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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절반은 식물이다!

[꽃산행 꽃글·1] 천마산에서 꽃 이름을 웅얼거리다

<꽃산행 꽃글>을 시작하며

보라고 봄일 것이다. 꽂히라고 꽃일 것이다. 봄이 되면 꽃에 꽂힌 많은 사람들. 꽃 산행을 나선다. 나도 올해부터 이 대열의 꼬리를 붙들기로 했다.

내가 꽃에 빠지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일생을 하루로 요약한다면 나도 이젠 50 이후, 즉 오후에 진입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루의 내리막길인 오후, 그것도 2시 근처를 지나는 중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무턱대고 좋은 것 먹고 좋은 곳 다니려 다툰 게 내 임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 먹잇감과 자리를 위해 사나운 말을 뱉어낸 게 내 주된 일과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식물학과를 간신히 졸업했다. 3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땐 그 공부가 참 싫었다. 뭘 몰라도 한참을 몰랐던 셈이다. 그래서 전공과의 불화를 톡톡히 겪으면서 얼른 학교에서 도망갈 궁리에만 골몰했다. 그러면서 저러면서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해. 한 문학평론가 선생님께 세배를 갔다가 한 말씀을 들었다. 아이를 키울 때 심성 교육을 달리 할 것이 없어요. 아이한테 식물 이름 백 가지만 외우게 해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요. 백 번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화단을 몇 번 기웃거렸을 뿐 더 이상 진전은 없었다. 참 몰라도 한참을 몰랐지만 선생님의 말씀은 가슴 한 구석에 숙제처럼 남았다.

잊어버렸다고 없어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작년에 나는 인왕산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거의 매일 오르다시피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 해를 마감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대체 내가 인왕산을 제대로 알기나 한 것일까. 산에 사는 나무들, 풀 중에서 이름을 제대로 불러줄 수 있는 게 몇이나 될까. 산에 사는 식물들은 산에 적힌 문자와도 같은 것일진대 그 문자 앞에서 나는 그야말로 깜깜 문맹자가 아닐까. 오래 닫아두었던 식물들의 아우성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듯했다. 심성이 어디 어린애들한테만 해당되는 일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도 외면하면 몇 시간 후 나의 저녁이 와도 나는 깜깜한 상태로 컴컴한 밤을 건너야 할 것 같았다. 나의 고민을 궁리에서 펴낸 <사계절 꽃산행>의 저자인 현진오 박사한테 이야기했더니 답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그는 정통 식물학자로서 늘 현장을 누비는 분류학의 권위자이다. 꽃산행이란 말을 처음으로 만든 이도 바로 그다.

"형, 4월 한 달간 꽃에 대한 집중 교육이 있습니다. 파라택소노미스트(준분류학자) 교육이 있으니 우선 그것부터 들으시죠!"

바야흐로 봄이다. 풀이나 나무들은 저마다의 몸짓과 이름으로 제자리를 지키면서 꽃을 피워낸다. 나에게도 봄이 은근하면서도 활짝 왔다. 해마다 발행되는 나의 봄은 올해로 어느덧 52쇄. 이번 해는 예전 판본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오래 방치했던 숙제도 생각났다. 4월의 첫 주말. 대청역 근처에 있는 동북아식물연구소(☞바로 가기 www.koreanplant.info)에 몇몇 사람들이 모였다. 상견례를 겸해 이론 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나도 내 사연을 가지고 연구소의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갔다. 건물의 규모야 어디 옛날과 비교하랴만 30여 년 만에 복학하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얼마까지 빠져들진 모르겠지만 우선 식물 이름 100가지만이라도 단단히 알겠다고 결심하면서 나는 너무도 뒤늦게 식물들의 나라로 입장한 것이다.

천마산에서 꽃 이름을 웅얼거리다

"고욤나무, 개암나무, 화살나무, 소태나무, 으름나무. 들어보셨습니까?"

4월의 첫 일요일 아침 7시가 조금 지났다.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자동으로 라디오를 켜자 느닷없이 나무 이름이 줄줄줄 나오는 게 아닌가. 문화방송(MBC) 라디오의 일요일 프로그램인 <라디오북클럽> 김지은 아나운서의 낭랑한 음성이었다. 나무는 산이 좋아 산에 살고, 나는 지금 꽃을 좋아하러 꽃을 찾아가는 길이다. 파라택소노미스트 교육의 첫 야외 수업으로 천마산으로 꽃산행을 떠나는 마당에 돌연히 찾아온 낯선 나무들. 이 무슨 든든한 동행인가 싶어서 기분이 흐뭇해졌다. 멘트는 계속 이어졌다.

"…고 이문구 작가의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를 보면 이름조차 낯설고 생김새도 볼품없는 이런 나무들이 쭉 나오는데요. 이문구 작가가 대접도 못 받는 나무들에게 주목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숲에 들어가면 굵고 훤칠하고 우뚝한 나무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보면 넝쿨도 아니고 풀도 아닌 나무는 나무이되 나무 같지 않은 나무들도 참 많죠. 이문구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숲은 그럴싸한 나무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소소한 나무들도 제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비록 존재감은 크지 않지만 자기 줏대와 고집으로 묵묵히 숲을 이루는 그런 올곧은 나무 같은 사람들도 많죠. 비록 근사한 황장목에 가려져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히 뿌리를 내리고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라는 숲도 아름답게 커가는 것 같습니다."

나 혼자 타고 가는 자동차였지만 도로는 내 차 혼자의 차지가 아니었다. 경춘고속도로에 오르자 많은 차들이 맹렬히 강원도 쪽으로 떠나고 있었다. 운전을 하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들이 오고갔다. 세상이라는 숲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중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다. 내가 삼류 깡패라고 하자. 이슥한 밤길에서 공부하고 귀가하는 아이를 붙잡았다. 코 묻은 돈을 좀 뜯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붙잡고 보니 나와 같은 길을 가는 친구의 동생이 아닌가. 그럴 때 아무리 내가 지질한 동네 깡패라 해도 녀석을 무섭게 으를 수는 없다. 얼른 표정을 바꾸고 공부하느라 힘들제, 어울리지 않는 덕담을 건넬 것이다. 그렇다. 아는 것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모르는 것이 힘을 쓸 때도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등산갈 때 주위의 나뭇가지를 똑똑 분지르고 간다. 그리고 쉬는 자리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어린 가지를 쉽게 꺾기도 한다. 글쎄, 나뭇가지의 낭창한 탄력을 꺾는데 실없는 재미라도 들린 듯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어도 좀체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만약 그이가 삼류 깡패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들의 이름을 알았어도 그리 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가 그 이름을 빤히 아는 생강나무를 보고 어떻게 그 팔을 부러뜨리겠는가. 천연덕스럽게 위를 빤히 쳐다보는 산괭이눈의 얼굴들을 어떻게 발로 짓밟겠는가.

▲ 생강나무. ⓒ이굴기

▲ 산괭이눈. ⓒ이굴기

산에 가면 꽃들이 많이 피어 있다.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은 없다. 내가 그 이름을 모를 뿐이다. 만약 실제로 이름 없는 꽃을 발견하면 식물학자는 흥분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 학자는 그 꽃의 이름을 지어주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러니 산에 가니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네, 라고 우리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식물을 알려면 먼저 이름을 알아야 한다. 그런 생각에 촉발되어서 나는 지금 시원하게 뚫린 길을 달려 천마산으로 향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서울 근교에 있는 천마산은 다양한 식물상으로 유명하다. 해서 주말이면 꽃산행을 하는 사람들로 항상 넘쳐난다.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늘의 첫 산행에서 내 카메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세잎양지꽃이었다. 바위 틈 사이에 무더기가 아니라 한 포기만 외롭게 앉아 있었다. 양지바른 곳에서 느긋하게 햇볕을 쬐고 있는데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이날 나는 빈약한 카메라로 서툴게나마 꽃 사진을 많이 찍었다. 비탈이라 사진을 찍는 나도 그림자로 저 아래에 찍혔다. 저기 내 가슴께에 핀 노란 꽃은 복수초. 말은 무시무시해도 뜻은 복수(福壽)란 뜻이다. 모습은 작은 왕관을 쓴 것처럼 아주 앙증맞은 꽃이다. 그리고 그 너머로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느니. 너도바람꽃, 애기똥풀, 매화말발도리, 앉은부채, 점현호색, 큰괭이밥, 만주바람꽃, 꽃다지, 얼레지, 꿩의바람꽃, 남산제비꽃, 둥근털제비꽃, 금붓꽃, 큰뱀무, 큰괭이밥, 산괴불주머니, 피나물, 는쟁이냉이…. 나는 막 옹알이를 끝내고 어부어부를 겨우 발음하는 어린 아기의 심정으로 꽃 이름들을 받아 적고 중얼중얼거렸다.

▲ 복수초를 찍다. ⓒ이굴기

그리고 또 잊을 수 없는 나무 한 그루를 만났으니 그것은 바로 개암나무였다. 오래전 이문구의 소설에서 읽었고, 오늘 아침 방송에서도 들었던 개암나무를 실물로 보다니! 이 나무는 암수한몸이라서 수꽃이삭도 있고 암꽃도 동시에 있다. 수꽃이삭은 두 개씩 쌍으로 작은 수세미처럼 달려 있었다. 암꽃은 드문드문 빨갛게 피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모내기할 때 못줄에 붙어 모 심는 간격을 알려주는 빨간 나일론 실매듭처럼 보이기도 했다. 동그란 열매 같은 끝에 작게 달려 있기에 아직 못다 핀 꽃인 줄로 알았더니 그게 다 핀 것이라 했다. 나는 개암나무 줄기를 골고루 쓰다듬어 주고난 뒤 첫 꽃산행을 마쳤다.
▲ 개암나무. ⓒ이굴기

소설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소설로 마무리 하자. 아주 오래 전 <세상의 절반은 여자>라는 소설이 있었다. 무슨 뜻인 줄을 짐작은 하겠으나 엄밀히 말하면 당치도 않는 말이다. 인간의 절반이 여자라면 일면의 진실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 또한 인간 중심주의의 오만함을 피할 수 없는 표현이라 하겠다. 오늘 제법 많은 식물들이 내 안에서 이름을 찾았다. 앞으로 내가 천마산을 생각하면 나는 그냥 흙덩어리의 산만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젠 골짜기와 능선, 숱한 돌 틈에서 자라는 많은 여린 식물들을 함께 생각할 것이다. 그러자니 나로선 불완전하나마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 세상의 절반은 식물!

매주 금요일 아침 '꽃산행 꽃글'을 들고 독자를 찾아갈 이굴기(52·필명) 씨는 부산에서 출생하고 경상남도 거창에서 자라나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민음사, 사이언스북스에서 출판을 배웠으며 현재 궁리출판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신인왕제색도>, <인왕산 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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