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점은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 응답자들의 평가 이유를 종합하면, 대통령의 일하는 모습, 리더십 스타일 등이 국민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구체적인 '정책'은 '대북정책'을 제외하고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많은' 국민들(이번 여론조사 1,216명의 응답자 중에서 76명, 즉 응답자 중 6.3%)이 '잘했다'고 평가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과연 잘되고 있는가? 이번 여론조사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지지를 한 이유는 최근 유례없이 고조됐던 한반도 위기를 대처하는 데서 박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강경 대응을 한 것이 잘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으로 평가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여당의원들과 보수 정치인들, 그리고 언론매체는 '대북정책 때문에 지지도가 50%를 넘었다'는 식으로 '대북정책의 성공'을 자랑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번 여론조사가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잘했다'고 응답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전체 응답자들에게 '대북정책과 남북관계의 미래'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지금과 같은 대북정책이 향후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은 어떠한가?'라는 내용의 질문을 함께 묻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번 여론조사는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를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직무수행 평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상대적으로 많은' 응답자가 '대북정책을 잘해서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대답했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과연 '잘 된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새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박근혜 정부가 향후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서 부딪히게 될 몇 가지 핵심 문제들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앞으로 언제까지 북한과 '기 싸움'의 프레임 속에서 대북정책을 지속할 것인가? 이번에 최근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한반도에서 전쟁위기가 고조된 데는 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에서 거의 동시에 등장한 새로운 혹은 재선된 지도자들이 향후 4~5년을 겨냥한 '상호 관계설정' 과정에서 '기 싸움'(치킨 게임) 프레임 속에서 자신들의 '강력한 지도자상(像)'을 확립 등의 목적을 위해 위협을 무릅쓰면서 결코 물러서지 않고 상호위협을 지속적으로 고조시켰기 때문이다.
▲ 지난 5월 3일, 북한과 개성공단 기업의 미지급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공단에 남았던 남한의 이른바 '최후의 7인'이 귀환함에따라 북측에 잔류하는 남한인원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남북간 첨예한 입장 차이로 개성공단 조업 중단은 두 달이 가까워 오지만 공단의 재가동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뉴시스 |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기 싸움'을 특정 시기와 단계에서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과 수단으로 끝내지 않고 장기적으로 '상대방 길들이기'로 연결하여 지속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렇게 되면 '기 싸움'을 하는 행위주체들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행위가 그들 사이의 관계를 '대결과 불신의 관계'로 '구조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박 대통령이 앞으로도 계속하여 북한에 대한 '길들이기'와 '버릇 고치기'를 새로운 가치와 목표로 추가하여 대북정책을 추진한다면, 북한이라는 상대방이 있는 만큼, 향후 '신뢰 프로세스'는 결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 싸움'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서로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특정 선입견과 이념 과잉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고 오해를 줄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요 현안에 대해 협상을 통한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개성공단 문제가 대화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만큼, 낮은 기술적인 수준의 '실무회담'을 고집하지 말고, 높은 정치적인 수준인 '특사교환을 통한 남북 정상 간의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지난 반년 동안 최근 유례를 찾기 힘든 전쟁위기를 경험한 다음이니만큼, 최고지도자들의 뜻이 직접적으로 전달되고 또 전달받는 '특사' 수준의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또 현실적으로 현안 해결의 물꼬를 트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둘째, 한반도 위기를 해소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오바마정부의 대북정책과 언제까지 무조건 공조를 강화하여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족화해, 평화정착, 통일이라는 가치와 목표들이 실종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할 것인가? 중국의 부상이 가져온 국제정치의 대변화 속에서 우리에게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에게는 미국이 더욱 필요하고 한미공조는 그만큼 더 중요하다. 그러나 한미공조는 한반도에서 긴장 고조가 아닌 긴장완화와 평화증진을 위한 공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5월 7일 워싱턴에서 개최됐던 한미정상회담의 의제 중에서 최대의 관심은 대북정책이었고, 한미 간에 조율된 대북정책이 북한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어 한반도 위기 해소를 이뤄낼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항이었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은 한마디로 북한에 '선핵포기'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면서 '대화의 문'은 열어 두되, 북한이 '도발'을 해오면 억지력 확장 등을 통해 단호히 '공동대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한미 양국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 동맹공조를 재확인하고 또 강화한 것은 이번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의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한미공조가 기존 대북정책과 특별한 차이가 없어 한반도 위기해소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금 한미 양국이 동맹공조를 통해 추진하는 대북정책은 이명박정부와 오바마 1기 정부가 함께 추진했던 '선핵포기'와 '전략적 인내'의 결합 정책의 반복이다. 이것이 바로 워싱턴 한미정상회담 이후에도 한반도 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한미 양국이 지금과 같은 대북정책을 지속하게 되면, 우리는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예전처럼 '상황대응적'인 모습만을 보이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한반도에서 지난 5월 20일을 끝으로 각종 한미합동군사훈련들이 종료되자마지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가 5월 22일 김정은의 특사로서 베이징을 방문했고, 시진핑(習近平) 등 중국지도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6자회담 등 각종 대화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박근혜정부는 향후 이러한 상황변화에 어떤 목표를 갖고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
모르긴 몰라도, 북한은 지난 반년 간의 한반도 군사안보위기가 일단 진정됨에 따라, 미국, 중국, 남한, 일본 등 국제사회와 '대화'를 시작하여 군사안보 및 외교 분야의 '오래된 문제들'을 해결하고 또 '경제를 살리는 데 유리한 대외환경 조성'에 나섬으로써, '김정은 시대'의 생존과 발전의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코자 결심하고 본격적인 국면전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중국이 며칠 후 미·중 정상회담과 이달 하순 한중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번 대화로의 국면전환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한반도 문제' 논의를 자신의 주도 하에 이끌어 가려는 준비를 하고 있어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과 한중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 양국이 대화국면으로의 전환과 관련하여 상호 긴밀히 입장조율에 나선 것은, 시대와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마치 1970년대 초 미·중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닉슨-마오쩌둥(毛澤東) 정상회담을 앞두고 당시 북·중 양국의 고위인사들이 베이징과 평양을 오가면서 의견을 조율했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면, 북·중 양국이 대화국면을 조성하면서 한반도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려는 모습을 벌써부터 보이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단지 '대화 공세'로 치부할 것인가, 아니면 상황대응적인 자세를 벗어나 한반도 상황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결단과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인가? 이제 임기 100일을 맞았지만, 앞으로 거의 5년이 남아있는 임기를 생각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나라와 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주변 참모들의 전략적인 판단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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