문화 활동으로 채워진 여가 활동의 가치를 간과하는 현재의 GDP는 인간 잠재력의 실현보다 당장의 생산성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생산 활동이 점점 더 많은 긴장, 초조, 스트레스를 가겨오고 소외와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켜도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만 이루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사회 발전의 개념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사르코지는 묻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과 사회 그리고 경제는 계속 변하는데 그것의 측정 방식이 그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이며, 지금까지의 통계와 지표 작성방식이 다양한 삶의 요소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데도 전문가들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며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자부해온 데 궁극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GDP를 비롯한 구닥다리 지표들이 가지는 모순들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폭발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사르코지는 마침내 그날이 왔음을 천명하였다. 이 책은 세계 경제를 개혁할 새로운 경제 지표의 개발을 목표로 사르코지에 의해서 2008년에 설립된 위원회(경제 성과 및 사회 발전 측정 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다.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맡았으며, 역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이 위원장 자문을, 그리고 파리정치대학교수인 장 폴 피투시가 사무총장을 맡았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는 이 위원회가 목표한 개혁의 필요성을 더욱더 부각시켰다는 말이 이 보고서의 서두에 나온다. 이번 위기가 세계를 급습한 원인 중의 하나는 현 총량 경제 지표 체계의 실패에 있으며, 이와 함께 정부 관료들이 올바른 통계 지표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하였다는 것이다.
현재의 총량 경제 지표 체계는 공적 부문과 민간 부문을 막론하고 위기와 관련해 어떤 조기 경보도 울릴 수 없었다. 그리고 2004년에서 2007년 사이 외관상 놀라운 세계 경제 실적이 사실은 미래의 성장을 차압한 대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챌 수 없었다. 이제는 몇 가지 사실이 명백해졌다.
경제 실적이라며 자랑스러워했던 것 중 일부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윤 역시 거품처럼 부풀려진 가격에 의한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나라들은 주요 경제 주체들의 자산, 부채, 채무 등의 상황을 포괄적으로 파악해줄 경제 전체의 '대차대조표'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 현재의 실정이라고 이 보고서는 말한다.
이 보고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 첫째는 GDP를 비롯한 기존의 국민 소득 계정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두 번째 부분은 소득이 증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국민의 행복도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삶의 질", 즉 행복을 측정하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환경적·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면,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는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고 이 보고서의 후반부는 지속 가능성을 보다 더 잘 반영하는 지표의 작성 방식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이 세 부분을 관통하는 공통 사항으로 분배의 불평등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불평등도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1인당 GDP가 하위 계층과 중위 계층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완결판이 아니라 논쟁점을 정리하고 잠정적 개선안을 제시함으로써 논쟁에 불을 붙이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사르코지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현실을 치유하기 위해서 참다운 새로운 지표의 작성에 관한 논쟁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훗날 인류의 역사는 이 보고서 작성 위원회가 설립되기 '전'과 '후'를 구분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사르코지의 말대로 이 보고서의 탄생이 커다란 역사적 전기(轉機)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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